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이라?…인민들에겐 북한판 ‘듣보잡’일텐데….

I.
제3차 당대표자회의에 앞서 김정일은 3남 김정은을 여동생 김경희와 함께 대장으로 임명했다. 혹시나 기대했던 중대발표라는 것은 김정일을 당 총비서에 재추대한다는 것이다. 식상하고 한심한 내용이다. 따라서 관심은 새벽에 발표된 김정은의 대장임명에 쏠릴 수밖에 없다. 결론은 김일성 민족, 김일성 조선의 세자 책봉식이 시작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언론들은 김일성 왕조의 3대 세습을 같은 한민족으로서 부끄럽고, 인류가 공화국이라는 정치제도를 만들어 낸 이후 유례가 없는 시대착오적 사건이라고 보고 있다. 오로지 중국만이 김정은 대장의 등장을 북한의 내정문제라고 애써 외면하면서, 김정일의 총비서 재추대를 ‘축하’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도 김정은의 후계자 임명을 ‘어떤 점에서는’ 기대하고 있지 않았을까? 친북, 종북주의자를 포함하여 도대체 북한을 주시하는 사람 중 어느 누구가 김정일이 수령체제를 포기할 만큼 ‘스마트’하다고 생각하겠는가? 차라리 우리는 김정일이 막내 김정은을 후계자로 밀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단 권력을 세습시키기 위해서라는 대답은 동어반복이다. 또 아버지의 끝없는 사랑 때문이라면 장남과 차남에게도 대장은 아니더라도 중장 정도는 줄 수 있어야 하겠지만, 아마 김정남은 마카오의 술집에서 TV뉴스로 동생의 입대소식, 즉 대장임명 뉴스를 CNN을 통해 전해 받았을 지도 모른다.


II.
김정일이 김정은을 자신의 붕어빵으로 보아 ‘공화국의 세자’에 적임자로 생각하였다는 점은 김정일의 일본인 요리사의 증언으로 인해 오래전부터 알려져 왔다. 그러나 세자가 언젠가 등극해야 할 김일성 조선은 어떤 나라인가? 그것은 수령체제이고 북한식 수령체제는 오로지 사디스트 수령 1명과 ‘수첩’을 들고 수령에게 조아리는 다수의 마조키스트 수하들로 구성되어 있다. 즉 수령과 부하의 사도마조키즘적 관계설정이 수령주의를 실현하는 제1원칙이다. 노동신문의 그 참을 수 없는 수령찬양의 문체만을 보아도 이 변태적 인간관계를 확인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김정은이 대장과 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의 자리에 점프한 것은 김정일의 3명의 아들 중 그가 이런 사디스트적 기질을 넉넉히 갖고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천안함 폭침을 김정은이 기획했다는 소문도 공화국 후계자의 제1덕목인 사디스트적 독기시험과 관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른 한편 북한 수령체제의 본질을 아는 사람은 수령체제와 북한의 개혁개방이 물과 기름처럼 서로 섞일 수 없다는 점 역시 잘 알고 있다. 개혁개방의 이유가 있다면 경제회복이지만 자신의 수하가 돈 앞에서 ‘수첩’을 드는 모습을 공화국 수령은 참을 수 없기 때문이다.


공화국을 개혁개방 해야 인민의 먹고 사는 문제를 그나마 자체 해결할 수 있는 희망이 있지만, 그것은 김일성 조선의 수령체제를 끝내는 것이다. 그러나 개혁개방을 하지 않으면 먹고사는 문제를 수령체제가 해결할 수 없다는 것도 분명하다. 과거에는 동구사회주의 국가의 원조나 중소분쟁에 틈에 의존하여 주체조선의 위상을 드높일 수 있었다. 그러나 이 공화국의 사회주의적 뒷배가 사라진 후에 김정일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어린 학생들을 혹사시켜 주체조선의 껍데기만을 ‘아리랑 축전’으로 포장하여 외화벌이의 수단으로 삼는 것뿐이다. 물론 이 껍데기 주체조선마저 불필요한 분야인 마약밀매, 위조화폐, 위조담배 등 기본적으로 야쿠사의 사업영역과 다름없는 업종에서 달러를 모아 39호실 계좌에 축적하는 일은 공화국의 야사(野史)일 뿐이다.


