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不在’, 북한체제 변화 의식 보여줘

김정은이 9월 25일(목) 열린 최고인민회의 13기 2차 회의에 불참하자 기다렸다는 듯 ‘김정은 건강 이상설(說)’이 부상했다. 이보다 이틀 앞서 한 일간지는 22일째 김정은의 행방이 ‘오리무중’이라는 심각한(?) 기사로 보도의 기선을 잡았을 정도다. 심지어 중국판 트위터에서는 ‘김정은 유고설’마저 흘러나왔다.

베일에 쌓인 체제에서는 음모가 얼마나 쉽게 움틀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5개 월 만에 열린 최고인민회의의 참석자가 바뀌었음을 보여주는 사진이 일간지 1면(중앙일보 9월 26일자)에 올랐다는 사실은 한국이 북한의 변화를 얼마나 기다리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방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그 변화의 중심엔 언제나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있기를 기대한다.

변화란 무엇인가? 더욱이 북한처럼 유례를 찾기 힘든 독특하고 무자비한 지배구조를 갖고 있는 폐쇄 체제에서 변화란 어떤 의미이며 무엇을 변화로 ‘정의’내릴 수 있단 것일까. 김정은이 보이지 않는 것과 지배 엘리트의 잦은 변동이 체제변화(또는 불안정)의 결정 요인으로 꼽을만할까?

학자들은 공산주의 국가의 변신의 척도로 세 가지를 꼽는다. 첫째 사유재산의 회복, 둘째 이윤의 인정, 셋째 시장제도의 도입이다. 이 셋은 자본주의 경제를 움직이는 하나의 특징을 다른 각도에서 설명한 삼위일체와도 같다. 시장이 있어야 이윤이 발생할 수 있고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으면 이윤을 개념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엥겔스는 인간에게서 이 세가지를 없앴던 것이다.

최근 북한의 동향을 보면 분명 변화에 해당하는 징후들은 농후해졌다. 자본주의 체제만큼은 아니지만 일정 정도의 사유재산과 이윤을 인정하여 생산의 동기부여를 높이는 등 부분적 시장화의 모습도 뚜렷하다. 김정은의 6·28방침은 이에 대한 실험적 선언이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작은 변화의 징표가 근본적인 체제의 변화로 이어질 것인가는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그래서 김정은은 어디로 갔을까? 추측대로 비만의 후유증으로 특별 다이어트 중일까? 의사들의 예측·진단대로 통풍을 치료하기 위해 입원 가료 중일까? 아니면 진위를 알 수 없는 소문대로 진짜 무슨 변고가 일어난 것일까? 여의도의 ‘찌라시’는 이 암묵지를 발 빠르게 파고든다. 진실은 당장 알 수 없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김정은의 ‘잠행’이 북한 체제 변화의 큰 변수가 안 된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그렇기에 조선중앙TV는 김정은의 건강 이상을 ‘이례적’으로 ‘조속히’ 인정했는지 모른다. 북측의 표현대로 “불편한 몸인데도 불구하고 인민들을 위한 지도자의 길을 불꽃처럼 계속 나가신다”는 찬가에는 더 이상 신격화된 존재로 남기란 불가능해져 버린 ‘위대한 지도자’의 비애마저 느껴진다.

과거 김일성-김정일 시대였다면 북한 공식 매체가 이처럼 신속하게 ‘불편한 몸’이라는 인간적인 표현으로 과감하게 인정할 수 있었을까? ‘인민의 어버이’는 쉽게 아플 수도 없는 ‘위대한 령도자’이기에 이렇게 나약한 존재여서는 안 되었다. 3대 세습으로 이어지면서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는 더 이상 우상화된 지위에 머물 수 없게 됐음을 북한 체제가 인정하게 된 것은 아닐까?

일부 전문가들은 그만큼 북한 체제가 안정기에 들어섰다는 방증이라고 애써 긍정적인 평가마저 내놓았다. 하기야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니 나름 일리 있는 분석이기도 하다. 어디 감히 지도자 동지의 건강문제를 공공연히 인정하다니 이만한 반동분자도 없었을 시절이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있었으니 말이다.

김정은의 부재는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적어도 북한 체제의 의식이 변했음을 담담히 보여주고 있다. 한낱(?) 똑같은 인간으로 주저앉은, 인간화된 지도자, 신의 지위에서 내려와 인민과 똑같이 아프고 불편한 몸을 가진 존재로 땅 위에 서 있게 된 지배자로 말이다.

이런 인식 자체가 김정은은 김일성에서 김정일로 이어지는 ‘위대하고 친애하는 지도자’들의 행렬에서 이탈하여 황폐한 현실 속의 고단한 모습으로 전락했음을 웅변하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우상의 몰락은 조만간 닥칠지도 모를 시간문제인지도 모른다. 21세기 현대사는 수많은 우상의 몰락을 가감 없이 기록하고 있다. 그의 말로가 벌써부터 측은해지는 이유다. 북한의 변화는 이제 되돌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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