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고향이 만경대로 알고 계시죠? 사실은요

김일성의 고향은 어디인가? 북한 사람이나 북한에 대한 관심 있는 이들에게 물어보면 누구나 평양 ‘만경대’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런데, 2011년 러시아의 한 잡지에 나왔던 인터뷰는 이 사실에 의심케 한다. 인터뷰의 대상자는 니콜라이 레베데프 소장(1성 장군, 1901~1992년)이다. 레베데프 소장은 북한 소련 군정기 당시에 북조선 정치사령관이었고, 김일성의 승진에 기여한 주요 인물 중에 하나다.

1984년 구소련에서 1946년 3월 1일 김일성을 도운 바 있는 소련군 소위 노위첸코의 일생을 다룬 ‘영원한 전우’라는 영화를 만들려고 했는데, 당시 보리스 크리시툴 조감독은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레베데프 소장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 내용은 2011년에 ‘소웨르센노 세크레트노'(극비)라는 잡지에 발표됐다. 인터뷰 통해 북한 역사 초기의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들이 많이 발견됐다.

왜 스탈린은 북한 지도자로 김일성을 선택했는가? 이 질문에 확실하게 대답할 수 없지만, 레베데프 장군의 이야기가 다음과 같다.

“일본과 전쟁의 종결 며칠 전에 우리는 스탈린으로부터 소련군대 대위인 김일성 씨를 (북한 공산당 총비서로) 추대할 준비를 하라는 암호전보를 받았다. 이 결정을 준비한 사람이 베리야(당시의 소련 비밀 경찰 지도자)였던 것을 알게 됐다. 그는 스탈린에게 후보자를 찾는 것을 중앙정보부가 하게 해달라고 설득하며, 자기의 부하들에게 소련에 거주하고 있는 조선인을 찾으라고 명령했다. 베리야가 찾은 김일성 대위가 바로 일의 적임자이라고 대원수(스탈린)에게 아뢰고, 칭찬을 받았다.”

레베데프 장군 말대로 김일성의 귀국 전에 그가 북한의 지도자가 될 것은 결정됐다. 다음엔 레베데프 장군은 김일성이 마르크스-레닌주의 사상을 완전히 몰라서 그를 빨리 가르쳐야 한다며 김일성이 사상교육을 받는 상황에서 그를 주요한 조선인들에게 소개하였다고 한다. 이후 김일성은 ‘소련 붉은기 훈장’을 받은 것을 매우 자랑스러워했다고 한다. 김일성은 10월 14일에 소련 군대를 찬양 데모에 처음에 나왔을 땐 이 훈장을 달고 나왔다. 현대 북한에선 소령 훈장을 붙인 최고사령관 ‘수령님’을 보여 주지 못해서 사진을 조작해 보여주고 있다.



▲1945년 10월 14일 김일성 사진. 김일성 옆에 마하일 강 소련 군대 소좌가 있고 뒤쪽에 소련 장군 몇 명이 있으며 소련 국기 및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다.(왼쪽) ▲오른쪽 사진은 북한 책과 매체들에 나오는 사진. 훈장이 삭제됐다. 

레베데프 장군은 이어 김일성 개인 숭배를 어떻게 진행했고, 또한 만경대를 어떻게 김일성의 고향으로 선언했다고 이야기한다.

“미국 한 매체에서 김일성이 인민의 대표가 아니고 크레물린의 주구(走狗)라는 암시는 더 자주 나오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미래의 «수령»이 외국 기자와 만날 순간은 불가피하게 다가왔습니다.

이 주요한 만남을 위하여 미연에 김일성의 고향으로 돼야 할 마을이 선택되었습니다. 나중에 이 마을은 광대한 기념관이 되었거든요. 마을 주민은 «자발적으로» (소련 당국은 마을 주민들에게 ‘누설하면 너의 가족을 사형할 거야’라고 협박하였다) 김씨가 바로 ‘이 빈곤한 집에 태어나고 어린 시절에 이 오솔길로 이리저리 뛰었다’고 증언하는 것에 동의했다. 집과 오솔길을 올바르게 설명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마을에서 추방됐고, 그 집을 «1호 집»과 «1호 오솔길»으로 명명하고 이를 잘 알 고 있는 사람들에겐 선물을 주었습니다.

<중략> 김씨는 «고향의 마을»에 들어가자마자, 모든 곳에서 행복한 눈물을 흘리는 주민들이 모이자 꽃을 주고, 노래 부르고 춤을 추는 연회를 열었습니다. 김일성을 끝없이 껴안고 찬양하였습니다. «동료 마을 사람» 역할을 한 한 사람은 «사랑하는 김일성»을 너무 심각하게 껴안아 김씨의 호흡이 멎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레베데프 소장은 김일성의 진짜 고향은 어딘지 이야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만경대가 김일성의 고향이 아니고 조작됐다는 것이다. 김일성, 김정일을 찬양하기 위해 역사를 왜곡·조작하는 것이 이때부터 시작됐다고 보면 된다.

레베데프 장군은 김일성 우상화 관련 다른 일화를 소개했다. 1967년부터 1980년까지 레베데프 장군은 김일성의 초대를 받아 해마다 국가명절이 된 김일성의 생일(4월 15일)에 북한을 방문했다. 1980년 방북한 레베데프 소장은 김일성을 만나고 평양을 관광한다. 당시 레베데프 장군은 한 지역에 멈춰 서고 이곳을 1945년 김일성과 산책하면서 갑자기 총성 소리를 들었던 곳으로 기억했다. 레베데프는 이 사건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봤지만, 김일성은 자신을 암살하려는 사건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35년 지나서 이 이야기가 다시 나온 것이다. 총성이 들렸던 그 장소는 울타리가 쳐지고 푯말이 서 있었다. 최고지도자 김일성을 암살하려는 시도가 있었던 곳이라는 전설적인 곳으로 둔갑해 있었던 것이다. 레베데프 장군의 이야기가 다음과 같다.

“삼십여 년 지나서 우리는 다시 한 번 김씨와 함께했던 그 ‘전설적인’ 나무 앞에 서 있었습니다. 자동차에서 나와 울타리 앞에 세워진 푯말 앞에 서 있었는데, 푯말에 이 사건에 대한 엉뚱한 글이 쓰여 있었습니다. 울타리 안에 잔디는 잘 관리되고, 나무 밑에 신선한 꽃이 있었습니다. 근처에 아무 사람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부근은 호위병들이 포위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조용한 분위기에 나는 과거 시절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일시적인 충동으로 수령(김일성)의 어깨를 툭 쳤습니다.

‘김씨, 우린 바로 여기에 누워 얘기하곤 했잖아. 기억하지? 그때 얼마나 젊고 얼마나 바보 같았는지….’ 이때 내가 김씨의 어깨를 툭 치는 것을 본 경호원들은 술렁거렸고, 수령 또한 당황해 했습니다. 김 씨는 ‘그래, 맞아. 넌 그때에 진짜 젊었지. 그리고 완전 바보 같았어’라고 답했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부터 북한에서 초청한다는 연락이 오지 않았고 14번째 조선(북한) 여행은 실패했습니다.”

레베데프 소장은 인터뷰를 1984년에 했을 때 고령이어서 어떤 부분을 잘 기억 못 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인터뷰에서 그는 1945년 10월 14일 데모에서 김일성을 «붉은기 훈장» 없이 나오도록 했다고 기억했지만, 위의 사진을 보면 훈장을 분명히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주장하는 김일성의 고향 만경대가 조작되고 꾸며진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에 레베데프 장군과 인터뷰를 중요한 사료로서의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