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단동(丹東) 국가안전국 구금 당시 고문과 가혹행위를 당한 북한인권운동가 김영환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연구위원은 31일 “이번 중국의 나에 대한 고문 문제로 북한인권 문제가 묻혀서는 안 되며 북한의 상황과 병렬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지난 25일 열린 석방기자회견서 김영환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연구위원이 석방 경위등을 밝히고 있다./데일리NK
김 연구위원은 이날 데일리NK와 인터뷰에서 “내가 받은 고문은 일반적으로 심한 고문이지만, 북한과 비교했을 때 심한 고문이라고 보기에는 어렵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는 중국에서 당한 자신의 고문 문제가 국제적으로 이슈화돼, 자칫 북한인권 문제가 뒷전으로 밀리거나 북한인권 문제가 중국내 인권문제와 같은 수준의 사안으로 인식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향후 북한인권운동가들에 대한 인권침해 재발방지와 중국의 인권문제 개선을 위해 이 같은 고문 사실을 밝히기로 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김 연구위원은 당시 고문과 가혹행위에 대해 담담하게 얘기했다. 그는 “6일간은 잠 안 재우기 고문을 당했다. 이후 5~8시간 동안 전기봉을 옷 속에 집어넣어 가슴과 등 쪽에 갔다댖다”면서 “전기봉 고문이 끝나고는 구타를 당했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북송(北送)하겠다는 협박도 20여 차례나 있었다.
그는 일부 언론에서 보도된 ‘통닭구이 고문’이나 양팔과 다리를 뒤로 꺾어 매달아 놓은 ‘비둘기 고문’ ‘물고문’ 같은 것은 없었다고 말했다. 보도 과정에서 와전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잠을 재우지 않는 과정에서 가로, 세로, 높이 25cm 크기의 의자에 40~50시간 앉아 있게 하는 바람에 하반신이 굉장이 고통스러웠다고 말했다. 또한 3월 29일 붙잡힌 지 사흘 째부터는 수갑을 강하게 조여 놓은 상태서 10시간 이상 있기도 해 손의 마비가 한 달 이상 계속됐다.
그는 단둥 국가안전국장과의 두 차례 면담 과정에서 설전을 벌였던 상황도 전했다. 김 연구위원은 안전국장에게 “나는 반중 성향도 아니고, 중국을 위해(危害)하는 활동도 하지 않았는데 왜 고문을 가하느냐”고 항의했고, 안전국장은 “고문사실을 외부에 말하지 말라” “중국 법률 위반을 시인하라”는 말만 반복했다고 했다.
한편, 김 연구위원은 20일 심양공항에서 우리 정부 관계자에 신병이 인도된 후 중국 국가안전청 요원에게 세 가지를 요구했다. “첫째 나에 대해 고문한 것을 사과하라, 둘째 북한민주화 운동을 모욕한 것에 사과하라, 셋째 북한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희생된 인사들을 모욕한 것에 대해 사과하라”였다.
[다음은 김영환 연구위원과의 일문 일답]
-중국 당국으로부터 어떤 고문을 받았나.
체포된 지 사흘 째부터 수감을 세게 채워놓는 고문을 했다. 손 마비가 한 달 정도 계속됐다. 4월 10일부터 15일까지 6일 간은 잠 안 재우기 고문을 당했다. 15일 심전도 검사와 혈액 검사를 한 뒤 16일 새벽까지 5~8시간 동안 전기봉을 옷 속에 집어넣고 가슴과 등 쪽에 갖다 됐다. 전기봉 고문이 끝나고는 구타를 당했다. 얼굴 부위를 집중적으로 맞아 피멍이 생기니까 중단했다.
-고문 외에 회유와 협박은 없었나.
안전부에서 북한민주화를 위해 희생된 사람들에 대해 책임을 끊임 없이 우리에게 물었다. 죄책감을 들게 해 심리적으로 회유하기 위해서다. 또한 우리 동료를 반중세력으로 규정해 나와 지인, 유관단체 전체를 중국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협박했다. 우리와 관련된 사람중에 행적이 파악된 사람이 있는데 이들을 체포하지 않은 것도 이들을 지렛대로 활용하려고 했던 측면이 있는 것 같다. 북송하겠다는 협박도 20여 차례 받았다.
