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永生탑’ 건립, 원한의 秘스토리

▲ 함경북도 무산의 김일성 영생탑

북한 전역에는 김일성 김정일을 숭배하는 각종 동상, 기념비, 혁명연구실 등등이 수도 없이 많다. 모두 8만7천여개라고도 한다. 정확한 숫자는 잘 모르지만 역사상 그만한 우상화물을 건설한 경우는 유례가 없을 것이다. 이라크의 후세인이 세운 동상이나 기념비 등은 김일성 김정일에 비하면 한마디로 족탈불급이다.

아마 개인미신이 이처럼 사람들을 노예로, 머저리로 만들 것이라고는 김일성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수령우상화 작업의 총사령관은 김정일이었다. 김정일은 당 선전선동부 일꾼들에게 교양사업은 나치스의 선전상 괴벨스처럼 하라고 지시하곤 했다. 당 사업의 기본이 ‘위대한 수령님의 위대성을 대내에 널리 선전하는 것’이라고 누누이 강조했다. 이 때문에 김일성이 갑자기 사망하자 주민들은 거리로 뛰어나와 눈물을 펑펑 흘리며 슬퍼한 것이다.

김정일은 김일성 사망 후 3년간 이른바 ‘유훈통치’를 실시했다. 이 기간동안 김정일은 세습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김일성의 후광을 철저히 이용했다. 이 무렵 김정일은 김일성의 후광을 효과적으로 업기 위해 색다른 아이디어를 만들어냈다. 그것이 ‘김일성 영생탑’ 건립이다. 김정일은 영생탑을 세우면서 “어버이 수령님은 우리 안에 영원히 살아계신다”고 선전했다. 북한주민들의 머리 속에서 김일성이 떠나가지 못하도록 붙들어매는 것이 말하자면 김정일의 ‘생존전략’이었던 셈이다.

높이 30-70m, 주민들 떼죽음 기간 중 건설 지시

96년 경부터 시작된 영생탑 건립은 각 시, 도에 하나씩, 전국에 2백여개가 세워졌다. 평양에는 김일성이 일하던 주석궁을 확장하여 시체를 보관하는 기념궁전으로 만들고, 각 지방에는 김일성의 영생을 기리는 탑을 건설하라고 지시했다. 김정일은 “어버이 수령에게 효성을 다하자”고 했지만 수백만명이 굶어죽는 판국에 영생탑 건립 지시가 떨어지자 사람들은 김정일을 “죽은 아버지를 욕되게 하는 불효자식”이라고 했다. ‘인민들을 굶겨 죽이라고 하는 게 김일성의 유훈인가’라고…

영생탑 건설은 중앙당 선전선동부가 맡았다. 집행을 맡은 시, 군당 선전부장들은 돌격대장이 되어 건설을 추진했다. 공사를 책임진 당 일꾼은 선글라스를 끼고, 농민모자를 쓰고 현장에서 살다시피 했다. 이것이 그들이 당에 대한 충성심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공사를 허술하게 했거나 늦게 끝낸 지방의 당 일꾼들이 대거 숙청된 것도 이때의 일이다

북한의 각 도마다 김일성의 동상과 김일성 혁명사적관이 있고, 군에는 연구실이 시내중심에 제일 크고 으리으리하게 지어져 있다. 그 앞에 영생탑이 건설됐다. 영생탑의 높이는 30~70미터로서 지방마다 다르다. 탑 건설의 요구는 화강석을 다듬어 쌓는 것이었다. 돈이 좀 있는 지방은 화강석을 다듬어서 탑을 쌓았다. 일부에서는 강재를 넣어 시멘트로 탑을 건설했다.

영생탑이니만큼 비바람에도 쓰러지지 않고 오래 견뎌야 했다. 때문에 건설용 시멘트로는 어림도 없었다. 지방에 있는 주택용 시멘트는 쓰지 못하고 고마르카(고강도) 시멘트를 써서 기둥을 세운 다음, 그 위에 프랑스 외장제인 백시멘트(white cement)를 발랐다. 그 다음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라는 글발을 새겨놓고 빨간색으로 도료를 했다.

산 사람 목숨 바쳐 영생탑 세워져

탑 건설의 예산은 각 지방에서 자체로 짜냈다. 세대주 한 사람당 노동자는 돈 3백원씩(당시 쌀값 5kg에 해당), 농민들에게는 옥수수 한 자루씩 의무적으로 걷어 모았다. 여력이 있어 더 내는 사람들은 충성심이 높은 사람으로 평가되었다. 건설노동자들은 공장과 농촌에서 선발된 사람들로, 공사가 끝나면 입당을 제의받은 선발된 ‘돌격대’였다.

먹지도 못하고 후들후들 떨리는 몸을 겨우 가누며 ‘돌격대’들은 한치 또 한치 탑을 올렸다. 굶주린 사람들은 멍하니 올라가는 탑만을 바라 보았다. 탑이 절반쯤 올라가다 휘청거리는 발판에서 균형을 잃고 추락해 죽은 23살의 젊은 사람이 있었다. 그는 굶어 죽은 형 두명을 관도 없이 묻고 유일하게 살아남았던 집안의 ‘종자'(種子)였다. 그 아들까지 잃은 어머니는 할말을 잃고 넋없이 하늘을 쳐다보았다.

하늘이 무심하고 야속했다. 산 아들을 잡아간 김일성을 증오했다. 북한주민들은 두 끼 먹을 밥을 한끼로 줄이고, 허리띠를 한 겹 더 줄이면서 탑 공사에 한푼 두푼을 바쳤다. 중앙에서는 금수산 기념궁전을 위해 국가의 외화를 탕진하고, 지방에서는 백성의 고혈을 짜내 영생탑이 건설된 것이다. 인민들의 고혈로 세워진 영생탑은 지금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김일성 김정일에게 충성할 것을 말없이 호령하며 전국의 곳곳에 괴물처럼 서있다.

그러나 인민들은 다 알고 있다. 산 사람의 목숨을 바쳐 영생탑이 세워진 것을, 그 때문에 원한이 사무쳐 있다는 것을… 북한에 민주화 운동이 시작되면 아마도 맨먼저 주민들의 공격을 받게될 우상화물은 ‘김일성 영생탑’이 될 것이다.

한영진 기자(평양출신 2002년 입국)hyj@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