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은 ‘어린 농구광’서 ‘철든 지도자’ 돼야

4일 조선중앙TV는 김정은이 지난달 28일 평양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조선 횃불팀과 미국 ‘할렘 글로브 트로터스’ 농구팀과의 혼성 게임을 관람하는 장면을 재방송했다. TV 방송 화면을 직접 보게 되면 김정은이 등장하는 1호 행사의 현장 열기가 얼마나 뜨거운지 새삼 실감할 수 있다. 그의 등장과 함께 체육관에 우렁차게 퍼지는 만세 함성, 열광적인 박수, 참석자들은 발을 동동 구르면 그를 향해 손을 흔든다. 이색적인 것은 레게와 사자 머리로 치장한 미국 농구팀이 현장에서 박수를 치면서 김정은을 맞이했다는 점이다.


김정은 등장 이후 마지막으로 체육관에 나와 장내를 열광의 도가니로 몰고 간 사람은 다름 아닌 과거 NBA 선수 시절 코트의 악동으로 불렸던 데니스 로드먼이었다. 그는 입과 코 주변에 피어싱과 귀걸이를 하고 선글라스를 낀 상태로 등장해 김정은과 포옹했다. 장내는 관중들의 함성으로 거의 떠나갈 듯했고, 감격의 눈물을 보이는 관중들의 화면도 교차됐다. 김정은은 경기 관람 내내 특유의 유쾌하고 거침 없는 손짓으로 로드먼과 대화를 이어갔다. 김정은 농구 경기 이후 저녁 만찬에도 로드먼을 초대해 극진히 대접했다.


김정은은 이 자리에서 북미관계 개선 의지를 밝혔고, 방북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간 로드먼은 “김정은은 미국과 전쟁을 원치 않으며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자신에게 전화해주길 원한다”면서 “오바마와 김정은은 농구를 사랑하기 때문에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과 같은 인권유린이 미국에도 이뤄진다’고 말할 정도로 분별력이 떨어지는 로드먼의 제안에 대해 미국 정부의 반응은 차가웠다. 백악관은 “북한 정권은 부자연스러운 스포츠 행사에 돈을 쓰지 말고 굶주림에 시달리거나 투옥된 채 인권을 침해받는 주민들의 안녕에 집중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2008년 2월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상임지휘자 로린 마젤)가 평양을 방문해 동평양대극장에서 역사적인 공연을 가진 바 있다. 뉴욕 필은 북한의 국가를 연주했고, 무대에는 미국 성조기와 북한 인공기가 나란히 걸렸다. 북한 청중들은 미국의 국가연주를 듣고 박수로서 예의를 갖췄다. 그러나 이 감동적인 공연에도 미북관계는 움직이지 않았고, 다음 해 북한은 2차 핵실험을 했다. 북한이 도발을 전후해 민간사절 형식의 예술단이나 체육인을 초청해 ‘관계 개선’ 메시지를 띄우는 행태는 이제 북한 지도자의 ‘기행’ 정도로 취급받고 있다.


김정은과 로드먼의 평양 만남은 서글픈 측면까지 엿보인다. 로드먼은 김정은이 집권 이후 만난 가장 유명한 미국인이다. 그는 방북한 구글 슈미츠 회장과도 만나지 않았다. 그런데 10대 유학시절 동경한 NBA 스타를 지도자가 돼 북한으로 초청하고 관중들이 환호하는 장면을 그대로 방송에 내보냈다. 핵실험 이후 유엔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반북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국제사회 제재가 본격화되는 국면에서 경험 있고 철이 든 지도자라면 하기 어려운 행동이다. 어린 농구광을 수령으로 모시느라 백성들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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