김정은 대장 先軍과 開放 선택기로에 선다

2011년 12월 17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심근 경색으로 사망했다. 2008년 뇌혈관 장애로 쓰러진 후 김정일의 건강불안이 계속 제기돼 왔던 터라 ‘때가 왔다’는 느낌이 들어서인지 아주 놀랍지는 않았다. 그러나 최근에 그의 건강이 회복되고 있다는 관측이 있었기 때문에 당황스러운 면은 있었다. 


2012년 ‘김일성 탄생 100년’과 ‘강성국가 선언’을 계기로 김정은 후계체제를 더욱 강화시키려고  했던 시기에 김정일이 사망한 만큼 북한 체제에 큰 타격이 될 것은 틀림없다


북한 관영 매체들은 김정일 사망 직후 19일 젊은 나이에 ‘후계자’가 된 김정은(28)에 대해 ‘주체 혁명 위업의 위대한 계승자’ ‘우리 당, 군대와 인민의 탁월한 령도자’고 표현했다. 그러나 그의 권력 기반은 김정일이 김일성으로부터 권력을 이어받았을 때에 비하면 전반적으로 취약하다.


김일성이 1994년 7월 사망했을 때 김정일의 나이는 52세였으며 이미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국방위원회 위원장,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 서기(조직선전선동 담당)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또한 호칭도 후계자 내정시의 ‘당중앙’이라는 은어부터 시작해 ‘친애하는 지도자’ ‘경애하는 장군님’ 등 20여 년 동안 단계적으로 상승했다. 이러한 의미에서 김정일의 권력은 ‘쟁취한 권력’이며 ‘얻어낸 호칭’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김정은은 아버지가 20여 년을 걸쳐 얻은 ‘주체혁명 위업의 위대한 계승자’ ‘우리 당, 군대와 인민의 탁월한 령도자’등의 ‘호칭’을 불과 1주일 만에 모두 얻었다. 이것 하나만을 가지고도 김정은의 권력은 ‘얻어낸’ 것이 아니라 ‘주어진’ 것이란 점이 분명해진다. 김정은의 호칭에는 업적을 뒷받침할 만한 것이 없다. 여기에 김정은 권력의 취약함이 내포돼 있다.


김정은 권력은 취약하다. 단기간에 김정일과 같은 1인독재 체제를 구축하는 것은 상당한 무리가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일각에서는 ‘집단지도 체제’를 운운하고 있지만 유일사상, 유일지도의 ‘수령독재’라는 통치 스타일을 가진 북한에서는 ‘집단지도 체제’는 바로 즉 ‘김(金)왕조의 폐기’를 의미하기 때문에 거의 불가능하다.


집단지도체제란 토론을 거친 다음에 최고지도자를 (최종) 결정하는 시스템을 의미하지만, 어느 정도의 권한을 각 부처에 이양해야만 실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의사 결정시스템은 그렇게 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김정은 권력은 ‘1인독재권력 약화’→’집단지도체제’가 아니라 과도적인 형태로 ‘수령독재 강화 체제(후견인 체제)’를 거쳐 본격적인 수령독재체제 확립으로 나가는 길을 걸어가고자 하고 있다. 물론 이것이 의도대로 진행될지는 전적으로 김정은의 능력에 달려 있다.


김정은의 혈통적인 후견인은 김정은과 함께 대장이 된 김정일의 여동생인 김경희가 맡게 될 것으로 보인다. 김경희는 권력 핵심에 있는 유일한 김일성의 혈연이며 부부 사이가 나쁘다는 소문도 있으나 당에서 가장 사리분별에 우수한 장성택을 남편으로 뒀다. 


당분간은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리영호 조선인민군총참모장, 최용해 서기들이 김정은을 지탱할 것으로 관측된다. 덧붙여 리영호의 어머니는 김정일의 어머니와 빨치산에서 친했다. 또한 최용해의 아버지 최현은 김정일이 후계자가 됐을 때 그를 지지한 사람이다.


그들을 김정은을 지원하는 인사들이라 가정하면 당중앙군사위원회를 임시적인 권력중추기관으로 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고 합리적이다. 당중앙군사위원회의의 기타 구성원들도 당·군·정부의 실세이기 때문에 당, 군대와 정부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 이 조직은 김정일 사망 후 사실상 최고지도자가 김정은이 됐기 때문에 새로운 직책을 만드는 절차도 필요 없다.


