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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선유도에서 북에 납치된 ‘고교생’ 김영남씨와 모친 최계월(82) 씨가 28일 금강산에서 28년만에 극적으로 상봉한다.
북측이 지난 7일 전화통지문을 통해 “최근 우리측 기관에서 김영남의 행적을 확인했다”고 밝히면서 제14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4회 차에서 어머니 최계월 씨와 누나 김영자 씨를 만나게 됐다.
김영남씨는 납북 후 역시 납북된 일본인 요코다 메구미 씨와 결혼, 딸 김혜경(은경)을 두었고 지금은 다른 여성과 살고 있다.
메구미양 납치사건은 현재 일본여론의 뜨거운 관심이 되어 있다. 이에 따라 김영남씨 가족의 상봉은 일본의 관심도 매우 높다. 따라서 북한당국이 김씨를 시켜 메구미양 생사여부 등에 관해 어떻게 답변하도록 하느냐 하는 문제는 한일 양국 및 납치관련 민간단체들의 현안이 되어있다.
그동안 북한은 남한당국에 대해 ‘납북자’ 실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지난 16차 장관급 회담에서도 ‘전쟁시기와 그 이후 소식을 알 수 없게 된 사람’이라고 적시했다. 따라서 북한의 숨은 ‘정치적 의도’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하다.
김영남 상봉, 한일연대 끊는 카드
한국과 달리 일본의 경우 김 씨 가족의 상봉에 우려를 표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일본 고이즈미 총리는 2002년 9월 방북해 일본인 납치에 대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받아내고, 2004년엔 납북 가족 5명을 귀환시키기도 했다. 나머지 8명의 납북자에 대해선 사망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탈북자들이 북한이 사망했다고 주장하는 일본인 납치자의 ‘생존설’을 제기하고, 94년 우울증으로 자살했다고 보내온 메구미의 유골이 가짜로 판명되면서 북-일간 관계는 그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매우 악화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김영남’이라는 예상치 않은 카드를 들고 나왔다. 바로 김 씨의 입을 빌어 메구미 문제와 일본의 ‘납치문제’를 일거에 해결하고, 그간 “우리 땅에는 단 1명의 납북자도 없다”던 북측의 주장을 정당화 할 가능성이 높다.
김 씨는 상봉장에서 ‘자신이 납북된 것이 아니라 자진월북이었다’고 주장할 가능성이 있고, 또 메구미 씨와의 결혼과 그의 ‘사망’ 경위를 밝히면서 ‘일본에 보낸 유골이 가짜가 아닌 진짜’라고 주장할 가능성도 있다. 아울러 메구미씨 부모가 요구하는 딸 혜경 씨의 송환 여부 등에 대해서도 언급할 것으로 관측된다.
실제 북측 관계자는 26일 “(상봉행사에) 혜경 양이 나올 것”이라며 “이번에 남측이 궁금해 하는 것을 모두 털고 갈 것”이라고 밝혀 그들의 의도를 뒷받침 한다.
납북자 문제 ‘이산가족화’ 경계해야
이렇게 될 경우 북한은 납치문제에 대한 한일 연대를 차단할 수 있으며, 납치문제를 국제문제가 아닌, ‘민족내부 문제’로 활용할 수 있다.
이와 함께 북한은 납치행위에 대한 국제사회의 부정적 여론을 김 씨 모자 상봉을 통해 ‘인도적 행위’로 덧씌워 인권압박 여론을 무마해 보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남한에 대해서는 김정일이 주장하는 소위 ‘통큰 결단’의 모습을 보였다고 선전하며, 나름의 ‘대가’를 요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여기에 한 가지 더, ‘납북자의 이산가족화’를 들 수 있다. 김 씨가 예상대로 납북이 아닌 자진 월북이라고 주장하는 순간 그 문제는 납치 문제가 아닌 이산가족 문제로 변질되고 만다. 이렇게 되면 단순히 김 씨의 문제로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전체 납북자 문제 해결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
만약 납북자 문제가 이산가족 문제로 변질될 경우, 납북가족의 송환문제는 더 큰 어려움에 봉착할 수 있다. 강제 납치가 아닌 이상 송환요구의 명분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김 씨의 가족이 가족 상봉을 정치적인 목적으로 이용하려는 데 대한 항의 차원에서 일본 언론의 인터뷰나 취재에 응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한다. 그러나 정작 더 큰 문제는 일본이 아닌 북측의 정치 공작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다.
28년만의 모자 상봉을 하루 앞두고 팔순 노모의 심경을 이해하지 못 하는 바 아니지만, 북측의 일방적 선전장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농후한 지금, 8만2959명의 전시・전후 전체 납북자 송환을 위해 노력해온 납북자 가족들의 헌신적 활동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