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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차기 후계자로 유력한 김정일의 3남 김정운이 스위스 베른국제학교 유학시절 ‘박 철’이란 가명을 사용했으며 그의 옆에는 ‘문광철이라는 보디가드 개념의 북한 학생’이 함께 다녔다는 요지의 스위스의 프랑스어 시사주간지 레브도(L’hebdo)의 보도는 김정철과 김정운을 혼동해서 생긴 오보인 것으로 추정된다.
레브도는 ‘수습 독재자가 베른지방 독일어를 말한다’ 제목의 지난 5일자 기사에서 “그는 박철이라는 가명을 사용했다“면서 당시 체육교사였던 슈워츠 씨의 말을 빌어 “그는 학교 농구부와 수영부 활동을 했고, 수줍고 내성적인 성격이었으나 팀워크를 형성 하는 데는 강인했다”고 회고했다고 전했다.
잡지는 “익명을 요구하는 김정운의 베른국제학교 친구는 일종의 보디가드로 보이던 ‘광철’이란 이름의 또 다른 북한 학생이 김정운과 늘 함께 다녔다고 증언했다”고 말했다. 잡지는 이 점에 대해 슈워츠 교사도 “광철은 체격이 좋고 무뚝뚝했으며, 그를 도와서 학생들과 함께 농구를 했다”고 말했다고 소개했다.
이어 “광철은 김정운과 같은 반에 있었고, 김정운보다 훨씬 나이가 많았지만 어리게 보여 별로 어색하지는 않았다고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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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스위스 베른학교에서 ‘박 철’이라는 가명을 사용한 학생은 김정운이 아닌 김정철이었음이 작년 일본 ‘슈칸켄다이’의 콘도 다이스케 부편집장이 공개한 김정철의 입학앨범을 통해 이미 밝혀진 바 있다. 이 앨범에는 김정철의 사진 옆에 ‘Chol.Pak’이라고 쓰여있고 그 밑에는 김정철의 출신국가가 ‘N.Korea(North Korea)’임을 밝히고 있다.
또한 ‘광철’이라는 이름을 가진 김정철의 북한 출신 동료에 대한 내용도 이미 지난해 김정철의 베른학교 시절 사진과 이력을 국내에 공개한 정성장 세종연구소 남북관계 연구실장이 지난해 언급한 바 있는 인물이다. 정 실장은 당시 “(정철)은 문광철이라는 북한 학생과 함께 학교에 다녔다”면서 그는 “김정철의 친구이자 비서, 그리고 경호원 역할을 위해 평양에서 파견된 일종의 보디가드 개념”이라고 설명했었다.
레브도가 “베른국제학교의 수업은 주로 영어로 진행됐는데 김정운은 영어를 쉽게 따라잡았고, 독일어와 프랑스어도 배웠다고 한다. 김정운은 학교 단체여행에도 적극 참가했다고 이들은 전했다”고 소개한 부분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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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도 역시 김정철을 소개한 당시 베른 국제학교 교장이었던 데이비드 씨의 발언과 거의 유사하다. 정 실장은 데이비드 교장이 “김정철의 영어 실력에 대해 ‘학교를 그만둘 당시에는 꽤 능숙해졌다. 외국어인 영어로 수업을 진행하기 때문에 공부하기 어려웠을 텐데 그는 과제를 완수하곤 했다’라고 평가했다”고 소개했었다.
레브도는 ‘김정운은 겨울철에는 매주 금요일 학교 친구들과 함께 알프스의 츠바이짐멘 또는 그린델발트에 가서 스키 타기를 즐겼다’고 밝혔다. 또 잡지는 “(김정운은) 특히 미국 농구선구였던 마이클 조던과 액션배우인 장 클로드 반담을 무척 좋아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역시 정 실장이 “김정철의 베른 학교 친구들은 ‘김정철이 스위스 유학 시절 친구들과 매주 금요일 스키장에 놀러 가곤 했으며 특히 액션 영화를 좋아하고 격투 신이나 강한 액션을 따라 하기도 했다’고 증언하고 있다”라고 소개한 바 있다.
특히 김정철의 공개 사진에는 그가 좋아하던 미 프로 농구팀 시카고 불스의 유니폼을 입고 농구하는 장면도 담겨 있다.
결국 이번 김정운에 대한 스위스 레브도의 기사는 그 동안 외신을 통해 소개된 김정운의 생년월일(1983년 1월 8일생)과 김정철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당시 국제학교 관계자들의 인터뷰를 김정운으로 오인하고 합성시켜 작성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정 실장은 23일 데일리엔케이와의 통화에서 “지난해 12월 후지모토 겐지를 만났을 때도 김정철이 자신의 한국 이름과 같은 ‘박철’이라는 이름을 사용해 놀란 적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면서 “박철은 당시 스위스에서 부모 역할을 했던 고영희의 동생 고영숙의 남편이자 외교관이었던 박모 씨의 성을 따라야 했기 때문에 ‘박’ 씨 성에 자신의 이름인 ‘철’자를 넣어서 만든 것이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 레브도의 보도는 김정철의 정보를 김정운의 이력으로 착각한 데서 비롯된 오보(誤報)”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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