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동상도 ‘戰時 긴급대피소’ 있다

평양 만수대 언덕의 김일성·김정일 동상에 북한 주민들이 참배하고 있는 모습. /사진=노동신문 캡처

김일성이 사망(1994년 7월 8일)한 지 14년이 지났지만 죽은 김일성에 대한 숭배는 여전히 북한 땅을 뒤덮고 있다.

우상화물의 대표적인 것은 역시 김일성 동상이다. 그중에서도 김일성 60회 생일을 기념해 1972년 4월 평양 만수대 언덕의 조선혁명박물관 앞에 세운 동상이 널리 알려져 있다. 기단 3m를 포함해 높이가 23m에 달한다. 한때 동상에 금(金)을 입히기도 했다.

이러한 동상이 평양을 비롯한 북한 주요 도시 70여 곳에 모두 있다. 동상 외에 흉상, 사적물 등을 합쳐서 김일성 일가(一家)의 우상화 선전물은 대략 14만 개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이들 김일성 우상화물은 유사시 전쟁이 터지면 지하에 ‘긴급대피소’까지 준비돼 있다. 만수대창작사에서 김일성 동상이 생산돼 나오면 이를 호위하는 호위병들은 동상에 ‘경례’를 붙이고, 동상이 세워지는 목적지까지 살아있는 김일성에게 하는 것처럼 ‘경호’해야 한다. 이 때문에 집에 불이 나면 방에 걸려있는 김일성 초상화부터 ‘구조’하는 것이 주민들의 의식에 박혀 있다.

1970년대 김정일이 후계자로 등장하며 본격화된 우상화 건설은 불과 10년 사이에 북한 전역을 뒤덮었으며,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영국의 미술사학자 제인 포털은 “김일성의 찬양 허기증은 스탈린과 마오쩌둥도 두 손을 들 정도”라며 김부자(父子)에 대한 개인우상화를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했다.

북한이 최대 명절로 선전하는 김일성 생일을 맞아 김일성 동상의 실태를 살펴보았다.

◆ 김일성 동상, 언제부터 세워졌나?=최초의 김일성 동상은 북한 정권수립 직후인 1948년 10월 24일 평안남도 대동군 간리에 있는 만경대혁명유자녀학원(現 만경대혁명학원)을 평양의 만경대로 이전·개교하면서 세워졌다고 전해진다. 김일성 나이 36세 때다.

만경대혁명학원에 김일성의 동상을 건립하자고 제의한 것은 김일성의 부인인 김정숙이라고 북한당국은 주장하고 있다. 두번째 동상은 1949년께 평양 창전인민학교에 김일성이 중학교 교복을 입은 모습으로 세워졌다.

이후 김일성 동상은 1960년대를 기점으로 대량으로 만들어졌다. 이 시기는 김일성이 자신의 권력 기반을 위협하는 세력에 대한 숙청을 완료하고 1인지배체제를 확립한 때다. 이어 1970년대에는 김정일이 당 내부에서 후계자로 공인되면서 김일성에 대한 우상화를 사회 전분야로 확대하게 됐다.

지금까지 우상화 작업의 일환으로 세워진 김일성 동상은 그 숫자가 총 70여개에 달한다. 김일성 모습의 석고 흉상은 북한 전역에 약 3만 여개가 세워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일성 동상만 3만개가 넘는다는 설(說)도 있지만, 탈북자들에 따르면 석고상의 개수까지 합쳐서 계산된 것으로 전해진다.

북한 금수산태양궁전
북한 평양 대성구역에 위치한 금수산태양궁전 내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동상이 설치돼 있는 모습. /사진=노동신문 캡처

◆어디에 세워지나?=김일성의 동상은 주로 각 시·도 인민위원회 소재지나 김일성의 사적지·전적지에 세워져 있다.

김일성 동상 중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는 김일성 60회 생일을 기념해 1972년 4월 평양 만수대 언덕의 조선혁명박물박물관 앞에 세운 동상이다. 기단 3m를 포함해 높이가 23m에 달한다. 1994년 김일성 사망 직후 각계각층의 주민들이 대거 몰려와 오열하던 모습이 TV로 방영돼 강한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지금은 국가차원의 주요 행사가 열리는 무대로 이용되고 있으며, 당·정·군 간부를 비롯한 주민들이 김일성과 김정일에게 충성을 다짐하는 장소로도 쓰이고 있다. 북한당국은 평양을 방문하는 외국 손님들에게 가장 먼저 찾아가 헌화하고 참배하도록 한다. 이밖에도 김일성이 안치된 금수산기념궁전의 중앙홀에 있는 대형 입상이 자리하고 있다.

최근에 건립된 것으로는 1996년 10월 김일성 정치대학에 세워진 ‘대원수’ 복장의 동상이 있다. 1997년 10월과 12월에도 남포시에 있는 청산협동농장과 김정숙종합군관학교에 김일성 동상이 건립됐고, 1998년 9월 정권수립 50주년을 맞아 김정일의 지시에 따라 김일성 군사종합대학에 김일성 동상이 건립됐다.

2000년대 들어서는 2002년 4월 평안남도 개천시 혁명사적지와 함경북도 청진시 라남구역, 10월 평안북도 구성시에 각각 세워졌다. 2003년에는 평안남도 안주시 연풍중학교에 동상을 건립했다.

