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남 졸업 ‘김정일정치군사대학’은?

29일 기자회견에 나온 김영남씨는 자신이 ‘금성정치대학’을 졸업하고, ‘통일관련 특수부문’에서 사업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과거 자신이 사용한 ‘김철준’이라는 가명도 ‘특수사업상 불가피한 것’이라고 말했다. 북에서 ‘통일관련 특수부문’이란 대남공작사업을 말한다.

그러나 의도적이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나 김영남씨는 ‘금성정치대학’이 아니라 ‘금성정치군사대학’ 또는 ‘김정일정치군사대학’이라고 말했어야 옳다. 금성정치대학은 1946년 개교하여 몇 차례 이름이 바뀌면서 1974년 현재의 이름으로 개명되었다. 금성정치대학은 당 일꾼 및 근로단체 청년간부를 양성하는 곳이지, 대남공작 교육을 하는 곳이 아니다.

반면 ‘금성정치군사대학’은 92년 ‘김정일정치군사대학’으로 바뀌어 대남공작 교육을 하는 학교다. 따라서 김씨가 말한 금성정치대학과는 다르다. 김씨가 왜 금성정치대학을 졸업했다고 주장했는지는 의문이다. 남한 정보당국에 혼선을 주려고 했는지, 아니면 단순한 말실수인지 분명치 않다.

대남기관에서 한국 실상과 생활풍습 교육

남파간첩에 의해 납치된 한국사람들이 북한에서 간첩교육을 시키고 있다는 사실은 1993년 입국한 김정일정치군사대학 출신 안명진씨에 의해 밝혀졌다.

안명진씨는 납북 억류자 중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20여 명이 평양 용성구역 소재 ‘이남화(以南化) 혁명관’에 배치되어 남파간첩을 교육시키는 교원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증언했다.

‘이남화 혁명관’은 남파간첩 양성기관인 중앙당 3호 청사 내 작전부가 관할하는 ‘김정일정치군사대학’의 한 부서로 남한출신들이 한국의 실상과 생활방법 등을 훈련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축소된 ‘한국 모형관’으로 알려져 있다.

납북자들 중 총명하고, 효용가치가 있는 사람들을 엄선하여 대남간첩 교관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씨도 김정일정치군사대학을 졸업하고 대남부서인 대외정보조사부에 근무하는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 이름 딴 학교, 북한에서 유일

김정일정치군사대학은 노동당 작전부 소속 북한 대남사업요원 및 전투원(침투조)을 전문적으로 양성하는 교육기관이다.

금성정치군사대학으로 1962년 설립되었으며, 당중앙위 직속 정치학교로 명명되었다가 1992년 1월 김정일의 생일 50돌을 맞으며 ‘김정일정치군사대학’으로 개칭되었다.

이 대학은 북한에서 ‘김정일’의 이름을 딴 학교로 유일하다. 입학생은 당 간부 자녀, 대남사업 관련자 자녀, 국가안전보위부 및 보안성 간부 자녀, 인민군 안에서 당성, 체력, 두뇌가 좋은 사람들이 선발되고 있다.

고등중학교 선발대상은 각 도 시 군에 나가 있는 중앙당 5과 지도원들이 한 개 학교에서 1~2명의 우수한 학생들을 토대, 출신 성분, 학력 등을 고려하여 엄선한다. 신체검사를 거친 후 도당, 중앙당 담화 등 약 2년 간 심사를 거쳐 데려간다.

대남 전투원 양성, 사상교육 철저

김정일정치군사대학의 커리큘럼을 보면 김일성 김정일 혁명사상과목이 40%, 전투원으로서 신체단련과 격술, 사격 훈련이 40%, 운전 및 무전, 컴퓨터 기술교육이 20%를 차지한다.

무엇보다 사상교양을 철저히 한다. 전투원들은 최후의 순간 ‘자폭’을 가장 큰 영예로 간직한다. 김정일이 대남사업을 장악하면서 ‘자폭론’을 하나의 교과목으로 채택하고, 철학교재에도 5장은 ‘혁명적 자폭관’으로 되어있다.

“전투원들은 하루 밤에 40~80km를 돌파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김정일의 교시에 따라 전투원들은 25∼30kg의 모래배낭을 메고 40km를 3시간 만에 돌파하기, 해상 8km 돌파하기, 1주일 식량을 가지고 작은 삐토(작은 구덩이)에 잠복하기, 산과 도시에서의 각종 접선방법 취득, 1대 15, 1대 20의 대결훈련 등이다.

6개월간의 전문 특공훈련기간에는 달리는 자동차 잡아타기, 단도 던지기, 산악극복훈련 등을 시킨다. 훈련량이나 강도는 일반 인민군 특수병종의 4∼5배에 달한다.

대남공작부서에 배치돼 다시 비행기 폭파훈련, 요인암살훈련, 천리 행군 등을 훈련받는다. 이러한 훈련들이 모두 끝나면 전투원, 공작원 등의 임무를 부여 받고 대남공작에 투입된다.

학생들이 졸업할 때는 상위 또는 대위 군사칭호(계급)를 수여한다. 학생들은 외출 시 국방색깔의 단체복을 입고 붉은 별을 단 항일모자를 쓴다. 학생들은 졸업 후 청진, 남포, 원산 등에 위치한 작전부, 대외정보조사부 등 노동당 대남공작부서에 배치되어 전투원으로 활동한다.

아무리 28년 동안 세뇌된 김영남씨일지라도 그의 높은 ‘당성’과 혈육인 어머니와의 이별은 분명 미묘한 감정이 교차했을 것이다.

한영진 기자(평양출신, 2002년 입국)hyj@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