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은 수령직속경제 설계자, 정일은 집행자”

1972년 12월 27일 북한은 김일성에게 당·군·정 전 분야에 걸쳐 절대권을 부여하고 영구집권을 보장하는 신헌법을 공표함으로써 김일성의 ‘유일체제’는 제도적으로 완결됐다. 하지만 1972년은 김일성 유일체제의 완성, 즉 북한사회의 체제적 변화가 종결된 시점이 아니라 새로운 변화가 시작되는 시점이었다는 전문가의 주장이 제기됐다.


정광민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은 국방정책연구 겨울호에 게재한 논문을 통해 지금까지 학계는 대부분 1972년에 성립한 북한의 새로운 체제를 정치·이데올로기적 변화에 초점 맞춰 북한의 기본구조, 사회주의적 경제시스템에서는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으로 봤지만 사실이 아니라며 이같이 주장했다.


정 선임연구원은 “김일성의 유일체제는 정치·군사에서 경제공간으로까지 확장되었다”며 “김일성 유일체제하에서 경제시스템의 변화는 1970년대 초중반부터 시작됐고 1978년경 새로운 경제시스템의 골격이 만들어지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김일성 유일체제 하에서의 경제시스템의 변동을 추적하려면 1972년 체제 후기에 대한 연구가 중요한 과제”라며 “황장엽(전 노동당 비서)의 진술은 1970년대 초중반 이후 발생한 북한 경제시스템의 변동을 파악하는데 있어서, 더 나아가 1972년 체제의 성격 규정과 관련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황 전 비서는 북한의 공식경제는 당경제, 제2경제, 인민경제의 3중 경제구조로 분절되었고 최우선하는 부문인 당경제와 제2경제를 김정일이 직접 관장하였다며 이는 수령 개인에 복무하는 ‘수령의 개인경제’라고 규정한 바 있다.


정 선임연구원은 “김일성은 1인 독재와 영구집권을 정당화하는 명분을 반외세와 남조선 혁명에서 찾았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국방을 최우선하는 체제를 만들려 했다”며 국방국가 체제의 기본표식은 ▲정치에서의 일원적인 전시지휘체계의 수립 ▲사회의 군사적·전체주의적 재편성 ▲경제에서의 군수산업의 육성을 중심으로 하는 국방경제의 재편 등이 국방국가체제의 기본표식이 된다고 전했다.


이어 북한의 신헌법(1972년)은 “▲전시지휘체계인 최고사령관 직제의 부활과 국방위원회의 신설(제93조) ▲’전인민적 전국가적 방위체계’ 및 ‘자위적 군사노선’의 법제화(14조) ▲국방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인민경제발전계획의 작성하여 실행한다(31조)”고 되어있다며 “김일성을 정점으로 하는 유일적인 전시적 지휘체계를 확립하고 국방의 총 노선과 그에 따른 국방경제의 강화를 규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선임연구원은 1972년 체제 후기의 북한 경제시스템의 변동은 제2경제위원회가 출범하는 단계와 당경제와 제2경제가 융합하는 단계의 두 단계를 걸친 국방경제체제의 재편을 통해 진행되었고 이러한 결과 북한의 공식경제는 당경제, 제2경제, 인민경제의 3중경제로 분절되었다고 설명했다.


정 선임연구원은 “김일성은 수령 개인에게 ‘국가의 돈’을 집중하고 이를 수령이 배분·관리하는 체계를 수립하고자 했다”며 “김일성이 ‘수령의 직속경제’에 대한 설계자였다면 김정일은 그 실행자”라고 말했다.


이어 “당경제와 제2경제는 김정일 이외에 어느 누구도 관여할 수 없는 김정일의 직속경제가 되었다”며 이같은 경제시스템의 변동 결과 북한경제를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사회주의 경제체제로 설명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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