당중앙군사위원회가 최고사령관의 지위를 주면 군 지휘권도 장악할 수 있다. 김정일도 김일성 사망 후 ‘최고사령관령’으로 북한을 통치했다. 수령의 후계자이기 때문이다. 19일 김정일의 사망이 공식적으로 발표되기 직전에 북한이 조선인민군 전체에 내린 ‘김정은대장 명령 1호’도 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의 이름으로 발령되었다.


앞으로 초미의 관심사가 될 것은 당 조직위원장(조직지도부장)의 자리지만 이 직책은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차분히 정해질 것이다. 이 점은 김정일이 권력 장악을 실행한 절차와는 반대이다.


이러한 권력 이양을 가정하면서 북한은 김정은을 최고지도자로 세우는 프로파간다를 시작했다. 수령독재 체제에서 최고지도는 선거가 아닌 ‘추대’ 형식으로 뽑히지만 이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절차를 생략하기 위해 짜낸 방법이다.


이 추대 분위기를 높이기 위해 19일 김정일 사망을 전한 조선중앙TV는 ‘오늘 우리 혁명의 진두에는 우리 당, 군대와 인민의 탁월한 령도자(지도자) 인 김정은 동지가 서 계시다’고 강조했다. 처음으로 ‘령도자’라는 호칭을 사용해 후계자임을 국내외에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노동신문은 22일 1면 사설에서 김정은을 ‘혁명 위업의 계승자·인민의 령도자”라고 소개했고, 24 일에는 ‘우리의 최고사령관, 우리의 장군이라고 부르고 선군혁명 위업을 끝까지 완성한다’는 기사를 게재해 김정은을 처음 ‘장군’이라고 표현하는 시를 게재했다. 25일에는 조선중앙통신이 김정은을 ‘혁명 무력의 최고 령도자’ ‘불세출의 선군 령장’이라고 호칭했다.


그러나 급하게 짜여진 권력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 이 체제가 단기적으로는 성공하더라도 김정은의 능력부족이 명확히 드러나면 이해관계를 달리 하는 세력 간에서 권력 투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이 시기는 김경희의 수명과도 관계가 있다.


또한 군복을 입고 등장했다고 해도 당출신 장성택과 순수한 군인인 리영호 간의 조합이 앞으로도 적합할지는 모른다. 김경희의 수명이 오래 가지 않고 두 사람이 ‘김정은’의 충신으로 경쟁하는 경우, 또 여기에 배제된 오극렬 세력이 권력 투쟁을 걸어 올 경우 이 권력 시스템은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다.


그럼 이 시스템에서 당과 군의 의견 대립이 초래된 경우 김정은은 과연 김정일이 했듯이 대립을 조정할 수 있을 것인가? 어려울 것이다. 결국 지금까지 모든 권력을 김정일이라는 개인에 집중시키고 당과 군, 정부를 사유화시켜버린 북한 권력 시스템의 폐해가 지금 후계자 김정은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김정일은 3년간의 상을 치르면서 그동안 수면 아래서 군을 완전히 장악하려고 진행했다. 김정은도 상 기간에 우선 군 장악을 시도할 것이 분명하다. 여기서 키(Key)맨은 장성택이다. 장성택이 군복을 입고 등장한 것도 이런 것과 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김정일 권력 구축을 실천하고 지켜봐 온 소수의 인물 중 하나다.


김정은이 군을 완전히 장악할 수 있을지 여부가 김정은 정권의 첫 번째 관문이다. 두 번째 관문은 시장 세력을 장악할 수 있는지이다. 시장 세력을 제어하려면 ‘식량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군대를 장악해도 식량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면 2009년 화폐 개혁 때와 같은 ‘시장의 반란’에 부딪혀 권력은 불안정해질 것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는 상반되는 것이며 양립은 매우 어렵다. 김정은 체제는 조만간  ‘선군 왕조 체제’와 ‘개혁 개방 체제’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것이다. 물론 이 체제가 살아남을 길은 ‘개혁 개방 체제’밖에 없다. 이를 계속 거부한다면 김 왕조의 붕괴는 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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