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에 의존한 ‘이미지 정치’는 양날의 칼

인민군 최고사령관, 노동당 제1비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에 차례로 올라 북한의 최고 지도자가 된 김정은의 첫 공개행보는 김일성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데 맞춰졌다.


경제적 성과 등 업적으로 내세울 것이 없는 상황에다 ‘강성국가 진입’ 축포용 장거리 로켓도 공중 폭발함에 따라, 김정은은 김일성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이미지 정치’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김정은은 15일 김일성 100회 생일기념 행사에서 처음으로 대중연설을 했다. 그는 10만 군중을 상대로 20분간 육성으로 연설문을 낭독했다. 좌우로 몸을 흔들며 굵직한 중저음의 목소리로 연설문을 읽는 모습과 손동작은 김일성과 매우 유사했다.


1950년대 김일성이 입었던 흰색 군 예복을 걸치고 주석단에 선 군부 인사들을 비롯해 항일빨치산 부대 군복 차림으로 열병식에 등장한 열병 종대와 기마대 등도 김일성 시대를 연상케 했다. 이 같은 연출은 김정은에게 김일성의 후광을 덧입히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나이가 어린 데다 정치 경험이 없는 김정은은 선대 지도자의 유훈과 계승을 앞세워 내부 결속을 다지고 있다. 이 때문에 ‘원성’이 자자한 아버지에 비해 ‘향수’를 자극할 수 있는 할아버지의 이미지를 앞세워 주민들의 충성심을 끌어내기가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 소식통은 “김정은이 김일성이 즐겨 입던 검은색 인민복을 입고 지도부들도 김일성 시대에 유행했던 흰색 군복과 모자를 착용하게 함으로써 대(代)를 이은 충성을 강요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광인 북한전략센터장은 데일리NK와 통화에서 “성과나 업적을 전혀 내세울 것이 없는 상황에서 김일성에 대한 향수라는 ‘상징조작’을 시도해 김정은 체제 출범에 따른 선전효과를 극대화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김일성이 34세 때인 1945년 10월 평양 공설운동장에서 열린 첫 공개 연설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널리 알렸듯, 30세의 김정은도 대중적 정치 스타일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키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김정은이 김정일의 ‘신비주의’ ‘은둔정치’와는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영수 서강대 부총장은 “새 지도자의 목소리를 들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가 나올 것”이라며 “당분간 자신의 위상과 존재가치를 알리기 위해 김정일의 신비주의 전략과는 차별화를 시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광인 센터장도 “김정은이 김일성의 향수를 자극하는 연출은 분명한 효과를 보일 것”이라며 “북한 당국은 주민들 사이에 ‘수령님이 환생한 것 같다’ 식의 소문을 조직적으로 퍼뜨려 선전효과를 극대화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인민생활 개선 없이 김일성에 대한 향수만을 자극하는 ‘이미지 정치’가 한계에 부딪힐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부분의 북한 주민들은 인민생활에 큰 문제가 없었던 김일성 시대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 주민들이 당국의 배급에 의존하지 않고 장사를 통해 생활하고 있는 만큼  이러한 이미지 정치에 대해 염증을 느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고위 탈북자는 “김정은이 김일성을 따라하겠다는 것인데, 주민들의 생활 개선과 관련 정책 등을 실시하지 않고서는 이러한 ‘김일성 따라하기’는 큰 효과를 발휘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손광주 경기개발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초반과 달리 시간이 지날수록 김정은 정권의 작위적인 선전에 북한주민들이 염증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때문에 김정은이 향후 이미지 정치에만 의존할 경우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 센터장은 “빠르게 외부 정보가 유입되는 국경지대나 고위 간부들 사이에서는 이 같은 선전 기도가 효과를 발휘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오히려 지나친 선전은 후과로 작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