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씨, 돌아오세요! 스위스 베른으로

“아름다운 베르네 맑은 시냇물이 넘쳐흐르는~”


어려서 즐겨 부르던 스위스 요들송으로 알려진 노래의 가사 첫 소절이다. 스위스의 수도로 알려졌으나 여러 도시들이 연방을 형성한 그 나라의 독특함 탓인지 우리처럼 수도에 모든 게 밀집되지 않은, 기대한 것 보다는 한적하고 아름다운 도시란다. 이곳은 북한의 김정은이 10여년 유학한 곳으로 다시 한 번 우리 귀에 낯익은 곳이 되었다.


보도에 따르면 1991년부터 9년간 스위스 베른의 국제학교에서 공부했다고 하니, 1984년생인 (북한의 공식 발표로는 1982년생이라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북한의 고질적인 연도 맞추기에 따른 것이라 짐작된다. 김일성의 생일인 1912년을 기점으로 김정일이 실제 1941년생인데도 1942년생으로 공표하듯이) 김정은은 우리로 치면 초등학교부터 시작하여 고등학교까지 과정을 해외에서 마친 셈이 된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요람에서 그는 청소년기를 보낸 것이다.


김정은에게 베른의 기억은 어떻게 남아있을까? 학업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 대학을 마치고 황태자의 신분으로 지내다가 아버지로부터 나랏일을 물려받은 게 다시 10년이 조금 넘은 시점이니 아직 청소년 시기의 기억이 삼삼할 만도 하다.


아무튼 이제부터 우리는 김정은의 새로운 북한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을 나름 이리저리 더듬어보는 고생을 감내해야 한다. 그러나 세심한 분석에 앞서 지금 보여 지는 그들의 행태는 너무나 구태의연하게 느껴진다는 것이 필자의 솔직한 느낌이다. 굳이 분석을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심경마저 든다.


북한은 원래 전시체제로 출발했다. 무엇을 위한 전쟁인가? 사회주의 체제의 일환으로 세계혁명 완수를 위한 전쟁이었다. 미제의 식민지로부터 남조선을 해방시켜 한반도에서의 조국통일이라는 성업을 달성하기 위한 전쟁이었다. 위대한 성전에서의 승리를 위해 체제가 정비된 그런 집단이다.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에 따르면 공산혁명이 완수되면 국가는 소멸된다고 한다. 그래서 기존의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 따위의 국가기구들은 형식적으로 존재하며, 다만 전쟁 지휘 사령부로서 당이 체제 전체를 영도하게 되어 있다. 이데올로기로나, 전시 상황이라는 설정으로나, 당이 나라 전체의 인적 물적 자원의 상용에 대한 배타적 독점권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자유로운 민간 경제활동은 금지된다.


전시이기 때문에 인권이나 민주주의 따위의 기본 가치들은 유보된다. 전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민들부터의 지지가 아니라 인민들을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통제하여 전쟁에서 승리로 이끄느냐가 최선의 과제이다. 전투사령부에 대한 이의 제기는 전시 이적행위에 해당한다.


요컨대 인민들의 복리후생 향상을 통해 인민들로부터 지지를 받음으로써 권력이 강화되고 지속되는 생태가 아니라 오히려 인민을 어떻게 하면 잘 통제하느냐에 골몰하게 되어있다.


이런 흐름이 설득력을 잃게 된 것은 바로 1980년대 시작된 냉전의 해체가 계기가 되었다. 세계 공산혁명의 달성은 신기루였고, 남조선은 더 이상 해방시켜야 할 미제의 식민지가 아닌 점이 대내외적으로 확인된 것이다. 사회주의 체제 자체의 설정 근거가 사라진 셈이다. 많은 사회주의 국가들이 스스로 옷을 바꿔 입었다.


여기에는 지도부의 교체가 계기가 되었었다. 러시아 중국 베트남 등이 그랬다. 스스로 옷을 갈아입지 못한 나라들은 기존 권력이 전복되는 방식으로 체제 이행을 단행하였다. 루마니아, 불가리아 등등.


그들의 변화된 요체는 과연 무엇인가? 대내적으로는 시장경제체제로의 개혁이었고, 대외적으로는 시장경제체제로의 개방이었다. 이러한 개혁과 개방의 결과 다행히 대량 아사자나 민생고에 모국을 탈출하는 비극을 모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북한은 어떠했는가. 북한은 반대의 길을 걸었다. 그 대가가 대량 아사요, 지금도 속출하는 탈북행렬이고, 민생경제의 파탄이다.


요컨대 개혁과 개방 외엔 방법이 없는데도 요지부동이었다. 오히려 선군정치라는 이름으로 더욱 더 전시체제를 옥죄여 역사적으로 퇴보하는 모습만을 보여 주었을 따름이다. 인민들로부터 지지를 받아야 권력이 유지되고 지속되고 강화 된다는 변화된 세상의 권력 이치를 여전히 외면한 채 통제일변도로 달리기만 했다. 이것이 김정은이 물려받은 북한이었다.


그러나 김정은은 아직 이와 같은 방식에서 벗어 날 기미를 보이고 있지 않다. 그래서 답답하다. 아직 얼마 되지 않은 권력이라는데, 섣부른 판단이 아니냐고 하겠지만, 변화를 권력이 스스로 솔선한 나라들은 모두 새로운 지도자가 나오자마자 부터 새로운 방식이 시작되었었다. 지금 현재 북한을 보건대 도무지 기대를 걸어 볼 여지가 없다고 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김일성 생일 100주년 행사나 미사일발사, 또 대남 비난 발언들을 보면 도무지 지도부가 바뀐 건지가 불분명하다. 김정일이 살아있는 것이 아닌가 할 정도이다. 여기서 잠깐. 김정은은 다를 수 있고 아직은 기회가 있다고 볼 수도 있을까? 우리로 하면 초중고 시절을 민주주의의 전형인 스위스에서 보내지 않았는가? 그러면 새로운 방식을 시도할 만 하다고 본다. 리비아를 오랜 고립 속에서 국제무대로 이끈 것이 영국에서 유학했다는 가다피의 아들 아니었는가.


그런데 가다피의 몰락을 보고 김정은은 잘못된 교훈을 얻을 수도 있다. 김정은에게 간곡히 당부하고 싶다. 자신감을 가지라고. 개혁하고 개방해도 당장 권력의 누수가 오거나 권력이 무너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들려주고 싶다. 또 어느 순간에는 권력을 놓아야 할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했으면 한다. 그것이 역사속에 명예롭게 사는 것이고 가족의 불행을 막는 것이라는 점을. 


가다피의 비극은 개혁과 개방을 해서가 아니라 끝까지 자신만의 권력을 고집한 데에 있다는 점을. 아니면 정말 가다피 가족과 같은 운명을 걷게 된다는 것을 꼭 들려주고 싶다. 어쩌면 이 말은 김정은에게 해도 소용이 없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그를 둘러싼 북한의 최고위 권력층이 모두가 경청해야 할 것이다. 김정은에게 “돌아오라 베른으로”라고 외친들 이미 그에게는 그럴 의지도 힘도 없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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