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는 진심일까

지난 5일 평양 조선노동당 청사에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김정은이 악수하고 있다. / 사진=조선중앙통신 캡쳐

지난 8일 한국의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일행이 북한 방문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미국 워싱턴을 찾아 트럼프 대통령을 만났습니다. 정 실장은 김정은이 비핵화 의지를 밝혔고, 트럼프 대통령을 조속히 만나고 싶어 한다고 전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곧바로 김정은의 미북 정상회담 제의를 수용했고, 이에 따라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남북정상회담과 미북정상회담이 한 달 안에 열리게 됐습니다. 그러나 김정은이 밝혔다고 하는 비핵화 의지는 위기 모면용일 가능성이 높아 그 진정성에는 여전히 의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정의용 실장의 전언에 따르면, 김정은은 ‘한반도 비핵화’가 김일성의 유훈이며 군사적 위협이 사라지고 체제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언급은 이전부터 북한 당국이 꾸준히 주장했던 것으로 새로운 내용은 없습니다. 먼저 ‘한반도 비핵화’가 김일성의 유훈이라는 얘기부터 따져보겠습니다. 김일성이 비핵화를 언급했던 당시 북한은 초보적 수준의 핵개발만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핵무기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습니다. 한국에는 한때 960여 기의 전술핵무기가 존재했고 90년대 초에는 약 100여 기의 전술핵무기가 있었기 때문에 김일성은 이것을 없애라는 뜻으로 한반도 비핵화를 얘기했던 겁니다. 결국 주한미군은 1991년 남북한이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체결하자 전술핵무기를 모두 철수했습니다. 그러나 김일성은 ‘한반도 비핵화’의 넓은 의미로 주한미군의 철수까지를 주장했으며, 김정일이나 김정은도 비핵화의 대상을 ‘한반도’라고 할 뿐, 단 한 번도 ‘조선’ 혹은 ‘북한’이라고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이 말은 곧, 자신들은 핵보유국 지위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주한미군이 한반도에서 떠나라는 주장을 교묘하게 포장한 것입니다.

김정은이 얘기했다는 ‘군사적 위협이 사라지고 체제 안전이 보장되면’ 이라는 핵 포기의 조건에는 두 가지 전제가 담겨있습니다. 군사적 위협의 제거는 주한미군 철수를 말하는 것이고, 체제 안전의 보장은 평화협정의 체결을 통한 미북 관계 정상화를 뜻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김정은은 전제조건 없는 미북대화를 주장해 왔으면서 정작 미북 대화가 가시권에 들어오자 북한 당국의 해묵은 주장들을 전제로 내세우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김정은이 미북 정상회담을 제안한 것은 비핵화 의지의 진정성을 담보하고 있다기보다는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 제재의 예봉을 무디게 하기 위한 위기모면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이나 미국 등 국제사회에서 김정은의 미북 정상회담 제안을 높이 평가하고 있는 이유는 집권 후 그가 미국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굽히지 않고 도발일변도의 행태만 보여 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과의 정상회담을 즉각 수용했지만, 그것은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를 정확히 알아보기 위한 탐색 수준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가 현재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꼼수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는 점을 확인할 때 트럼프 대통령은 외교적 해법을 포기하고 군사 행동에 돌입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가 의심스러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예컨대 북한 매체들은 김정은의 비핵화 언급을 일절 전하지 않고 있습니다. 국제적으로 주목을 끌고 있는 뉴스임에도 정작 당사국인 북한 주민들은 최고지도자가 ‘비핵화’ 의지를 밝혔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이 점은 김정은의 의지를 의심케 하기에 충분합니다. 또한 북한 매체들은 미북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이 높아지자 며칠간 대미 비방을 중단했었는데, 지난 14일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비난하는 등 대미공세를 재개했습니다. <노동신문>은 이날 기사에서 주한미군을 ‘미제 침략군’으로 규정하며 ‘남조선 안보를 구실로 영구히 주둔하며 더 많은 인민의 혈세를 강탈해내려는 날강도’라고 비난했습니다. 그러면서 “남조선 인민들이 바라는 것은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불청객인 미제 침략군의 무조건적인” 철수라고 했지만, 이런 주장은 주한미군 철수를 ‘비핵화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는 김정은의 생각을 대변한 것에 다름 아닙니다. 북한 매체들은 미국과의 대화를 통해 대북제재를 완화시킬 수 있을 거라는 기대에서 대미 비난을 잠시 중단했었으나, 트럼프 정부의 입장이 북한과 정상회담을 비롯한 대화는 진행하되, 현재의 ‘최대 압박과 제재’ 기조는 그대로 유지한다는 방침으로 나타나자 본색을 드러낸 것으로 생각됩니다.

북한 정권 사상 ‘최대의 위기’에 직면한 김정은이 일시적인 위기모면용으로 평화공세를 취한다고 해도 국제사회는 거기에 넘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북한 당국은 비핵화와 관련해서 지금까지 여덟 번이나 국제사회와의 약속을 깼고, 이번에 아홉 번째 약속을 했습니다. 그러나 북한 당국이 ‘꼬리가 아홉 개 달린 여우의 재주’를 부린다한들 이번에는 국제사회가 넘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김정은이 핵 포기의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하고 실질적인 조치를 취하기 전에는 국제사회가 그의 진정성을 믿어주지 않을 것입니다. 김정은이 위기모면용이 아니라 북한의 총체적 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 진정한 ‘비핵화’ 용단을 내리기를 다시 한 번 촉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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