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남 母子 ‘납북에서 상봉까지’

고교생 신분으로 북한에 끌려간 김영남(45)씨가 28일 금강산 남북 이산가족 상봉장에서 꿈에도 그리던 어머니 최계월(82)씨와 누나 영자(48)씨를 28년만에 재회했다.

한반도 분단과 남북 대결의 아픔을 온 몸으로 겪어낸 두 모자의 이번 상봉은 그 상처의 깊이 만큼이나 극적으로 이뤄졌다.

김씨가 납북된 것은 16세 때인 1978년 8월 5일.

당시 군산기계공고 1학년에 재학 중이던 김씨는 여름방학을 맞아 전북 군산시에 있는 선유도 해수욕장에 피서갔다가 북한 공작원에 의해 납치됐다.

김씨는 함께 피서 온 선배들에게 꾸중을 듣고 숙소에서 빠져나와 해변에서 혼자서 훌쩍이고 있다가 공작조에 의해 발견돼 북으로 넘어가게 된 것이다.

이 당시 북한은 ’이남화(以南化) 교육(남파간첩 교육)’을 위해 김씨를 포함, 남한 고교생 5명을 납치했다.

김씨가 실종된 후 남한 가족들은 해변을 샅샅이 수색하며 그를 찾았으나 끝내 행방을 파악하지 못했다.

어머니 최씨는 “영남이가 바닷물에 빠져 죽은 줄만 알았다”며 실종 날짜를 제삿날로 삼아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납북된 이후 북한에서 ’김철준’, ’김영수’라는 이름을 사용하면서 김정일정치군사대학을 졸업했으며 대남공작기관인 북한 노동당 대외정보조사부에 근무했다.

이후 1986년 8월 평양 순안공항 인근 대양리 초대소에서 일본어를 배우며 알게 된 같은 납북자 신분인 일본인 요코다 메구미(77년 납북)씨와 결혼식을 올렸다.

하지만 메구미씨가 1987년 9월 딸 혜경(은경)양을 출산한 뒤 심각한 산후 우울증을 앓아 부부 사이에 금이 갔고 1993년 가을부터 별거에 들어갔다.

메구미씨는 1994년 자살했다고 북한이 발표했다.

김씨는 97년 박춘화(31)씨와 재혼해 딸을 낳았으나 이 아이는 한 살 때 사망했고 이후 아들 철봉(7)군을 낳았다.

김씨는 2004년 11월 북·일 정상회담 결과에 따라 아내 메구미씨의 유골을 직접 일본정부 대표단에 전달했으며 일본측은 DNA 감정결과 제3자의 것이라고 주장해 ’가짜유골’ 논쟁이 빚어졌다.

이 당시 일본 대표단은 김씨가 “공작원 신분이기 때문에 신상을 밝힐 수 없다”고 하자 액체로 된 점착약을 손에 바르고 악수하면서 그의 손에 부착된 세포를 채집하고 여러 장의 가족사진을 놓고 확인하는 방법으로 지문을 몰래 채취했다고 북한은 주장했다.

이러한 첩보작전을 방불케 한 일본정부의 집요한 노력은 결과적으로 김영남씨 모자 상봉의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일본 정부는 메구미씨의 남편이 한국출신 납북자라는 증언에 따라 2002년 평양에서 메구미씨의 딸 혜경양로부터 확보한 시료와 77∼78년에 납북된 고교생들의 가족으로부터 채취한 혈액과 머리카락의 DNA를 대조한 끝에 올해 4월 11일 김영남-메구미씨가 부부 사이임을 최종 확인했다.

이에 메구미씨의 아버지 요코다 시게루씨는 5월16일 서울로 건너와 사돈인 김영남씨의 어머니인 최계월씨를 만나 ’동병상련’의 아픔을 나누기도 했다.

북한은 남한과 일본이 납북자 문제와 관련해 공조 움직임을 보이자 이달 8일 김영남씨의 북한 생존 사실을 전격적으로 발표하고 이날 김영남씨 모자의 상봉을 마련하게 된 것이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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