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사망 ‘괴담’ 왜?…”평소 40대 심장 자랑”

16년 전 1994년 7월 8일. 북한을 49년간 통치한 독재자 김일성이 심장질환으로 사망했다.


당시 북한은 하루 뒤인 9일 “수령님께서 심장혈관의 동맥경화증으로 치료를 받아오다가 겹쌓이는 과로로 인해 7월8일 심한 심근경색이 발생하고 심장쇼크가 합병되어 사망하셨다”고 중대방송을 보도했다.


김일성은 당시 남측 김영삼 대통령과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있었다. 김일성은 김 대통령이 묵게 될 숙소 점검을 겸해 7월 경제일꾼회의를 묘향산 특각에서 진행했다. 이 회의 도중 심근경색으로 갑작스럽게 김일성이 사망한 것이다. 


남북 정상회담을 앞둔 김일성의 사망 시점 때문에 대내외에서 김일성 타살 및 사망 유도설 등의 의혹이 끊이질 않았다. 


북한 당국이 전한 사망 당일에는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김일성이 쇼크를 일으키자 의료진을 동반한 김정일은 급히 헬리콥터를 타고 묘향산 특각으로 향했다. 그러나 김일성의 상태는 손을 쓰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김일성 사망 이후 그의 시신은 영구보존 처리돼 금수산기념궁전에 안치됐다. 북한은 3년간 조문정치를 이어갔다. 김일성 사망 충격이 조금씩 거두어질 무렵 주민들 사이에서는 공식보도를 믿지 못하며 각종 유언비어가 떠돌기 시작했다.


2008년 국내 입국한 탈북자 오미자(가명) 씨는 “당시 김영삼 대통령과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기 전이었다. 김 대통령의 평양 방문이후 김일성이 서울을 답방해 연설 하고 나면 통일이 된다는 환상이 매우 컸다”고 말했다. 


오 씨는 “당시 통일은 연방제형식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권력이 약해질 것을 우려한 김정일이 정상회담이 개최되지 못하도록 김일성이 쇼크 상태인데도 주치의를 보내지 않았다. 어떻게 죽였다는 것은 확인하지 못했지만 신속한 치료를 받지 못해서 사망한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김정일이 의도적으로 시간을 끌어 김일성의 사망을 유도했다는 주장이다. 오 씨는 이 소문이 북한 주민들 사이에 비교적 광범위하게 퍼져있다고 말했다. 국내외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 사망유도설이 꽤 신빙성 있는 정보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두 번째는 김일성을 고의로 살해하고 심장마비 결과를 발표했다는 주장이다. 


다음은 2002년 입국한 전미정 씨의 증언이다. 정상회담을 앞두고 연일 정력적인 행보를 보였다. 그래서 평안남도 어느 농촌을 둘러보게 됐는데 주민들 행색이 마치 거지꼴이어서 깜짝 놀랐다고 한다. 차에 내려서 직접 상황을 들어보니 식량난 때문에 수 많은 사람이 굶어죽을 위기에 처했다는 말을 듣게 됐다.


김일성은 경제부처 장관들을 소집해 크게 책망했다. 모든 소식을 접하고 있던 김정일에게도 당연히 김일성의 진노 소식이 들어갔다. 이미 권력을 장악한 김정일이었지만 김일성의 불호령에 적지 않게 당황했다고 한다. 


김일성은 직접 정치를 챙겨야겠다는 의지를 내비치다가 급작스럽게 사망 발표가 나왔다. 당시 82세였던 김일성은 평소 자신이 40대의 심장을 가졌다고 자랑하곤 했다. 따라서 김정일이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살해한 것이라는 소문이다.


세 번째는 주치의를 탓하는 목소리다. 주치의가 평소 게을러 김일성을 잘 돌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일성에 대한 향수가 남아있던 노령층을 중심으로 이런 이야기가 돌았다고 한다. 주치의는 이후 비밀 처형을 당했거나 정치범수용소에 보내졌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런 소문이 생긴 이유는 간단했다. 평소 건강 상태가 양호하고 북한 최고의 의료진이 관리하고 있었으며, 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에서 갑작스럽게 사망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탈북자들은 “소문은 또 소문일 뿐”이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정확한 사실은 통일 이후에 드러나지 않을까 싶다”고 말하고 있다.


김일성 사망 원인과 관련해 정보기관 출신 한 전문가는 “김정일이 통치하는데 김일성이 있는게 매우 유리하다”며 “김일성이 일선에서 물러났다지만 국가원수로서 내외적으로 김정일의 병풍역할을 했는데 정일이 죽였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김정일이 죽였다는 소문은 북한 사회의 폐쇄성에서 비롯된 말 그대로 소문에 불과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