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一族의 독재강화와 북한 小黨의 존재이유

‘일심단결’ ‘수령 결사옹위’ ‘온 사회 김일성-김정일주의화’ 등 구호를 선언하는 북한을 1인 독재 국가로 보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즉 북한 사회의 중심은 노동당이고, 노동당의 중심은 중앙위원회이고, 중앙위원회 중심은 수령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은 공식적으로는 다당제 국가를 표명하고 있다. 조선노동당 이외에 조선사회민주당과 조선천도교청우당이라는 정당도 존재한다.


이 소당(小黨)들의 역사는 194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제2차 세계대전에 승리한 소련은 점령 국가에 대한 정책을 고려하고 있었다. 결국엔 동유럽과 마찬가지로 북한에서도 소위 ‘인민 민주주의 국가’ 건설이 예정됐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인민 민주주의’의 정의는 변경되고 있었다. 처음엔 ‘인민 민주주의 국가’에서 다당제 민주주의 제도가 남아 있었고 공산당의 지지율도 높아 이 국가들이 소련과의 동맹을 맺으려는 생각이 있었다.


1945년 몽골과 투바에서 유일한 정당은 공산당이 아닌 ‘인민혁명당’이였던 것처럼 다른 인민 민주주의 국가의 공산당도 ‘인민당’ ‘사회주의당’ 등의 방식으로 개명하게 됐다. 북한 경우엔 공산당은 ‘노동당’이 됐다. 그리고 소련 당국은 노동당과 다른 정당의 창당도 허락했다. 그렇게 해서 1948년 9월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선언 당시엔 북한에서 조선노동당, 북조선민주당과 북조선천도교청우당이라는 3개 정당이 있었다. 민주당의 첫 당수는 조만식이었고 천도교청우당의 첫 당수는 김달현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소련 당국은 동유럽과 북한에서 민주주의 질서를 보장하면서 이들을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됐다. 만약 민주주의 선거에서 공산당이 아닌 다른 정당이 권력을 잡게 된다면, 소련의 영향을 급속하게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있었다. 이 때문에 이런 국가들에서 소련은 비공산주의 정당들을 공산당의 괴뢰로 변경시켰다. 북한의 경우에는 당시 김일성과 친한 인물이었던 최용건이 민주당 당수가 됐다. 그리고 1948년에 천도교청우당 당원들이 3.1운동을 맞아 시위를 준비하였을 때, 김달현 당수가 동지들을 배신하고 북한 당국에 시위 준비를 알렸다. 1948년 2월 말 북한 당국은 천도교청우당원을 대대적으로 체포했는데, 이때부터 천도교청우당도 독립성을 잃어버렸다.


이때부터 1950년대 말기까지 민주당과 천도교청우당은 동유럽의 소당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즉 여당과 당국을 비판하지 않으면서 초기 조직도 존재하고 수만 명의 당원도 있었다. 하지만 1958년 중국 군대의 철수와 동시에 중국과 소련으로부터 독립해 지도자가 된 김일성은 남아 있는 반대세력을 탄압하기 시작했다. 민주당과 청우당의 조직은 해산되고, 양당은 실제적으로 노동당의 조직 중에 하나가 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양당의 구조가 똑같다. 사회민주당에서도 천도교청우당에서도 실체적인 당원의 수는 1명이다. 이들은 바로 당수(黨首)다. 사회민주당의 당수는 북한 간부인 김영대이며 천도교청우당의 당수는 월북자인 류미영이다. 류미영의 남편인 최덕신 씨는 1961년부터 1963년까지 박정희의 내각에서 외무부 장관으로 지냈다. 최덕신과 류미영은 월북자 중에 최고위급 인사였고, 그들의 월북 이유는 아직까지 미스터리다.


아무튼 북한 당국은 이 부부의 월북을 환영했다. 최덕신과 류미영이 천도교 신자였기 때문에 최덕신은 천도교청우당 당수가 됐고, 그가 1989년에 죽고 나서 류미영은 청우당 당수의 직위를 물려받았다. 어쨌든 류미영의 나이가 90세 이상인데 ‘젊은 친구의 정당’이라는 뜻인 ‘청우당(靑友黨)’의 당수를 맡고 있다는 것은 어색해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면 소당의 당수들은 북한에서 얼마나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인가? 이에 대한 명확한 증거는 없다. 다만 2011년 12월 김정일 사망 이후 북한은 국가장의위원회 위원 목록을 공포했는데 이 목록에서 김영대와 류미영은 마지막에 위치해 있었다.


