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이 김일성을 북조선의 지도자로 선정하고 그를 지원한 이유에 심오한 전략적 계산은 없었다. 단지 자신들 말을 잘 듣고 자신들이 조종하기 쉬운 인물이 김일성이었기 때문에 소련 당국은 그를 지도자로 낙점하고 정책적으로 밀었던 것이다. 1945년 10월 10일 스탈린은 젊은 김일성을 포함해 하바로프스크에서 군사훈련을 받은 조선인 장교 66명을 조선에 파견했다. 그 후 소련군은 조선의 권력을 이들에게 부여했다.
2차 대전 종전 직후의 스탈린은 조선반도 전체를 사회주의 체제로 통일시키려는 생각을 지니고 있지는 않았다. 38선을 경계로 북쪽의 정권을 확실히 지배할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으며 그는 강대국 미국과의 군사적 충돌을 피하고자 했다. 이때까지도 스탈린의 안중에 김일성은 없었다. 젊은 김일성은 계급도 낮았으며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어떤 영향력도 지니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탈린이 주목했던 조선의 정치인은 조만식이었다. 스탈린은 곧 조만식을 북조선의 실권자로 만들려는 움직임에 착수했다.
당시 조만식은 조선의 주요 인물로 지명도가 높았으나 그는 광신적인 민족주의자였다. 그는 소련이 북조선을 위탁 관리하는 것에 강력히 반발했다. 조만식은 조선 각지를 돌아다니며 “왜 조선인이 자신의 나라를 스스로 지배할 수 없는가? 외국인을 조선에서 추방해야 한다”고 외치며 소련의 조선정책을 계속해서 비난했다. 조만식의 이 같은 언동들은 결국 스탈린의 심기를 건드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조만식은 행방불명됐다.
그를 대신해 두각을 보인 인물이 김일성이었다. 김일성은 33세의 젊은 청년이었다. 김일성의 라이벌이기도 했던 최용건 같은 유명한 젊은 군인들이 조선에서 활약하고 있었는데 스탈린의 선택이 어떻게 해서 김일성으로 결정됐을까? 그 당시 사실 중국에서도 마오쩌둥(毛澤東) 같은 지도자들은 김일성의 존재에 대해 거의 모르고 있었다. 마오의 선호는 최용건이나 무정과 같은 일명 ‘연안파’들이 북조선의 지도자로 바람직하다는 것이었다.
어찌됐든 스탈린은 김일성을 북조선 지도자로 낙점했다. 스탈린이 정치 경험도 없고 영향력도 미미한 김일성을 선택한 이유로 가장 설득력있게 제시되는 가설은 김일성이 소련에 가장 고분고분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같은 가설은 조만식의 소련에 대한 저항 사례를 볼 때 설득력을 갖춘다.
김일성이 원래 경력이 부족하고 실력도 없었기 때문에 이는 역설적으로 다른 인물들보다 소련이 지배하기 가장 쉬웠다는 것이다. 게다가 김일성이 소련에서 군사훈련을 받은 조선인으로 마오의 색깔에 물들지 않았다는 점도 스탈린에게는 중요하게 고려된 요인이었을 수 있다. 이 같은 소련의 결정은 한반도 전체에 대한 중요한 전략적 고려에서 나온 것이었다기보다는 북조선에 대한 자신들의 영향력 관철을 위해 편의적으로 행해진 단순한 결정이었다. 어떻게 보면 김일성은 자신의 ‘무능력’ 때문에 손쉽게 스탈린에게 간택되어 북조선 최고지도자의 자리에 등극할 수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