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게 ‘북한 김정남’은 어느 정도 유효한 카드였을까.
김정남이 생전 중국으로부터 상당 기간 보호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김정남과 중국 간의 관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중국이 북한 급변사태 등 유사시에 김정남을 김정은 ‘대타’로 내세울 계획을 갖고 있었을 것이란 분석도 내놓고 있다.
다만 중국이 김정남을 일종의 ‘히든카드’처럼 품고 있었다고 보긴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한때 중국 내에서 ‘김정은보단 김정남…’이란 기류가 있긴 했으나, 이후 김정남이 김정은 체제에 실질적 위협이 될 만한 인물은 아니라는 것. 또한 중국 입장에서 보더라도 김정남은 비교적 개혁·개방 성향이라는 것 외엔 그다지 적합한 후계자의 모습은 아니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실제 김정남은 후계자 구도에서 멀어진 뒤로는 북한 내에서 소위 편 들어줄 사람 하나 남겨두지 못했다. 중국이 아무리 밀어준다한들 북한 내에서 신진 친중 세력을 만들어낼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웠던 것. 심지어 해외를 전전하면서는 방탕한 생활을 이어갔다. 김정은의 숙청 대상이 될 게 두려웠던 건지 대외적으로 정치 욕심을 드러낸 적도 없었다.
따라서 중국이 김정남을 보호해온 건 그를 지도자감으로 여겨서라기 보단, 대북 영향력 행사 차원에서 친중파 북한 인사를 관리해온 정도라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북한의 친중파 인사와 교류를 이어가다, 그가 북한 내에서 어느 정도 입지를 다지면 중국의 영향력을 확산시키는 전략을 구사해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김정은의 고모부 장성택이다.
김정남 역시 비교적 개혁·개방 성향이었던 만큼 중국이 그를 활용해 유사시 대북 영향력을 확보하려 했을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김정남이 김정은을 대신해 북한을 안정적으로 이끌어갈 지도자라고 여기는 단계는 아니었을 것으로 보인다.
김광인 코리아선진화연대 소장은 15일 데일리NK에 “중국이 북한 내 친중 정권이 들어서길 바라는 것과 그것을 실현시키는 건 별개의 문제”라면서 “김정남은 김정은 정권이 무너졌을 때 중국이 쓸 수 있는 카드 중 하나에 불과했다. 김정은에게 심리적 압박은 줄 수 있었을 것이지만 그렇게 뛰어난 존재감을 가진 인물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익명의 대북 전문가는 “능력도 없고 방탕한 생활을 하던 김정남을 중국이 북한 차기 지도자감으로 내세우려 했을지 의문”이라 지적했다. 그는 “북한에서 하도 친중파의 씨가 마르다보니 김정남만큼은 보호를 해줘야 한다고 생각했을 수는 있다”면서도 “암살이라는 중대한 테러를 방지하는 차원이었지 차기 지도자 보호 개념은 아니었다고 본다”고 전했다.
김정남 피살이 북중관계에 미칠 영향에 대해선 “일정 정도 냉각기가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국제사회가 김정은을 ‘반(反)인륜’ 범죄자로 압박할 가능성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중국도 북한과 거리를 두는 전략을 구사할 것이란 분석이다.
대북 전문가는 “중국은 북한의 개혁개방을 원하기 때문에 그간 국제사회의 압박에도 불구, 대북 교류와 협력을 강조해왔다”면서 “하지만 국제사회가 김정남 피살 사건을 반인도범죄로 규정해 중국의 압박 동참을 요구할 경우, 중국도 마냥 손 놓고 있진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중국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북한에 특정한 ‘액션’을 취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당분간 북한 내에서 친중파를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는 건 중국으로서 꽤나 씁쓸할 만한 대목이지만, 김정남 자체가 중국의 대북 조치를 좌지우지할 만한 인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김 소장은 “오히려 중국은 김정은이 괘씸하더라도 가만히 두는 게 낫다고 판단할 수 있다. 중국은 당장 김정은을 밀어내는 게 문제가 아니라, 차기 북한 정권이 들어섰을 때 북중관계가 더 나빠질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라면서 “중국으로선 김정남이란 카드를 잃은 게 아쉽긴 하겠지만, 금세 다른 길을 모색하지 않을까 싶다”고 전망했다.
한편 중국 외교부는 15일(현지시간) 김정남 피살 사건에 대한 질문들에 “말레이시아에서 발생한 사건이고 말레이시아 당국에서 조사 중”이라는 답변만 내놓았다. 중국과 김정남 간의 연관성이 지나치게 부각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