양당에서는 진짜 1인 당원 외에 가짜 당원도 있다. 이들은 바로 조선노동당 당원인 북한 외무성 직원이다. 가짜 당원의 의무는 외국 대표, 특히 외국 좌익 세력과 만날 때 ‘우리는 사회민주당 당원이다’, ‘우리는 천도교청우당 당원이다’와 같은 것을 주장하는 것이다. 이들은 남한 극좌세력과 만난 적도 있다. 예를 들면 2008년 김영대를 비롯한 조선사회민주당 당원들이 이정희, 강기갑 등 민주노동당 당원과 만났고, ‘일본 독도 침탈 야욕규탄 공동성명’을 합의하였으며 2012년에 조선사회민주당은 통합진보당에게 ‘귀당 오늘 위기를 극복할 것’을 바라는 편지를 띄우기도 했다. 이 위기는 바로 당시 통진당 내 부정 선거와 관련한 위기였다.
 
이런 대외적 만남 이외에 북한 소당은 내부에서는 정작 아무런 활동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대외 선전에는 그렇지 않다. 조선사회민주당이 대외 선전을 제일 활발하게 했던 시절은 1990년대 초기였다. 이때 사회민주당은 ‘Korean Social Democratic Party’ 와 ‘KSDP says…’라는 2개의  잡지, ‘조선사회민주당’이라는 한국어 잡지 1개도 발행하고 있었다. 내용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았다:


1)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조선노동당으로부터 독립한 정치 활동도 존재합니다. 우리 공화국은 특색이 있지만 다당제 민주주의 국가입니다.
2)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조선노동당으로부터 독립한 정치 활동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는 위대한 수령과 어버이 장군님 밖에 모르는 일심단결한 사회입니다.


두 내용은 상호 모순이다. 또한 ‘KSDP says…’에서는 “당원들이 사회주의라는 개념을 당식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지만, ‘당식으로 이해’라는 것이 무슨 뜻인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었다. 북한에서 김일성 교시와 다른 사회주의의 정의는 용납할 수 없는 이단인 것이다. 또한 ‘조선사회민주당’ 잡지에서는 공화국에서는 정당들이 경쟁하지 않고 김일성-김정일 영도하에 노력하고 있다는 언급도 있었다.


특히 모든 사회민주당의 잡지에서는 ‘민족의 태양’ ‘인민의 자애로운 아버지’ 등 김 부자의 호칭이 다른 북한 매체와 비슷한 유형으로 사용하고 있었고,  굵은 글씨체로 표시됐다.


반면 천도교청우당은 사회민주당보다 활발한 활동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몇 년 전 ‘내나라’라는 북한 대외 선전 사이트에서 류미영 당수 남편, 바로 한국 군사정권 당시 외무부 장관이었던 최덕신이 김일성을 천도교의 최고 신으로 봤다고 주장한 기사를 발표했다.


북한 소당은 소련군정 시기로부터의 잔재라고 할 수 있다. 소련은 스스로를 민주주의 국가라고 주장하면서 아주 제한적이나마 개인 자유를 허락했다. 하지만 김일성은 1967년 ‘유일사상체계’를 도입하고 북한 매체는 아무런 단점이나 문제가 없는 나라의 이미지를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당시 북한 소당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은 다소 이상하다고 볼 수는 있다. 소당의 명목상 존재는 일심단결의 개념과 모순되는 것이다.


북한이 대외 선전에서 소당을 적극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 이와 같은 선택을 대변해 줄 수 있다. 북한 소당이 존재와 함께 이들 세력이 김 씨 일족(一族)을 지속 지지하고 있다는 선전 효과를 노리는 셈이다. 이런 점에서 북한은 소당을 폐지하지 않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사회민주당과 천도교청우당이 북한 민주화에 기여할 것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이 같은 허황된 생각이 실현될 가능성은 ‘0(제로)’이다. 1인 당원 밖에 없는 사회민주당과 천도교청우당은 유령과 같은 명목상으로만 존재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북한 체제가 어떻게 무너질지는 예측하기 쉽지 않지만, 사회민주당과 천도교청우당이 이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