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남이 北에 못 돌아가는 이유는?

▲ 맨 왼쪽은 김정남으로 보이는 인물이 2004년 9월 중국 베이징 국제공항에 도착하는 모습. 가운데는 2001년 5월 일본에서 추방될 당시 모습. 오른쪽이 최근 마카오에서 포착된 모습 ⓒ요미우리신문

김정일의 첫째 아들인 김정남(36)이 마카오에서 가족과 함께 10년간 거주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그가 무슨 이유로 마카오에 머물고 있는지 궁금증이 높아지고 있다.

북한 최고지도자인 김정일의 장남이 수년 간 해외를 떠도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정일과 영화배우 출신 성혜림(2002년 사망) 사이에서 태어난 김정남은 성격 등에서 김정일과 가장 비슷한 것으로 알려지며 한때 유력한 후계자로 지목되기도 했었다.

김정남이 처음 국제사회의 이목을 끈 것은 2001년 5월 부인, 아들 등과 함께 위조여권으로 일본에 밀입국하려다 적발돼 추방되면서부터다. 이후 김정남은 북한에 들어가지 못하고 중국, 러시아, 홍콩, 마카오 등지를 떠돌아다니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베일에 싸인 김정남의 행적에 대해 ‘중국에서 무역거래로 돈을 제법 벌었다’ ‘대남 공작을 지휘하고 있다’ ‘김정일의 비자금을 관리하고 있다’ 등 다양한 설(說)들이 제기되고 있지만 아직 분명히 확인된 사실은 없다.

강철환 북한민주화동맹 부위원장은 최근 입국한 고위층 탈북자의 말을 인용해 “마카오에서 목격된 것이 김정남이 확실하다면 아버지 김정일로부터 버림받아 국제 미아 신세가 됐다는 추측이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며 “김정남이 북한에 돌아가지 못하고 외부에서 맴도는 것은 이미 북한 내부에서 권력투쟁이 본격화됐다는 증거일 수 있다”고 말했다.

◆ 36억짜리 빌라에 사는 황태자 김정남

이번에 언론을 통해 공개된 김정남의 생활은 김정일의 직계 가족인 로얄패밀리답게 화려한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김정남은 둘째 부인인 장길선(33), 아들(12)과 함께 10여년 전부터 콜로안(Coloane) 섬의 고급 빌라촌인 ‘주완하오위안(竹灣豪園)’에 살고 있다고 한다.

마카오 시내에서 승용차로 15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이곳은 3층짜리 최고급 빌라 80여 가구가 모여 있다. 남중국해와 마주한 풍광과 실외 수영장, 위성안테나 등을 갖춘 마카오 내 최고급 빌라촌이다. 한 채당 가격은 1500만 홍콩달러(약 18억원)가 넘는다.

김정남 가족은 창문에 노란 해바라기 마크가 붙어 있는 361호와 연결통로로 이은 371호 두 채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정남은 이외에도 마카오 시내 중심가인 야롄팡(雅廉房) 대로변에도 16층 짜리 펀샹거(芬香閣)라는 아파트에 별도의 거주지를 갖고 있다.

마카오에서 그가 구체적으로 하는 일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현지 음식점에서 저녁 식사를 하거나 술을 마시는 모습이 목격됐으며, 사우나를 하거나 카지노에서 도박을 하기도 하는 등 외국인 친구들과 자유로운 생활을 즐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마카오에 있는 김정남의 빌라 ⓒ연합

김정남은 일본에서 강제추방 당시 롤렉스 보석 시계, 바바리 조끼, 아이그너 혁대, 아테스토니 구두 등 고가의 사치품들을 착용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김정남의 해외 체류비는 김정일이 해외 계좌에 은닉해 놓은 비자금에서 나온다는 것이 대체적인 관측이다.

국내외 연구기관들은 무기 밀매, 마약 밀수, 위폐 제조 등 국제적 범죄활동을 통해 김정일 정권이 벌어들인 비자금의 액수를 40~50억 달러 정도인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김정남은 김정일의 통치자금을 관리하고 외화벌이 사업을 전담하는 중앙당 39호실과 해외 주재 대사관 등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 김정남이 김정일의 신임을 받고 있을 당시 일본에서 들여오는 중고자동차를 중국에 되파는 밀수를 총괄해 막대한 외화를 벌었으며, 해외 생활도 본국의 도움 없이 호화롭게 누리고 있다는 증언도 나오고 있다.

◆ 김정남은 왜 북한에 돌아가지 못하나?

대부분의 북한 전문가들은 김정남이 북한에 돌아가지 못하는 이유를 후계 구도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강 부위원장은 “김정남이 2000년 초 평양 보통강 호텔에서 당 고위층 자녀들과 화교 상인들을 모아놓고 파티를 벌였는데, 당시 이 자리에서 ‘내가 수령의 대를 이으면 지금처럼 하지 않는다. 중국식 개혁·개방을 해 북한경제를 재건하겠다’고 발언한 것으로 안다”며 “이에 젊은 간부집 자녀들이 일제히 김정남에게 환호했다”는 일화를 전했다.

이 발언이 김 위원장에 보고된 뒤 김정남은 ‘혁명의 배신자’로 지목됐고, 이복동생 정철, 정운의 생모인 고영희(2004년 6월 사망)의 견제를 받아 북한을 떠났다는 것이다.

김정일의 총애가 성혜림에서 고영희로 옮겨가면서, 김정남에 대한 애정도 이복동생들에게로 이동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설득력을 얻는다.

실제로 성혜림의 언니 성혜랑(1996년 서방으로 망명)이 쓴 ‘등나무집’에는 김정일이 정남을 회의실로 데려가 중앙 자리를 가르키며 “네가 커서 큰소리 칠 자리다”라고 말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당시만 해도 김정일은 성혜림에게 애정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성혜림은 김정일의 숨겨진 동거녀일 뿐이었고, 지금은 많이 알려졌지만 김정남의 존재는 북한 주민들에게 비밀에 속한다. ‘사생아’라는 출생의 한계와 사실상의 김정일의 부인이었던 고영희의 존재는 김정남을 후계자 대열에서 점점 멀어지게 했다.

그러나 고영희의 사망 이후 북한의 후계구도가 다시 혼미를 거듭하고 있으며, 김정남이 그동안의 해외 생활을 정리하고 국내로 들어와 후계자 다툼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됐었다.

최근 한 일본 언론은 김정남과 김경희(김정일의 여동생)의 통화를 도청한 결과, 김정남이 아버지에 대한 노골적인 불만을 털어놓기도 했다고 보도했다. 김정남은 이외에도 김경희의 남편인 장성택에게도 접근해 김정일을 견제하기 위한 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도 알려졌다.

여기에 중국이 해외에서 외부 세계를 오래 경험한 김정남이 중국식 개혁·개방을 이끌기에 유리하다고 판단, 정남을 후계자로 적극 후원하고 있다는 설도 나돌고 있다.

또 김정일이 중국 내에서 과거 교분을 쌓은 장쩌민(江澤民) 전 중국 주석의 아들 등 이른바 ‘태자당’ 인물들과 곧잘 어울린다는 소문도 나오고 있다.

강 부위원장은 “김정일은 김정남이 권력을 장악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고, 자신이 원하는 아들에게 권력을 넘겨주기 위해 김정남을 견제하고 있다”며 “김정일이 급사하거나 권력이 약화될 경우 김정남과 고영희 아들 간의 권력투쟁은 심각한 상황으로 번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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