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생일날, 北 주민의 하루

▲ 만수대 언덕의 김일성 동상에 꽃을 바치고 있는 북한 주민 행렬

북한에는 8대 명절과 4대 민속명절이 있다. 그 중에서 특별배급이 나오는 5대 명절인 양력설, 김일성(4. 15)ㆍ김정일(2. 16)생일, 정권수립일(9. 9), 당창건 기념일(10. 10)을 진짜 명절로 여기고 있다.

동상 참배, 생화만 바쳐야

나는 함흥에서 살았기 때문에 평양의 명절문화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우리 집은 동흥산구역에 위치하고 있어 김일성의 동상과는 가까웠다. 명절 아침이 되면 동상에 꽃을 헌화하러 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김일성의 생일이나 죽은 날(7. 8일)이 되면 꽃방이 제일 장사가 잘 된다. 헌화는 생화(生花)로 해야 한다. 바치는 사람의 정성이 깃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4월에는 들에 나가도 들꽃이 덜 피어 있을 때다. 할 수 없이 꽃방에 가서 좋은 꽃을 사야 한다.

동상이 없는 곳에 사는 사람들은 김일성의 사적지나 혁명역사연구실 전시사진 앞에라도 가서 생화를 증정하여야 한다. 동상 앞에서 질서를 잡아주는 사람들은 참배하러 오는 사람들의 이름을 적고 조를 지어주면서 묵상하게 했다.

주민들은 직장에서 준 돼지고기와 사온 재료로 음식을 장만한다. 여유가 있는 간부들은 여러 가지 음식을 해먹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평일보다 조금 낫게 먹는다. 우리 집에서는 만두에 고기를 넣어 국을 끓여 먹었다.

그런데 90년대부터는 음식 해먹을 생각도 못했다. 공장이 멎어 공장간부들은 명절 쇠는 것이 제일 근심스러웠다. 96년도 김일성 생일날에는 줄 것이 없어 자체로 명절을 쇠라고 해서 풀도 나오지 않는 벌판에 나가 풀뿌리를 캐던 생각이 난다.

명절날은 국영기관에서 특별한 행사를 만들어 낸다. 영화관에서는 새 영화나 김일성과 관련한 혁명영화를 공짜로 보여주었다. 돈을 받지 않고 무료 입장시키는데 새 영화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들이고, 혁명영화는 재탕삼탕이 많아 사람들이 별로 없다. 국가가 운영하는 일부 식당에서는 당국의 지원을 받아 국정가격에 음식을 판다.

춤도 감시 속에서

김일성 생일날 제일 인상 깊었던 것은 그래도 전기가 공급되고, TV를 볼 수 있는 것이었다. 전기도 명절공급처럼 이틀 동안 끊기지 않고 공급된다. 특별한 날이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김정일이 배려해서 전기를 준다고 해서 ‘배려전기’라는 말이 생겼다고 한다.

▲ 김일성 광장에 모인 북한 주민들이 모여 춤을 추고 있는 모습

TV에서는 김일성의 항일투쟁역사를 소개하고,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에서 당선된 우수한 예술인들의 공연을 방영했다. 김일성의 항일투쟁을 소재로 한 영화 ‘민족의 태양’이 시리즈로 나오기도 했다.

명절 저녁이 되면 함흥 대극장 앞에서 무도회가 열리곤 했다. 혁명가요나 대중가요에 맞추어 틀에 박힌 춤 동작을 반복하기 때문에 젊은 사람들은 싫어한다. 직장마다 청년들을 동원한다.

청년조직에서 나온 규찰대들은 혹시 누가 이상한 춤을 추는가 감시한다. 이상하게 추는 사람이 있으면 춤판에서 끌어내고 비판서를 쓰게 한다. 평양에서 추는 춤모습이 가끔씩 TV에 나오는데, 지방에 비하면 한결 고상해 보인다. 외국인들이 같이 춤을 추고 사진을 찍기 때문에 행사식으로 진행한다.

명절이 끝나고 17일에는 ‘충성의 선서’ 모임을 가진다. 명절을 잘 쇠었으니, 더욱 힘을 내 김일성과 김정일에게 충성을 맹세하자는 모임이다.

당비서가 10가지 조항으로 된 빨간 책을 들고 구호를 외치면, 참가자들은 오른쪽 주먹을 쥐고 김일성, 김정일 초상화를 향해 맹세를 다진다. 내용은 김일성 김정일 교시와 말씀에 무조건 복종한다는 것이다.

김선주(함흥출신. 2002년 입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