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동상에 줄선 사람들 표정은 덤덤했다

북한 만수대 거리에는 현대식 아파트가 들어섰다. 그러나 그 사이를 오가는 장비와 차량은 1950년과 1960년대 수준이었다. 북한 당국은 평양이 많이 개발했다는 인상을 주려했지만, 여러곳이 공사중이었고 세세한 부분은 미진했다. 평양은 태양절에 24시간 전기가 끈기지 않았지만, 오래된 군차량과 가짜(?) 대륙 탄도 미사일 발사대 차량(상당히 인상적인)이 언뜻 북한의 모습을 연상시켰다.


열병식은 평양의 거리를 망가트렸고, 탱크로 품어져나오는 디젤 상당량의 연료가 있는 공기를 마셔야했다. 대신 일반 주민들을 자세히 관찰할 수 있어서 좋은 경험이었다. 그들은 동원되었기 때문에 그 자리에 있는 것을 알았지만,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는 것도 어색히다.


그들이 동원되지 않았으면 누가 달리 거기에와서 몇시간동안 서있을까? 매번, 매년 보는 것이 과연 그들에게 얼마나 흥미로웠을까? 따라서, 동원된 사람들은 대부분 군사 퍼레이드를 아무도 관심있게 보는것 같진 않았다.


그들은 지나가는 탱크도 쳐다 보지 않았고, 그저 서로 얘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수다 떠는것이 한국 여성과 유일한 공통점이었다. 뜨거운 태양 아래에 있어야 해서 그런지 여성들은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 대부분 지나가던 군인들을 맞이하기위해 쓰이는 핑크색 나뭇잎으로 자신들의 얼굴을 가리고있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북한에서 bb크림(기초화장품) 시장은 태양이 뜨거운 곳에 서있어야하는 태양절날의 여성들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북한을 방문하는 모든 방문자들은 만수대에 있는 김일성동상에 꽃을 사서 바치는 것이 관례다. 만수대에 가기 전에 꽃을 판매하는 곳은 외화를 받았고, 이것은 위대한 수령을 숭배하는일과 무관하다는 것이 분명했다. 외국인들의 외화를 획득하기 위한 시도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전반적으로 이러한 공공 장소에서의 김일성과 김정일에 대한 디스플레이(전시성 기념물이나 행사)는 가짜라는 느낌을 가졌다. 개인적으로 어떤 사람들은 김일성이 있던 날들의 행복을 그리워하며 살겠지만, 이것은 현 시대에 자연적으로 표현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이러한 것은 부자연스러운 일인 것이다. 많은 한국 사람들은 박정희 시대에 몇 가지 행복한점들을 기억하겠지만, 그가 묻혀있는 동작 국립 묘지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그저 소수일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하고난 일년 후는 가능했을지도 모르겠지만, 현재는 아니라고본다. 개인적인 감정은 20년이 넘게 계속 공공장소에서 디스플레이를 할만큼 반영될 수 없다.


때문에 내가 결론낸 것은 북한에서의 많은 사회규칙이 유지되는 이유는 사람들이 그들이 진정 그것을 지키고자 해서가 아니다. 거기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보이는데, 첫번째는 사회적 타성 때문이라고 본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늘 하던일을 하는 것). 두번째는 공포감이다. 북한의 사회적 운영 원리는 공포라고 생각하지만, 사회적 타성 또한 동등하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지도자의 이미지가 있는 노동신문을 잘못 접는 것을 들어보자. 전 세계 방문자들이 거의 대부분 방문하는 외국어 서점이 있다. 그곳에는 김 씨 일가에 대한 터무니 없는 것을 판매 목적으로 하는 곳으로 매우 끔찍한 곳이다.


그곳을 방문하던 중 필자는 그날(태양절)의 노동신문의 복사본이 있는지를 문의했다. 서점에는 로동신문 여러 부수가 전시돼 있었지만, 날이 많이 지난 것이어서 난 그날 신문을 점원에게 부탁했다. 점원은 심사숙고 후 가게 뒤쪽으로 향하더니, 돌아와서는 나에게 그날의 신문을 건내주었다.  


태양절인만큼 신문 정면에는 매우 큰 김일성의 사진이 있었다. 그런데도, 신문은 두 갈래로 접혀있었다.


당연 신문은 접혀있는게 당연한것이다! 반으로 접혀있지 않으면 어떻게 인쇄된 그 수천 개의 복사본을 전국에 배포할수있겠는가? 그외에 다른방법은 없다고 생각했다. 로동신문의 복사본은 모두 두갈래로 접혀있다고 할수있다.


점원은 나에게 두갈래로 접힌 신문을 주었고 나는 접힌 상태의 신문과 구매한 조선사전을 같은 가방에 넣었다. 구입한 사전에 있는 봉지에 접힌 신문을 넣으려고 하는 순간 점원은 나에게 달려와 ‘올바르게’ 또는 ‘존경스러운 마음으로’ 신문을 접으라고 해서 황당했다. 그것은 보여지기 위한 것이었다. 혼자 웃음을 머금고 그 자리를 떠났다.


어쨌든, 난 꽃을 구매한 후 동상에 새로 건설된 경로를 걸어올라갔다. 그곳에는 지역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줄을 서서 앞으로 나가 공손히 인사를 한 뒤 꽃을 동상 앞에 놓고 있었다. 이것 또한 매우 인상적인 쇼였다.


날씨가 좋은 탓에 많은 지역 주민들도 나와서 줄을 서서 동상 앞에 존경을 표현하는 것에 큰 불만은 없어보였다. 하지만, 김가에 대한 사랑 또는 존경을 느낄수는 없었다. 지역주민들 입장에서는 동상을 방문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지 못한 또는 매우 위험한 일이었을것이다.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