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갑 의원님, 정말로 낚시하실 때 된 것 같습니다

한나라당의 대표적인 보수파인 김용갑(사진) 의원이 31일 묘한 발언으로 주목을 끌었다.

김의원은 성명을 내고 이명박 대선후보의 이념 성향에 대해 “색깔이 왔다갔다, 너무 어지럽다”고 비판하면서 “이 후보의 이념 성향을 좌측으로 줄곧 의심해왔는데 주한 미 대사와의 면담에서 ‘이번 대선은 친북좌파 대 보수우파의 대결’이라고 발언한 것은 이 후보의 정체성에 대해 웃어야 할지, 의심해야 할지 정말 헷갈리게 한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그는 “이번 발언(‘친북좌파’)은 본 의원의 주장보다 더 강하고 지금까지 이후보의 발언과는 정반대여서 어느 쪽이 진심인지, 믿어야 할지 믿지 말아야 할지 정말 고민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이 후보가 상대와 상황에 따라 수시로 다른 말을 하는 것이 중도실용주의라고 생각한다면 정치지도자로서 철학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면서 “대선에서 가장 유력한 한나라당 후보가 이념이 뭔지 헷갈리게 온탕.냉탕을 왔다갔다 한다면 국민이 어떻게 이 후보를 믿고 소중한 한 표를 투자할 수 있겠느냐”고 덧붙였다.

여기에 범여권 후보들도 이후보의 ‘친북좌파’ 발언을 비판하고 나섰다.

손학규 전 지사는 30일 “지금이 어느 때인데 친북좌파 색깔논쟁으로 이번 대선을 이끌려 하느냐”며 “우리가 빨갱이인가”라고 공격했다.

정동영 예비후보는 “이번 대선은 평화 대 전쟁불사 세력간의 대결이다”며 “(이 후보는)민족·개혁세력을 친북좌파로 보는 시대착오적 사고를 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손학규, 정동영은 이후보의 발언을 빌미로 자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상황을 이끌어 보려는 의도가 보인다. 손학규는 “친북좌파라면 우리 보고 빨갱이라는 소리 아니냐?”며 사태를 한걸음 더 ‘진전’시키면서 색깔논쟁을 점화시켜 보려는 냄새를 피운다. 또 자신이 정치학 교수출신인 만큼 ‘이 분야 만큼은 자신 있으니 한판 붙어도 손해볼 게 없다’는 의도도 비쳐진다.

또 정동영은 잽싸게 ‘이번 대선은 평화대 전쟁불사세력 간의 대결’로 규정했다. 하지만 이런 식의 규정은 이미 밑천이 다 드러나 있다. 더 반복해봐야 유권자들의 관심을 끌기 어렵다. 정 예비후보는 자신이 그런 소리를 할수록 유권자들이 자연스럽게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전쟁 난다’는 북한의 저질 선동매체의 주장을 떠올리게 되면서, 결국 자신에게 손해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아직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역시 손학규보다는 한 수(手) 낮은 편이다.

이명박 후보의 김정일 정권 시각 매우 정확

이해하기 어려운 비판을 한 사람은 김용갑 의원이다.

김의원은 “이 후보의 이념 성향을 좌측으로 줄곧 의심해왔는데, 이번에는 나보다 더 강하게 나갔다”며 이후보의 정체성이 헷갈린다고 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하면 김의원이 헷갈릴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김의원이 ‘친북좌파’라는 표현의 원조에 해당한다. 그는 심지어 여당을 ‘조선노동당 2중대’로 직접 공격하기도 했다. 이런 수준낮은 논쟁을 일으킬 때마다 김의원은, 본인이야 섭섭해 할지 모르겠지만, 수구꼴통이라는 비판을 들어왔다.

이번 성명서에서도 김의원은 ‘이후보의 이념성향을 줄곧 좌측으로 의심해왔다’고 말했다.

그런데, 만약 김의원식의 분류대로라면 대한민국에서 좌측이 아닌 사람이 도대체 몇명이나 될까?

전 대한민국 유권자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김용갑 의원이 직접 ‘기준!’을 외친 뒤, 자신이 우파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김의원의 오른쪽에, 좌파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왼쪽에 서라고 할 때, 김의원의 오른쪽으로 갈 사람이 도대체 몇명이나 되겠느냐는 것이다.