2004년 김일성의 92번째 생일을 앞둔 4월 12일에는 평양 만수대창작사에 군마를 타고 한 손으로 쌍안경을 잡고 있는 김일성의 동상을 건립했다. 기마 동상이 세워진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김정일의 동상도 있을까?=김일성 동상이 각지에 산재해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김정일의 동상은 현재 국가안전보위부 구내에 세워져 있는 것이 유일하다. 평양 대성구역 아미산 기슭의 국가안전보위부 청사 뜰에 있다는 이 입상은 1988년 김정일의 46회 생일을 기념해 건립됐으며 ‘황금전신상’으로 알려져 있다. 동상이 아니라 금상인 셈이다.

이 밖에 각 지방과 중요 기관에 있는 ‘김일성동지혁명력사연구실’에 김정일의 석고상(흉상)이 하나씩 있으며, 묘향산 국제친선전람관에는 대형 석고좌상이 마련돼 있다.

◆동상 제작에는 돈이 얼마나 들까?=동상의 개수가 정확하지 않을뿐더러, 크기와 재료가 각기 다르기 때문에 정확한 액수를 추산하기는 어렵다. 또한 김일성 동상은 금으로 도금되어 있기 때문에 동상 제작에만 금이 수백 톤이 소요됐다는 이야기는 떠도는 소문일 가능성이 높다.

동상이 금빛으로 보이는 이유는 금색 스프레이로 도색을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동(銅)으로 만들기 때문에 비나 바람에 부식되기도 하고 이물질이 묻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2년에 한 번씩 도색 작업을 한다.

그러나 동상에 금이 들어간 부분이 있긴 하다. 낙뢰를 피하기 위해 동상 한 가운데 꽂혀져 있는 피뢰침이 금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식량난이 극심하던 1997년도에 양강도 삼지연군 청봉사적지에서 초소장을 하던 보위대원이 김일성 동상에 있는 피뢰침을 뽑아서 중국에 팔다가 당국에 적발돼 심문 도중 목을 매고 자살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동상을 도색하기 위한 스프레이는 독일에서 들여온 것으로 가격이 매우 비싸다. 때문에 김일성, 김정일, 김형직 동상에만 도색 작업을 한다고 한다. 이렇게 봤을 때 원재료비와 관리비까지 해서 동상의 제작 비용은 상상을 초월하는 거액이 될 것으로 추산된다.

또한 미국 일간 ‘크리스천 사이언스’에 따르면 김일성 부자의 선전물 관리에 북한 예산의 40%가 소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대표적인 우상화 선전물은 김일성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 기념궁전으로 8억 9천만 달러가 소요됐다. 북한에 수백 만 명의 아사자가 발생했던 1990년대 중반 당시 이 돈은 옥수수 600만 톤을 살 수 있는 액수였다.

기념궁전 이외에도 김일성, 김정일을 숭배하는 각종 동상, 혁명사상 연구실, 사적지, 전적지, 현지지도 기념비, 영생탑, 구호나무 및 구호글발과 그 일가족들의 우상화 선전물까지 합하면 약 14만개에 달하는 우상화 선전물이 있다고 추정된다.

◆김일성 동상은 누가 만드나?=김일성 부자의 형상 작품은 각 도(道) 미술창작사 및 만수대창작사의 ‘1호 작품과’에서 전담 제작한다. 여기서 1호 작품이라 함은 김일성 부자 초상화, 동상, 석고상 배지 및 각종 출판물의 형상을 말한다. 이런 1호 작품은 ‘1호 작품과’ 소속의 미술가 이외에는 어느 누구도 제작할 수 없다. 이 미술가들은 연 1회의 실기실험을 통과한 후 만수대창작사 심의위원으로부터 당성 및 기량을 평가받아 선발되어 별도의 증명서를 발급받은 자들이다.

▲ 평안북도 신의주에 있는 김일성 동상(좌)과 양강도 보천군(우)에 위치한 김일성 동상 <사진=구글어스 캡처>

일단 제작이 시작되면 치밀한 공정계획에 따라 한 치의 오차도 용납되지 않아 작업 참가자들은 목숨을 건다는 초긴장 상태에서 작업에 임하게 된다. 제작에 소요되는 비용은 특수자금이라고 해 은행의 특수자금과에서 제한 없이 지원받고 있다.

이렇게 제작된 동상은 살아있는 수령과 다름없이 간주되어 건립 장소까지 운반되는 동안 현지지도 때와 마찬가지로 보위부, 당위원회, 인민보안성에서 나와 차량 및 보행자를 단속하게 되고 모든 차량은 일체 움직일 수 없으며, 형상물에 경의를 표하도록 되어 있다.

동상 관리는 주민들이 잘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전력난에도 불구하고 일몰 후부터 저녁 10시까지와 새벽 4시부터 일출시까지 두차례 점등하고 매일 새벽 주민들로 하여금 동상과 그 주변을 청소하도록 하고 있다.

1993년 초에는 김정일의 지시에 따라 전쟁 발발 시 김일성 부자와 그의 생모 김정숙 동상, 석고상, 초상화를 대피시킬 수 있는 ‘지하 보관고’ 건설공사가 전국적으로 진행됐다.

‘지하 보관고’는 지하에 갱도를 뚫고 약 15~20평의 공간을 마련한 후 여기에다 수령관, 지도자관(김정일), 어머니관(김정숙) 등의 3개의 방을 설치한 것으로 ‘1호 모심실’이라 부른다. ‘1호 모심실’은 방마다 카펫과 호화로운 벽지로 치장되어 있으며 유사시에 김일성 부자의 동상과 석고상을 철제 상자에 넣어 포장한 후 갱도로 이송하게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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