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위원장! 지난달 22일 평양체육관서 4일간 진행된 제5차 ‘3대혁명선구자대회’(1986년부터 4차까지는 ‘3대혁명붉은기쟁취운동선구자대회’)가 폐막되었군요. 당신은 6년 만에 열린 이번 대회에 불참하고 서한을 보냈습니다.
오늘은 조선노동당의 인민지도 노선인 ‘3대혁명’에 대해 이야기하지요. 여기서 말하는 ‘3대혁명’은 사상혁명(사람개조), 기술혁명(자연개조), 문화혁명(사회개조)으로 사회주의건설의 필요한 일환으로 다소 이상적인 인민운동이었죠.
당신의 부친 김정일 2대 수령은 1964년 김일성종합대학 졸업 후 당중앙위원회에서 업무를 보았습니다. ‘친애하는 지도자’ ‘당중앙’으로 불린 그가 든든한 동지세력이 필요했고 1970년대는 혁명1세대가 60~70대의 고령이 되었습니다.
‘당중앙’은 1973년 2월, 중앙기관의 당일군과 사회대학 졸업반생 수만 명을 20~30명씩 조를 짜서 ‘3대혁명소조’ 이름으로 전국의 공장·기업소, 협동농장 등에 파견하는 정책을 폈지요. 이것이 세상에 드러난 ‘3대혁명’의 골간이지요.
1974년 2월, 당중앙위원회 정치국위원이 된 ‘친지김동’(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은 ‘위수김동’(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유일한 후계자가 되었고 사람개조·교체의 사상혁명을 통해 간부들이 당에 절대복종하는 규율을 세웠습니다.
대중을 상대로 독보, 학습회, 강연, 생활총화 등 정치조직 생활을 철저히 도입했고 아울러 전국도처에 김일성동상, 박물관, 기념관을 세우는 ‘수령우상화사업’을 전개했습니다. 이에 불만이 있는 누구든 ‘관리소(정치범수용소)’로 보냈죠.
이렇듯 ‘3대혁명’ 운동은 사람·자연·사회개조의 명분으로 진행되었으나 실제는 대중을 통제하기 위한 교묘한 통치방법 중 하나였지요. 초대 수령(김일성)서 2대 수령(김정일)으로 권력이 이양되는 시기 민심안정에 꼭 필요했던 전략입니다.
김정은 위원장! 당신이 세상에 없을 때인 1970년대 여기 남조선(남한)에서 ‘새마을운동’이 있었습니다. “근면·자조·협동”의 구호 아래 전국적으로 이뤄진 지역사회 개발운동이었죠. 이후 그야말로 비약적인 경제발전을 이룩한 남조선이지요.
국민소득 3만 달러이고 자가용승용차 1천만 대가 도로에 굴러갑니다. 세계조선업 및 반도체생산 1위, 세계자동차생산 5위이며 올림픽과 월드컵을 개최한 나라입니다. 미국, 일본, 독일, 영국 등과 함께 세계10위권의 경제대국이랍니다.
공화국의 수준 좀 볼까요. 고작해서 석탄·광물, 약초, 농수산물, 공예품, 인력수출이 전부인 평양의 무역입니다. 세계경제순위 160위권 밖에 있는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 수준에도 못 미치는 오늘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지요.
국민소득 800달러도 못되는 가난한 나라, 공화국의 인민들 60%가 멀건 죽을 먹고 삽니다. 노인의 절반 가까이가 각종 질병에 허덕이며 여성·어린이 40%는 영양실조에 걸려있죠. 신생아 사망률도 세계적으로 볼 때 상당히 높습니다.
근 반세기 전 남과 북의 두 정권이 시대적 요구에 맞게 자기 사회와 경제발전의 일환으로 국민(인민)을 상대로 똑같이 했던 ‘새마을운동’과 ‘3대혁명운동’입니다. 50년이 지난 오늘 그 운동의 효과는 각각 있었다고 볼 수도 있겠지요.
국민을 잘살게 하기 위한 ‘새마을운동’은 대성공이고, 수령 독재자의 장기집권 공고화를 위한 ‘3대혁명운동’은 구시대 악법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 저주스러운 역사의 악법을 답습하려는 당신은 참으로 무능하고 한심합니다.
2021년 12월 6일 – 서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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