만약 17대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한다면, 맨오른쪽에 김용갑 의원이 서게 될 것이고, 맨왼쪽에는 노회찬 의원 정도가 서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의 이념 스펙트럼을 그저 대중적으로 한번 정해보라면 대체로 이 정도의 범위 안에서 정해질 것이다. 김의원보다 더 오른쪽으로 흘러도 문제이고, 노의원보다 더 왼쪽으로 가도 문제인 것이다. 그런데 김의원이 이후보를 줄곧 좌측이라고 의심해왔다면, 그건 코메디나 마찬가지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그동안 이후보는 대북문제와 관련하여 몇 가지 중요한 대목에서 매우 정확한 시각을 보여주었다. 특히 무슨 좌우 문제가 아니라, 실체적 진실에 근거하여 문제를 풀어가려는 안목이 보인다.

첫째, 김정일을 ‘가장 오랫동안 독재를 하면서 가장 실패한 독재자’라고 규정했다. 또 김정일 정권과는 통일을 논의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아주 정확한 지적이다. 한반도는 물론이고 지금 전세계에서 가장 독재자이며 가장 수구꼴통인 한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김정일이다. 김정일 정권은 통일을 논의할 대상이 아니라, 평화적인 방법으로 교체해야 할 대상일 뿐이다. 현실적으로 우리와 통일을 논의할 수 있는 상대는 김정일 이후의 개혁개방 정부, 민주화된 정부이다.

이러한 시각은 무슨 보수-진보, 좌우 문제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다. 김정일 정권이 실제로 좌파적 정책을 중시하거나, 또는 노동계급적 이익에 상대적으로 충실한 정권이라면 남북교류협력은 물론, 통일논의까지도 못할 게 없다. 어느 사회든 좌우 스펙트럼이 있는 것은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 인민의 모든 이익은 김정일 개인의 이익에 복무해야 하며, 모든 대내외 정책이 수령 전체주의와 군사폭력주의(선군)에 의거한 김정일 정권을 놓고 어떻게 사치스럽게 보수-진보를 논하겠는가? 이 때문에 친김정일 좌파는 좌파도 아니고, 그냥 이 시대의 ‘정신적 변태들’일 뿐이다. 우파는 물론이려니와 자신이 진정한 좌파라고 생각한다면 김정일 정권을 도와주거나 협력의 상대로 인정해서는 안된다.

그런 점에서, 김정일 정권과 통일을 논의해서는 안된다는 이후보의 시각은 좌우 문제를 떠나 김정일 정권의 실체를 있는 그대로 보고 있다는 뜻이다.

둘째, 이후보는 북한이 개방으로 나온다면 10년 내 1인당 소득 3천달러를 만들 수 있다고 했다. 북한이 개방으로 나오고 한국과 중국, 일본이 적극 북한 경제재건에 나선다면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김정일 정권은 개방으로 나오기 어렵다. 하지만 김정일 정권이 진정으로 개방으로 나오고, 그것이 일시적인 전술이 아니라면 김정일 정권의 개방정책을 도와야 한다. 그것은 현실적으로 김정일 정권을 도우는 것이 아니라 북한 주민을 도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북한의 개방은 김정일 정권의 몰락으로 이어질 것은 분명하다.

2천3백만 북한 주민들과 김정일 정권은 가능한 한 최대치로 갈라치기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12월 대선이 지난 10년동안 김정일 정권을 열심히 도와준 친북좌파와, 이를 반대해온 보수우파의 대결이라는 표현은 사실관계에서 틀리지 않는다.

그런데 김용갑 의원은 이런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는 성명에서 “북한주민 소득을 3천달러로 만들도록 지원하겠다는 등 이후보의 정책은 냉탕 온탕을 왔다갔다 하고 어지럽다”고 말했다.

이 정도의 수준이 어지럽다면, 이제부터 김의원은 손자들 재롱이나 받아주거나, 아니면 최근 기대 수준에 훨씬 미달한 신대북정책을 내놓은 정형근 의원과 손잡고 고향으로 돌아가 낚시를 할 때가 정말로 온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