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김정일 생일에는 결혼식도 못 한다?

봄은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계절이다. 북한의 청춘남녀들도 이맘 때 결혼을 통해 인생의 2막을 연다. 그러나 북한에서 결혼은 김일성·김정일의 ‘교시’ ‘말씀’ 등과 만성적인 식량난에 따른 영향으로 사회·경제적 구속을 받는다.  


80년대만 하더라도 김일성·김정일의 생일인 4월 15일과 2월 16일에는 결혼식을 할 수 없었다. ‘위대한 수령님(김일성)과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김정일)의 탄신일인 경사스러운 날에 어떻게 사사로운 축하행사를 가질 수 있겠는가’라는 이유로 당(黨)적 통제를 받았던 것이다.


심지어 “수령님과 장군님에 대한 충성심이 부족한데서 나오는 불결한 행동이며 은혜와 권위에 흠을 내는 행위”라고 범죄시하기도 했다.


탈북자들에 따르면 김정일은 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이 열린 1989년 이후 “국가적으로 식량 사정이 긴장되고 있으니 결혼식을 간소하게 하라”는 지시를 내렸고, 이후 각급 당 조직에서는 ‘위대성 교양자료’를 통해 김정일이 쪽잠에 줴기밥(주먹밥)을 먹으며 현지지도로 불철주야 활동을 하고 있다고 교양했다.


이에 따라 각 시, 군 행정경제지도위원회와 농촌경영위원회에서는 “결혼식에 쌀 5kg이상을 사용하면 엄중한 처벌을 한다”는 식량사용제한 지침을 내놓기도 했다. 양강도 혜산시 출신 탈북자 이선희 씨는(44세) “당시 결혼식을 위해 강냉이로 술을 담갔다가 농촌으로 추방되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대(大)아사 사태가 벌어졌던 90년대 중반부터는 식량사정이 힘들어지면서 주민들은 누구의 지시나 방침이 없어도 간소하게 결혼식을 진행했다. 이 무렵부터 김일성·김정일의 생일에도 결혼식을 하게 됐다. 연료난에 따른 교통사정과 식량난에 따라 ‘잔치’를 두 번 하기 어려웠던 사정이 반영됐다는 것이 탈북자들의 설명이다.


당시 주민들은 “명절(金부자 생일)과 집안 경사로 두 번 걸음을 하지 않아서 좋고, 따로 명절 준비를 하지 않아도 되며 해마다 명절과 결혼기념일을 함께 할 수 있기 때문에 ‘꿩 먹고 알 먹기'”라고 말했다고 한다.


2000년대 들어서는 생산 활동에 지장이 없는 공휴일을 택하여 결혼식을 하게 됐다. 특징적인 것은 중국산(産) 과일과 물품이 결혼식 상을 차지하게 됐다는 점이다. 예물도 마찬가지다. 


결혼식은 봄, 가을에 주로 한다. 여름은 덥고, 겨울은 춥기 때문이다. 냉동기의 보급률이 낮아 음식을 보관하기 쉽지 않았던 사정도 결혼시기에 영향을 미쳤다. 결혼식은 보통 가정집에서 치르는데,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곡물 가격에 신경을 많이 쓴다.


특히 먹고 사는 문제와 관련된 농사철이 결혼 시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대다수 주민들은 비축해 둔 식량이 장마당에 나올 때인 봄과 추수철인 가을에 결혼식을 잡는다. 봄에는 새해 농사를 위해 저장해둔 곡물을 점검한 이후 여유 곡물을 장에 내다 팔기 때문에 시장에서의 곡물가격이 저렴하다.


농촌에 사는 사람들은 결혼예물을 준비하려고 해도 가을걷이를 끝내고 곡물을 팔아야 돈이 생기고, 결혼식 하객을 위한 피로연도 가을이 되어서야 푸짐한 음식을 마련할 수가 있다.


도시의 경우도 농촌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도시 주민들 역시 국가적인 공급이 마비상태이기 때문에 오직 장마당을 통해 곡물이나 의류 등을 해결하는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비교적 물가가 낮아지는 가을철에 결혼식을 올리게 되는 것이다.


결혼식을 하기 전에 약혼식을 하는데 남자 쪽에서 여자 쪽 집안에 ‘딸을 주어 고맙다’는 인사의 의미로 신부와 그 가족들이 결혼식 날 입을 옷을 비롯해 화장품 등을 예물로 준다. 더불어 ‘시집을 온다’는 의미로 5자로 시작해 5자로 끝나는 액수의 돈(예를 들면 5550원)과 5색실(흰색, 검은색,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을 신부 측에 전달한다.


예물 전달 이후 신랑 측에서 준비해간 음식과 술로 신부 측을 대접한다. 약혼식에 갈 때는 축의금이 따로 없다. 식이 끝나면 양측의 어른들이 마주앉아 결혼식 날(정확히 시기)과 행사 일정을 토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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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미진 기자
경제학 전공 mjkang@uni-media.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