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혁명사적 투어 왜…후계수업?

북한 김정일이 26일 새벽 전용특별열차를 이용 중국을 전격 방문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김정일의 방중 루트가 지난 2000년 이후 가진 5차례 방중과는 다르다는 점이다. 김정일은 아버지 김정일과 관련한 유적지가 많이 있는 지린성(吉林省)을 향했다.


그동안 김정일은 중국을 방문할 때 신의주와 단둥을 거쳐 베이징으로 향하는 랴오닝성(遼寧省) 루트를 이용해 왔다. 그러나 이번 방중에는 만포와 지안으로 이어지는 루트를 이용해 주목됐다.


특히 지린에는 김일성이 다녔던 무송 제1소학교, 화성의숙, 위원중학교 그리고 항일유적지로 알려진 베이산 공원, 안투현 등 김일성과 관련한 혁명사적 유적지가 많이 있다. 때문에 ‘김일성→정일→정은’으로의 ‘혁명적’ 3대 세습을 강조하기 위한 행보라는 해석도 낳고 있다.


실제 김정일은 방중 첫날 김일성이 다녔던 위원중학교와 베이산 공원을 전격 방문했다. 전문가들은 김정은의 동행을 가정, 후계체제를 공식화하기에 앞서 ‘후계수업’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아직까지 김정은의 동행 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교덕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데일리NK와 통화에서 “김정은이 동행 했다면 김정일이 할아버지의 혁명업적를 직접 보게 함으로써 그 향후 지도자로서의 사명감과 각오를 다지게 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이번 위문중학교 방문으로 북한에서는 김일성의 혁명업적을 김정은이 이어 받았다는 선전을 대대적으로 펼칠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위원중학교는 김일성이 1927년 1월부터 2년 반가량 다녔던 학교다. 당시 김일성은 마르크스레닌주의 고전을 비롯한 혁명서적들을 탐독하는 한편 비밀 독서조직을 비롯한 각종 합법·비합법 조직을 만들고 ‘새날’이라는 신문도 발행했다고 북한은 주장하고 있다.


조선대백과사전에 따르면 김일성은 이런 조직화를 바탕으로 1928년 7월 중순 위원중학교 동맹휴학을 이끌기도 했고, 1929년 가을 반일 공산주의 활동을 이유로 중국 군벌에 체포돼 감옥살이를 하던 도중 퇴학당했다.


사전은 특히 위원중학교에 대해 ‘김일성 동지의 영광스러운 혁명 활동 노정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불멸의 혁명사적이 깃들어 있는 뜻 깊은 곳’이라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또 위원중학교에 이어 방문한 베이산 공원에는 항일전쟁·해방전쟁·6·25 참전 중 사망한 인민해방군 장병들의 유골이 묻힌 혁명열사묘 등이 있어 중국과의 ‘혈맹’을 강조하기에 손색이 없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김정은의 ‘후계수업’ 차원의 방문일 경우, 차기 중국 지도부들과의 면담도 주목된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김정은이 후진타오나 시진핑 등 중국의 현지도자와 차세대 지도자들을 만나는 것은 매우 의미가 크다”고 강조했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후계체제를 더욱 굳건히 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김정일의 외교술을 직접 보여줘 경험을 쌓게 해 향후 북중간 관계의 외교의 경험을 키워주려하는 의도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김정은의 동행 여부에 이목이 집중된 상황이다. 미확인된 ‘김정은 동행설’ 관련 소식들도 전해진다.


중국 인터넷 포털 바이두에 개설된 위원중학교 카페엔 김정일의 방중 전날인 25일 저녁에 한 학생이 ‘작은 김 씨 뚱뚱이가 정말 우리 학교에 오나요’라는 글을 올리자 ‘큰 뚱뚱이가 작은 뚱뚱이를 데리고 온다’라는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김정일 일행은 현재 창춘에 여장을 풀었다. 일단 창춘의 경우 지린성의 성도이고 공업이 발달한 도시라는 점에서 경제시찰 일정이 많이 포함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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