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참배, 反김정일 의식 싹자른다

북한 주민들에게 김일성은 사람이 아니라 ‘신'(神)이다. 김일성 ‘우상화’라는 표현을 사용하곤 하는데 북한의 현실에 비추어보면 ‘신격화’라는 표현이 더 적당하다.

김일성 사후 “위대한 수령님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구호가 적힌 이른바 ‘영생탑(永生塔)’이라는 것을 도시마다 세워, 죽은 지 11년이 지났건만 주민들은 ‘영혼 속에 수령님은 살아있다’고 착각하고 있다.

수십 년 동안 공들여온 이런 김일성 신격화 교육에 의존해 김정일 체제도 유지되고 있다. 북한당국은 주민들이 김일성의 ‘영혼’을 느낄 수 있도록 ‘금수산기념궁전’을 웅장하게 꾸려놓고 매년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붓고 있다.

대아사 기간 북한주민 3년치 식량값으로 지어진 ‘김일성 시신궁전’

금수산기념궁전은 김일성 생전에는 금수산의사당 또는 주석궁으로 불리던 곳으로, 김일성의 집무실 및 거처로 쓰였다. 김일성이 죽자 이름을 금수산기념궁전으로 바꾸면서 김일성의 시체를 미라로 영구보존 안치하고, 내부를 새롭게 바꾸었다.

총 부지면적은 350만㎡로 서울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의 17배에 달한다. 전 조선노동당 비서 황장엽 씨의 증언에 의하면 1994년 금수산기념궁전 성역화 사업에 들어간 비용은 약 9억달러.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을 4개 이상 만들 수 있는 금액이다. 북한 전주민들에게 3년간 강냉이를 공급할 수 있는 돈이다.

또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설비를 갖추었다고 자랑하는, 금년 5월 문을 연 신촌 세브란스 새병원이 건축비와 의료장비를 포함 4천억 원이 든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니, 그러한 병원을 두 개 정도는 지을 수 있는 금액이다.

금수산기념궁전 앞에 대형광장이 있는데, 면적은 약 9만㎡ 정도로 여의도 광장의 절반 수준이지만 바닥을 전부 화강석으로 깔아놓아 그 화려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광장은 가로 415m, 세로 216m로 알려져있는데, 각각 김일성과 김정일의 생일을 상징한다.

북한 주민들은 이런 금수산기념궁전을 찾는 것을 아주 영광으로 생각한다. 김일성이 워낙 신격화되어 있기 때문에 거기에 얼마나 많은 비용이 들어갔는지 하는 것은 감히 생각할 수도 없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두고 ‘자발적 충성’이라고 하는데, 애초에 ‘김일성에 대한 충성’ 이외에 다른 생각과 정보 자체가 차단된 환경 속에 생겨난 복종심을 ‘자발적’이라고 하는 것은 북한 주민에 대한 모욕이다.

하여간 김일성 생전에 그를 만나는 것은 영광중의 영광이었다. 김일성을 한번 접견한 사람은 그가 원하는 것을 당에서 다 들어줬기 때문에 북한에서 김일성과 김정일을 한번 만나보는 것은 행운이고 영광이었다. 그런 김일성을 죽은 상태로나마 만나보고 싶은 것은 본능적 호기심이기도 하다.

참배 전, 모든 먼지 털어내야

김일성 생전에 그를 한 번 만나려면, 몸차림을 어떻게 하며 어떤 말씀을 드려야 하는지에 대해 일일이 강습을 받은 다음에야 만날 수 있다. 이른바 “위대한 수령님께 심려를 끼쳐 드리면 안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죽은 김일성을 만나는 것도 살아있을 때와 똑같은 수순을 밟아야 한다.

먼저 궁전 호위병들의 삼엄한 경계 속에 몸에 금속물을 지니지 않았는지 X-RAY 검사를 받는다. 열쇠를 비롯해 어떠한 쇠붙이도 몸에 지녀서는 안된다. 그리고 한 사람씩 통과할 수 있는 통로에서 강하게 쏘는 바람으로 먼지를 털어내야 한다. 구두의 흙도 자동으로 털어진다.

복장은 평상복을 입으면 안되며, 남자들은 꼭 넥타이에 양복을 입고, 여자들은 검정색 정장복이 아니면 한복을 입어야 한다.

평양을 견학하기 전에 미리 이러한 주의를 주기 때문에 사람들은 양복을 따로 챙겨 갔다가 궁전에 들어갈 때에 꺼내 입기도 한다.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 가운데 양복 때문에 김일성 시신을 보지 못하고 돌아간 사람들도 있다.

“남조선 X들, 드디어 무릎꿇어” 내부 선전할 것

궁전에 처음 들어서는 사람들은 궁전의 화려함과 정결한 모습에 절반은 정신이 나간다고 한다. 주민들은 의무적으로 울어야 하며 눈물이 나지 않는 사람들은 침을 찍어 발라서라도 눈물자국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억지로 울 필요가 없이 대리석이 깔린 로비를 지나 미라로 처리된 김일성의 시신 앞에 도달하면, 평소에 혹시 김일성을 좋지 않게 생각했던 사람도 웬지 뭉클해진다고 한다. 2002년 함경북도 여맹 소속으로 금수산기념궁전을 방문한 바 있는 탈북자 김영란(38세, 중국체류)씨는 “그곳의 분위기가 울지 않으면 안되게끔 되어 있다”고 말했다.

“처음 궁전이 개관되었을 때는 오열하는 주민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고 궁전을 여러 번 참관한 탈북자 정원형(가명, 35세, 2003년 입국)는 말한다. 정씨는 “처음에는 ‘저 사람이 우리의 위대한 수령이었구나’하고 저절로 가슴이 뭉클해지는데 몇 번 참관하면 ‘사람은 죽으면 다 똑같구나’하는 생각으로 바뀐다’”고 전했다.

그는 최근 남한 정치권 일각에서 북측의 현충원 참배에 대한 답례로 금수산기념궁전을 참배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는 것과 관련, “북한 주민들은 그것을 화해의 상징이 아니라 장군님(김정일)이 드디어 남조선놈들을 수령님(김일성) 앞에 무릎 꿇게 했다고 내부적으로 교육받게 될 것”이라면서 “그것은 북한 내부의 反김정일 의식을 가진 사람들을 절망하게 하는 처사”라고 꼬집었다.

한영진 기자(평양출신, 2002년 입국) hyj@dailynk.com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