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권력기반 다지고 개방 고삐 죌까?

개방은 북한 체제의 변화를 진단하는 핵심 키워드다. 김정일 사망 직후 전례 없는 3대(代) 왕조국가의 수령 지위에 오른 김정은이 단기 생존을 위한 폐쇄 정책을 유지할 것인지, 대내외의 도전을 무릅쓰고 장기 생존을 위해 개방에 나설 것인지는 한반도 주변국들의 주요 관심사이기도 하다.


김정은 체제 출범 후 북한은 정치에서는 보수적인 기존 노선을 유지하면서도 경제는 실사구시적 태도를 보여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정은은 개방의 필요성을 언급한 발언을 이어갔고, 유학생·해외노동자 파견을 확대했다. 또한 북·중 합작기업 우대조치와 중국 상인의 내부 시장 진입 허용 조치를 취했다. 본격 개방을 앞둔 일종의 ‘사전 징후’라는 관측까지 나온다.


◆김정은은 개방을 선호한다?=김정은은 개혁·개방이라는 말조차 꺼내지 못하게 했던 김정일과 다른 모습을 보였다. 지난 4월 당대표자회 등을 통해 최고 직책에 오르자마자 인터넷을 활용해 해외정보를 수집할 것을 적극 권장하는 담화를 발표했다.


담화에서 그는 “인터넷을 통해 세계적인 추세 자료들, 다른 나라의 선진적이고 발전된 과학기술 자료들을 많이 보게 하고 대표단을 다른 나라에 보내 필요한 것들을 많이 배우고 자료도 수집해오게 하여야 한다”고 지시했다.


북한 지도부 원로로 통하는 양형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이 지난 1월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김정은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 지식기반 경제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중국을 포함해 여러 나라의 경제 개혁을 살펴보고 있다”고 밝혔다.


김정은이 경제 관리들의 자율적인 발언을 허용하고 자본주의의 장점을 흡수할 수 있다는 내용의 발언을 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김정은이 6년 동안 스위스 유학을 경험했기 때문에 개방에 대한 두려움이 김정일보다 작다는 분석도 있다. 김정일은 사망 당시까지 “오직 자기 힘을 믿고 완강하게 돌진하는 자력갱생의 강자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2011년 신년 공동사설) 


◆눈에 띄는 개방형 변화=김정은 등장과 함께 눈에 띄는 변화도 있었다. 지난해 12월 외국인 투자 관련 법령이 대폭 개정됐고, 외국 투자기업의 투자 자산을 보호하고 이윤 송금을 허용하는 등 국제법상 법규를 수용했다.


특히 나진·선봉 경제무역지대법은 특구 내에서 근무하는 북한근로자 인권을 보호하고 국제적 기준에 따라 특구를 관리하며, 50년간 토지임대, 해외투자자의 건물 소유를 허용하는 등 다소 파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중국 창춘 등을 근거지로 한 동북3성의 대북 진출 유치, 나진 선봉으로 가는 도로 포장, 외국기업 관계자를 대상으로 하는 대대적인 투자유치 설명회를 열었다. 중국의 투먼-남양-청진으로 이어지는 화물 전용열차 운행을 준비하고 있고, 청진항을 중국 측에 개방할 계획이라는 소식도 전해지고 있다.


여기에 북한 최고위 간부들이 동남아와 아프리카, 호주, 뉴질랜드 등을 찾은 것도 해외투자 유치를 위한 점진적인 개방 움직임이라는 관측을 낳고 있다.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최근 싱가포르, 인도를 방문했고, 김영일 노동당 서기가 라오스, 베트남, 미얀마를 방문한 것도 식량원조 외에 개방 타진을 위한 행보였다는 관측이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서방의 자본주의를 경험한 김정은으로서 경제적으로 개방은 피할 수 없다고 여길 것”이라며 “최근 싱가포르 같은 정치적으로는 권위적이면서 경제는 발전한 모델을 살펴보는 노력도 이 같은 행보”라고 분석했다.


또한 유학생 및 노동자의 해외 파견도 과거에 비해 대폭 확대되고 있다. 평양에서는 노동자들의 해외 진출이 붐을 이루고 있다.


중국 지린성(吉林省) 투먼(圖們)시와 두만강을 사이로 마주보고 있는 함경북도 온성군 남양구에 최근 중국 상인들이 북한 당국의 허가를 받고 들어와 장사를 하고 있다는 소식도 김정은식 개방 조치라는 분석이 나온다.


신의주에서 평양 방면으로 100km 정도를 드나들 수 있도록 하는 큰 폭의 개방 정책을 준비 중이라는 고위 소식통의 증언도 나왔다.


◆개방 藥인가 毒인가?=김정은이 유훈 통치를 선언한 이상 개방의 속도와 폭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젊은 지도자의 입장에서 만성적인 경제난은 체제유지에 치명적 약점으로 반드시 극복해야 할 대상이다.


당장 국제적 고립 심화에 따른 경제난, 가뭄 등의 자연재해에 따른 식량난 악화 등은 초기 체제 안정화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 따라서 부분적인 개방 움직임을 통해 밖으로는 ‘불량정권’이라는 오명을 벗고 안으로는 ‘민생’ 안정에 노력하는 정권이라는 인식을 심어줄 조치가 필요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부분적인 개방 움직임은 이 같은 기대효과를 유발할 수 있는 카드다.


여기에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폐쇄 노선을 유지해왔던 김정일과 달리 불안한 리더십의 김정은은 상당부분 민심에 우선할 수밖에 없다는 시각도 나온다. 주민들의 시장 의존도, 경제 개선에 대한 욕구가 커진 상황에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방을 택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한 대북전문가는 “분명히 개방 징후가 드러나고 있다. 그 방향으로 가는 것만은 틀림이 없다”면서 “김정은은 개방을 통해 주민들에게 변화를 실감케 해주면서 체제결속에 활용할 것”이라고 했다.


정 수석연구위원은 “장성택은 황금평과 나선경제특구의 책임자다. 김경희 역시 중공업보다는 경공업 발전에 관심을 갖고 있다. 최룡해(총정치국장)와 최영림(내각 총리) 역시 김정은의 개방적 지향에 동의하고, 제한된 자율성도 발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상대적으로 개방으로 몰고갈 환경이 조성돼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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