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수 장관이 평양서 피아노 친 까닭은?

김장수(金章洙) 국방장관이 작년 11월 평양에서 열린 제2차 남북국방장관회담 때 협상이 꼬이자 숙소에서 혼자 피아노를 치며 마음을 가다듬은 것으로 26일 밝혀졌다.

김 장관은 최근 연합뉴스 기자와 만나 당시 회담장 겸 대표단 숙소인 송전각 초대소에서 피아노를 치며 결연한 의지를 다졌던 심경을 담담하게 피력했다.

김 장관은 북한 김일철 인민무력부장이 회담 첫날인 11월27일 기조발언을 통해 서해 북방한계선(NLL) 문제와 주적 개념 삭제 등 이른바 ’근본문제’를 강하게 제기하면서 협상이 쉽지 않을 것임을 직감했다고 한다.

실제로 김 장관은 첫날 회담이 정회되자 붉게 상기된 얼굴로 회담장 밖을 나와 남측 대표단 대기실에서 연방 담배를 꺼내 물고 대표단과 즉석 구술회의를 갖기도 했다.

회담 둘째 날 오후 늦게까지 진행된 회담에서도 북측은 ’해상불가침경계선 획정 문제가 우선 논의되지 않는다면 다른 의제는 탁자(테이블)에 올려놓을 수 없다’고 고집을 피워 회담이 또 정회됐다.

이 때 김 장관은 송전각 초대소의 1호각(귀빈각)에 마련된 자신의 숙소로 돌아가 방에 놓여있던 피아노 건반을 두들겼다. 언뜻 생각나는 노래가 김수희의 ’애모’였다고 한다.

“참 가슴이 답답해서 ’애모’라는 곡을 쳐 봤다.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고 나니 마음이 참 야릇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회담을 이끌어야 하는 수석대표로서의 답답한 심경을 피아노 건반에 올려놓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김 장관은 협상이 도저히 진척이 없다고 판단, 서울로 돌아갈 비행기를 불러야 하는 것 아니냐고 비장한 각오를 드러냈다고 한다.

“당시 빈손으로라도 돌아갈 수 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었다. 그러나 전권을 위임받은 터라 부담이 컸다.”
평양으로 출발하기 전 노무현 대통령은 김 장관에게 회담의 전권을 위임한 터였다.

김 장관은 “대통령께서 빈손으로 돌아오셔도 좋으니 최선을 다하라고 격려를 해주셨다”고 소개했다.

김 장관은 특히 회담에서 김일철 인민무력부장이 ’당신은 무력부장(국방장관)이 아니냐. 해상불가침경계선 획정 문제를 결정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느냐’고 따지자 “나는 이번 회담의 전권을 위임받고 왔다. 하지만 그 문제는 나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고 단호히 거절했다고 한다.

한동안 신경전이 오간 뒤 김일철 인민무력부장이 ’당신은 노 대통령과 노선이 맞지 않은 것 같은데 어떻게 장관 직무를 맡고 있느냐’고 물었고 이에 김 장관은 “나는 대통령과 깊은 신뢰관계 속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대답했다.

그는 “빈손으로 돌아가면 바로 사표를 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랬더니 북측도 어떻게 낌새를 알아챘는지 다소 누그러지더라”며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또 김 장관은 작년 10월 정상회담 수행원 자격으로 방북했을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꼿꼿한 자세’를 유지한 것과 관련해 북측으로부터 가벼운 항의도 받았다고 한다.

“회담 첫날 김일철 인민무력부장이 기조연설 때 ’경애하는 지도자 동지께 결례한 장본인이 국방장관회담의 남한 대표로 왔다’고 한마디 했다. 기분이 몹시 나빴다. 내가 기조발언을 할 순서가 됐을 때 ’내가 뭘 결례했는지 묻고 싶다’고 반문했다.

저녁 때 식사를 하면서 ’도대체 내가 뭘 결례를 했느냐’고 따져 물었다. 그랬더니 북측에서 ’우리 국방위원회가 남조선 국방장관이 국방위원장께 인사를 하지 않았다고 항의전화를 많이 받았다. 왜 그랬느냐’고 해요.”

이에 대해 김 장관은 예의 ’꼿꼿한 말투’로 답변했다고 한다.
“노무현 대통령께서 군사분계선(MDL)을 걸어서 넘었을 때 영접 나온 북측 대표도 고개를 숙이지 않더라고 했다. 북측이 다시 ’그래서 그랬느냐’고 묻기에 ’나는 원래 그렇다’고 했다.”

자신의 유임설이 나돌고 있는 것과 관련, 김 장관은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 것이다. 인사치레로 하는 말로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장관은 지난 11일 이명박 당선인이 국방부를 방문했을 때 20여분 간 독대한 것과 관련, ’(당선인이)도와 달라고 하더냐’고 묻자 “일체 그런 얘기 없었다”고 손사래를 쳤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