당시 면회실 안에는 4명의 랴오닝성 국가안전청 요원이 있었고, 면회실 밖에는 다른 직원이 영사접견을 지켜보고 있었다. 영사가 ‘가혹행위를 당했느냐’고 물었고, ‘이런 상황에서 말할 수 있었겠느냐’고만 했다.
-1차 접견 때 고문의 상처가 남아 있었나.
구타당한 상처가 약간 남아 있었다. 하지만 영사와 3m 정도 떨어져 있어서 잘 안 보였을 것이다. 눈 밑에는 구타 때문에 피멍이 있었고, 등과 가슴에 전기봉 고문 때문에 약간의 화상이 있었다.
-2차 영사접견을 6월 11일에 했다. 이때 고문 사실을 알렸나.
5, 6명이 감시하고 있었지만 전기고문과 6일 동안 잠 안재우기를 당한 것 사실을 알렸다. 10초 정도의 짧은 순간이어서 감시자들도 알아채지 못했다.
-단둥 국가안전국장과의 면담에서는 어떤 얘기가 오갔나.
6월 19일 4시간 반, 7월 14일에 3시간 정도 두 차례 면담했다. ‘반중 성향도 아니고, 중국을 위해하는 활동도 하지 않았는데 왜 고문을 가하느냐’고 항의했다. 안전국장은 ‘위에서 철저하게 조사하라고 해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는 변명만 늘어놨다. 그리고 고문사실을 얘기하지 말라는 것, 중국 법률을 위반했다는 것을 시인하라고 했다. 부드럽게 얘기했지만, 사실 협박 수준이었다. 대부분의 시간을 ‘고문사실을 얘기하지 말라는 것’에 할애했다.
-정부는 가혹행위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다.
교섭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본다. 중국 측에서도 접견 직후 (우리 정부에) 고문사실이 밖으로 새나가면 교섭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중국이) 단순히 말이 아닌 또 다른 압력을 가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정부가 고문 사실에 대해 ‘신중하게 판단해 달라’는 얘기를 했다고 하는데.
중국 공안이 나한테만 협박을 한 것이 아니고, 정부에도 협박을 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런(고문) 얘기가 나오면 어떤 사태가 나올 것이다, 이런 식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고문 사실은 밝혔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함구했다.
많은 고민을 했다. 지인들과도 얘기를 했는데, 결론은 적극적으로 얘기해야 우리 활동가들에 대한 이런 사태가 재발하지 않는다는 판단을 했다. 또한 외부에서 이런 문제를 제기해야 중국의 전반적인 인권 개선에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한 결과다.
-중국 인권문제가 부각되면 북한인권 문제가 묻히는 것 때문이었나.
(중국 당국의)고문과 가혹행위 사실을 공개하면서 가장 우려했던 부분이다. 중국 인권 문제에 언론의 초점이 맞춰지는 것은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북한인권 문제다.
-그동안 중국에 우호적 입장이었다. 이번을 계기로 중국에 대한 전략적 판단도 바뀌나.
그렇지 않다. 여전히 중국은 북한민주화나 한반도 통일 과정에서 중요하다고 본다. (이번 일 때문에)감정적인 부분은 있을 수 있지만, 개인적인 감정 때문에 왔다갔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정부 관계자에게 인도되었을 때 심정은 어땠나.
안도감도 느꼈지만, 중국 땅을 떠나기 전 꼭 해야할 얘기가 있어 중국 관계자들에게 3가지를 소리쳐 요구했다. 첫째, 나에 대한 고문을 사과하라. 둘째, 북한민주화 운동을 모욕한 것에 사과하라. 셋째, 북한민주화 운동에 희생된 인사들을 모욕한 것에 대해 사과하라였다.
-중국 외교부가 오늘 적법한 절차로 조사했다며 고문 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이미 예상했던 바다. 지금까지 해오던 틀에서 벗어나 어떤 형태로든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는 것이 중국을 위해, 한중간의 관계에도 이익이다. 최근 중국이 인권을 강조하기 시작했는데,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는 것이 중국의 이미지 개선이나, 국가 발전에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내가 받은 고문은 일반적으로 봤을 때 심한 고문이다. 하지만 북한과 비교해봤을 때 심한 고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중국의 인권상황에서 계속 문제제기를 하고 비판을 해야겠지만, 반중(反中)감정으로 흐른다든지, 북한인권 상황과 병렬적으로 비슷한 수준으로 얘기하거나, 묻히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