수령체제와 개혁개방의 당위성, 이것이 김정일의 딜레마였지만, 그는 선군정치를 통해 수령체제의 보위를 선택하였다. 따지고 보면 가업(家業)이 수령인 김일성 가문의 넘버2로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김정일이 김정은에게 수령의 가업을 전하겠다는 것은 바로 이 딜레마를 넘긴다는 것이다.


III.
며칠 전 통일연구원의 박형중 선임연구위원은 <워싱턴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에 대한 예측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이야기하였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김정일의 행태는 그 큰 줄거리를 보면 절대로 예측불가능하지 않다. 김정일의 관심은 김일성 가문에 의한 수령체제의 유지이고 동시에 수령체제가 세계의 관심을 끄는 것이다. 한마디로 수령체제의 본질은 허영이며, 허영의 조건이 북한체제의 존재조건이다.


허영이란 헛된 명예욕, 헛된 과시욕에 중독되었을 때 일어난다. 그리고 정치적 허영이란 항상 우상화와 공포심이라는 한 동전의 양면으로 나타나며, 바로 이러한 허영을 감내하고 박수를 치는 층이 필요하다. 동시에 사회적으로 극히 낭비적인 정치적 허영을 지속시킬 수 있는 경제조건이 필요하다.


한나 아렌트가 정확히 파악하였듯이 전체주의체제는 항상 동심원으로 기술될 수 있다. 즉 수령이라는 원의 중심을 친족과 측근으로 구성된 체제핵심계층이 둘러싸고, 그 외곽을 평양을 중심으로 하는 상류층의 체제지지층이 감싸고 있다. 다음으로 이 체제지지층을 평양 이외의 지역에 사는 광범위한 일반인민이 둘러싼다.


그러나 잘 알려졌듯이 배급제와 일반경제의 붕괴이후 동심원의 외곽을 이루고 있는 광범위한 북한인민은 수령체제로부터 어떤 혜택도 받지 못하고 방치되어 있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수령체제를 지지할 아무런 이유도 없으며, 김정은의 세자책봉을 반길 이유도 없다. 다만 김정일에 대한 공포심으로 그 불만을 표출할 수가 없을 뿐이지만 근자에 와서는 이러한 공포의 금기마저 약화되고 있다.


다음으로 북한의 체제지지층은 수령체제와 운명을 같이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 조건은 역시 교화소와 정치범 수용소로 요약되는 김정일의 폭정과 북한사회에서의 상대적 호의호식 이다. 이제 북한판 ‘듣보잡’이라고 할 수 있는 김정은에 대한 우상화가 시작되겠지만, 본질적으로 계산에 의해 체제를 지지하고 있는 이들에게 3대째 우상화는 큰 성과를 얻을 수 없을 것이다.


김정일의 측근의 경우, 그에 대한 충성은 아마도 자신들이 공화국의 핵을 이루고 있다는 자부심, 절대적 호의호식과 함께 역시 수령의 눈 밖에 나면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당할 수 있다는 공포심일 것이다.


다른 한편 이러한 수령체제를 유지시키는 경제적 바탕은 삼취(三取)로 요약될 수 있다. 즉 수령체제로부터 어떤 혜택도 받지 못하고 있는 북한인민의 착취(搾取), 협박과 회유를 통한 한국으로부터의 갈취(喝取), 중국의 지정학적 이해를 이용하고 있지만 본질적으로 빌어먹는 것에 불과한 중국으로부터의 걸취(乞取)가 그것이다.


즉 허영이 본질인 수령체제를 북한인민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우선 무자비한 폭력에 대한 공포심이고 그 다음 계층별 이해관계이며 어느 하나 정상인 것이 없는 삼취이다. 이런 상태는 김정일이 사망하게 되면 근본적으로 바뀔 수밖에 없다.


