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생일은 ‘태양절’ 김정일 ‘○○절’ 왜 없나?

4월 10일 평양 거리의 풍경. 류경정주영체육관 주변에 푸른 눈의 외국인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어깨에 악기를 하나씩 둘러맨 이들은 주변이 신기한 듯 연신 카메라 플래시를 터트린다. 대동강변을 따라서는 수백여명의 사람들이 줄지어 달리기를 하고 있다. 마라톤 복장을 한 사람들 사이로 외국인의 모습도 눈에 띈다. 김일성의 시신이 안치돼 있는 금수산기념궁전에는 참배를 위해 몰려든 주민들로 아침부터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태양절(4.15)을 앞두고 평양을 중심으로 축제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 북한 당국은 태양절이 포함된 이번 주 동안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 만경대상 마라손경기’ ‘김일성화 전시회 등’ 대규모 축하 행사를 잇달아 개최했다. 북한이 김일성의 생일을 민족 최대의 명절로 지정하고 매년 대대적으로 치뤄온 것은 후대인 김정일, 김정은의 세습 당위성을 확보하기 위한 일환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북한은 1974년 4월 김일성의 생일을 ‘민족최대의 명절’로 정했다. 이어 사망 3주기인 1997년 7월 8일에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혁명생애와 불멸의 혁명업적을 길이 빛내일 데 대하여’라는 ‘공동 명의의 결정서’ 발표를 통해 김일성의 생일을 태양절로 지정했다. 김일성은 죽어서도 태양처럼 북한 인민과 영원히 함께 있다는 의미에서 내려진 조치였다. 


김일성이 ‘태양’으로 불린 것은 이름과 연관된 것이라고 북한 당국은 선전하고 있다. 1992년 출판된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 따르면 김일성은 1930년대초 김혁이라는 사람을 만나 ‘김성주’에서 ‘김일성’으로 개명(改名)하게 된다.


회고록에서 김일성은 “‘혁명시인’이라고 불린 김혁이 나를 빗대어 ‘조선의 별’이라는 노래를 지어 혁명조직들에게 보급했다”며 “그 뒤 저희들끼리 나를 ‘한별이’ ‘한별이’하고 불렀다”고 말했다.


‘한별’은 한자로 ‘一星(일성)’으로 표기됐으나, 이후 청년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日成’으로 고쳐졌다는 것이다. 김일성은 또 “나를 별이나 태양에 비기면서 젊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추대하는데 대하여 용납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엄하게 단속하고 설복하여도 소용이 없었다. 동무들은 내가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김일성이라는 이름을 즐겨 사용하였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김일성의 이름 앞에는 ‘민족의 태양’이라는 수식어가 붙기도 한다. 그러나 탈북자들은 “김일성 이름에 대한 유래가 있기는 하지만 태양절로 불리는 데는 ‘수령님은 항상 우리 곁에 계신다’고 말한 김정일의 지시에 의한 것이 가장 크다”고 설명하고 있다.


김정일은 특히 김일성 사후 유훈통치를 내세우며 김일성 우상화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김일성 혁명사적지·전적지 및 기념비 조성, 금수산 기념궁전 건설, 혁명전설 체계화, 김일성화(花) 지정, 충성편지 이어달리기 등이 김일성 개인우상화를 위해 동원됐다.


2007년 4월에는 김일성의 95회 생일을 맞아 평양 통일거리와 만경 대구역 광복거리에 김일성을 형상화한 대형 모자이크 벽화가 들어섰다. 광복거리의 ‘위대한 내 나라 내 조국이여, 천만년 무궁번영 하여라’ 벽화는 길이 42m, 높이 25m의 규모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일의 생일인 2월 16일 역시 북한의 8대 국가 명절 중 하나에 포함되어 있지만 ‘태양절’과 같은 이름은 아직 붙여지지 않고 있다. 아버지의 권위를 높여 세습 정권의 정통성을 인정받기 위한 의도다. 마찬가지로 후계자 김정은 역시 김정일 사후에 2월 16일을 ‘○○절’로 지정하고 각종 우상화 행사를 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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