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지배계층 간 ‘담합’ 깨는 게 통일의 길이다

북한의 민심이 정권으로부터 이반됐다는 것은 이제 특별한 얘기도 아니다. 북한의 공식 매체들은 여전히 김정은 중심의 영도체계를 강조하고 있지만, 탈북자나 북중 접경의 주민들에게 들어보면 서른 살의 최고지도자 김정은에게 믿음과 존경을 보내는 북한 주민들은 많지 않은 것 같다. 
 
국가가 국민을 먹여살리는 배급제가 일부 지역과 계층을 제외하고 사실상 붕괴되면서, 대다수의 북한 주민들은 이제 더 이상 국가에 대한 기대를 갖고 있지 않다. 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때까지만 해도 국가를 믿고 있다 굶어죽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이제는 그런 ‘순진한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 북한 주민들의 전언이다. 장사를 통해 알아서 먹고살겠으니 제발 방해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얘기도 나온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김정일, 김정은 같은 북한의 최고지도자들도 ‘포기할 부분’은 포기하기 시작한 것 같다. 정권을 보위하는 핵심 세력들만 챙기고 나머지는 알아서 먹고 살라는 식이다. 배급도 평양과 일부 핵심세력 위주로 이루어지고, 이런 지배계층이 각종 이권에 개입해 부정부패를 저지르며 돈을 챙기는 것을 적당히 눈감아주고 있다. 부정부패를 척결하기는 커녕 지배계층을 위한 각종 편의위락시설과 놀이시설들을 건설하며 부패한 지배계층과 결탁하고 있다고나 할까? 정권을 보위하는 핵심세력들의 일탈을 적당히 묵인하면서, 이들의 지지를 통해 정권을 유지하는 것이 지금 김정은 정권의 운영 방식이다.


北 지배계층, 김정은에게 충성하는 이유는?


그렇다면, 북한의 지배계층은 김정은으로부터 챙길 수 있는 경제적 이득 때문에 김정은에게 충성을 다하고 있는 것인가?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북한 지배계층이 (적어도 표면상) 김정은에게 충성을 다하는 이유는 북한 체제가 무너질 경우 김정은과 함께 자기 자신들이 피해자가 될 것이라는 운명공동체적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과 같은 낙후된 체제일지라도 지배계층은 나름의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데, 자칫 체제가 무너질 경우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 이들로 하여금 김정은에게 충성을 다하도록 하는 것이다.


남한 체제로의 통일이 이뤄질 경우 북한 지배계층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독일 통일의 사례를 참고할 수 있다. 동독이 서독으로 흡수통합되면서 동독의 지배계층은 새로운 통독 사회에서 상당수 몰락했다. 1995년 당시 독일 엘리트 중 동서독인의 비율을 보면, 연방의회 의원 가운데 동독 출신 비율은 22.3%, 연방 행정 공무원 가운데 동독 출신 비율은 1.6%에 불과했다. 특히, 1995년 당시 구동독 지역 지방행정 조직 공무원 중 동독 출신 비율이 12.7%에 그치는 등(서독 지역 지방행정 조직 가운데 동독 출신 공무원 비율은 0%) 동독 출신 엘리트들은 구동독 지역에서조차 대우받지 못했다. 이러한 현상은 통일 직후 초기 몇 년 동안 구동독 주민들 사이에서 ‘식민지화’라는 감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독일의 사례에서 보여지는 이와 같은 이유 때문에 김정은과 핵심 지배계층 사이에는 지금 암묵적 담합이 형성돼 있다. 지금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암묵적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고 있는 것이다. 대중시위에 의한 체제붕괴가 이뤄지기 어려운 북한 구조에서 북한의 변화는 권력층의 균열로부터 비롯될 가능성이 높은데, 아직까지 김정은 체제가 표면상 견고하게 유지되는 것은 김정은-지배계층 사이의 담합이 깨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김정은-지배계층 간 암묵적 담합 깨뜨리는 것이 통일의 길


결국, 통일을 위해서는 김정은과 지배계층 사이의 담합이 우선적으로 깨져야 한다. 지배계층이 김정은과 운명공동체라는 의식에서 벗어나 통일이 자신들에게 해롭지 않다는 인식을 하게 될 때 북한 권력층 내에 변화의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통일 과정에서 (반인권적인 악질인사들은 일부 배제하더라도) 북한의 일반 엘리트들은 재교육을 통해 북한 지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는 인식을 북한에 줄 필요가 있다. 우리의 통일은 독일과 같이 서독이 동독의 지배구조를 완전히 접수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의 엘리트들을 상당부분 활용하게 하는 방식이라는 메시지를 북한에 지속적으로 줄 필요가 있는 것이다. 북한 체제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그 체제에서 엘리트로 자라난 이들은 통일과정에서 우리가 배척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보듬고 가야 할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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