IV.
현 수령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삼취 중에 이미 한국으로부터의 갈취는 이명박 정부에 의해 상당부분 불가능해 졌으며, 북한인민의 착취 역시 주는 것 없이 앗아만 간다는 점에서 지속적일 수 없다. 또 중국 역시 김정은과 북한의 지도부에게 개혁개방을 강력히 요구할 것이다. 중국은 계속 북한에 지원을 하겠지만, 장기적으로 망가진 북한경제가 결코 북한의 미래를 담보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다.


돈줄이 말라가면 허영은 그 가면을 벗고 별안간 초라해 진다. 이미 김정일에 대하여는 물론, ‘그깟 놈’ 김정은에게 어떠한 외경심도 갖고 있진 않은 다수 북한인민에게는 초라해진 수령이란 그 자체가 경멸의 대상이다. 또 인기의 비결인 핵도 그 효용가치는 떨어지고 역효과를 내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이 ‘버릴 듯이 버릴 듯이 버리지 않을’ 낚시밥이라는 것을 미국도 한국도 일본도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정말로 비핵화를 하겠다는 의지가 없다면 더 이상 핵공갈 장사는 되지 않는다.


수령체제의 지지기반인 북한의 체제지지층에게도 지속적으로 공포 속에서 산다는 것은 피곤하고 혐오스러운 일이다. 만일 개혁개방이 더 낳은 생활과 자식들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져올 것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한국과 미국 뿐 아니라 중국도 개혁개방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의 수령체제에 대한 지지는 ‘계산상으로는’ 불가능하다. 특히 한국은 북한정권이 개혁개방을 하겠다고 결심할 경우,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북한에 막대한 지원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런 상황은 지금까지 본질적으로 기회를 포착하는 것으로 삶의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여 왔으며, 따라서 새로운 ‘시대정신’을 간파할 능력이 있는 북한의 체제지지층을 흔들 것이다.


그렇다면 김정일의 측근은 어떠할까? 김정은이 고모 김경희와 입대동기로서 대장에 임명되었다는 사실은 김정일이 자신의 사후에도 ‘믿을 자는 오로지 피붙이들’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는 김정일 본인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는 김일성의 친동생 김영주, 즉 작은아버지를 숙청하여 자강도로 유배시켰고, 계모 김성애를 곁가지로 숙청하고 이복동생 김평일도 평생 유럽을 배회하도록 만들었다. 권력의 세계에서 피붙이란 그리 믿을만하지 못하다는 것은 고금의 진리다.


또 언론보도에 의하면 북한 권력층의 핵심인사들을 거의 모두 70대의 노년층으로 채웠다는 것은, 이들이 개혁개방이라는 체제변환을 적어도 후계자 작업이 뿌리를 내릴 때까지는 시도할 의사가 생물학적으로 없을 것이라는 기대에서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수령체제의 본질은 수령 1인과 그를 둘러싼 다수의 ‘수첩’들이다. 아무리 북한사회에서 호의호식하고 자기 영역에서 나름대로 호령할 수 있는 위치에 있더라도 이들 역시 항상 공포와 감시에 시달리는 수령의 ‘수첩’에 불과하다. 필자는 이들이 영원히 수령체제의 장식물과 공포정치의 수족의 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단정은 인간의 본질에 대한 무지라고 생각한다. 즉 김정은의 사후에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권력투쟁은, 어쩌면 수령과 수첩이라는 인간성의 모욕에 대한 저항의 측면을 가질 수 있다.


하루 만에 끝난 제3차 당대표회의의 결과를 보면서, 우리는 이제 북한의 변화가 피할 수 없음을 확인할 수 있다. 왜냐하면 어떤 체제, 어떤 사회나 변하지 않기 위해서는 변해야 하나, 김정일은 변화를 포기함으로써 이제 수령체제는 변할 수밖에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점이 북한의 변화를 기대하는 모든 사람이 김정은이 후계자가 될 것임을 예측, 혹은 기대했던 것이다. 작년 말의 통화개혁 실패를 통해 북한경제가 돌아오지 않는 강을 넘었듯이, 이번 당대표회의에서 진부하기 짝이 없는 김정일의 체제망집으로 인해 북한체제 역시 돌아오지 않는 강을 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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