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철 “배고픈 아이 정치 몰라”…일각선 ‘눈가리고 아웅’ 지적도

인도주의 차원에서 대북지원 추진 입장 거듭 강조…'분배 투명성' 우려 여전

김연철 통일부 장관이 14일 오후 서울 삼청동 남북회담본부에서 열린 ‘대북 식량지원 관련 의견수렴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

대북 식량지원에 대한 여론이 여전히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가운데,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21일 “인도적 지원은 인도주의 원칙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며 정부가 북한 주민에 대한 인도주의적 차원의 지원이라는 원칙에 입각해 대북지원을 추진해나가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장관은 이날 취임 후 처음으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배고픈 아이는 정치를 알지 못한다’는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의 말을 인용하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당시 에티오피아에 대한 식량 지원을 둘러싸고 미국 내부에서 상당한 논란이 있었고, 정치적 이유로 지원을 하지 않아 엄청난 아사자가 발생했다”면서 “배고픈 아이는 정치를 모른다는 말은 당시 미국의 인도적 지원단체들의 주장이었는데, 그것을 레이건 대통령이 수용하면서 그 이후 인도적 지원에 대한 국제사회의 보편적 합의를 상징하는 말로 써왔다”고 설명했다.

김 장관은 이날 정부의 대북 인도적 지원 방침에 대한 비판적 여론을 의식한 듯 이날 인도주의적 지원에 대한 보편적 합의와 원칙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기본적으로 정치와 분리해서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 국제사회 보편적 합의이고, 유엔 안보리 제재 결의안에도 제재가 인도적 지원단체의 활동을 위축시켜선 안 된다는 게 모두 포함돼 있다”면서 “(정부도) 그런 부분들에 대해 원칙을 갖고 (대북 인도적 지원을) 추진하는 것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김 장관은 “(식량지원의) 시기·규모·방법과 관련해서는 대통령께서도 국회와 공감대를 갖는 기회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고, 통일부도 지금 다양한 차원에서 의견수렴을 하고 있다”며 “한편으로는 의견수렴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실무적으로 준비해야 할 것들을 검토하고 있는 국면이라고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북한 가뭄 피해
지난해 양강도 삼수군에서 촬영한 옥수수밭 풍경. /사진=데일리NK 자료사진

실제 김 장관은 지난 14일부터 대북 식량지원에 관한 각계각층의 의견 수렴에 나서고 있다. 그간 대북 지원사업 경험이 있는 민간단체와 종교계 인사를 비롯해 통일부 인도협력분과 정책자문위원, 대학총장들로 구성된 통일교육위원협의회 회장단 등 전문가 그룹을 만났고, 이 게기에 식량지원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청취했다는 것이 통일부 측 설명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대북 식량지원에 찬성하는 입장을 가진 대상자들 위주로 선정해 의견 수렴을 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실상 명분 쌓기가 아니냐는 것이다.

이 같은 지적에 통일부는 “우리사회 각계각층을 대상으로 지속적으로 다양한 의견 수렴을 하고 있으며, 참석자들은 대북 식량지원 관련 규모·시기·방법 등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며 해명하고 있다.

정부 고위당국자 역시 “일주일 넘게 의견수렴을 하고 있는데, 대체로 인도적 지원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는 편이지만 다양한 의견들이 있다”면서 “아무래도 그동안의 남북관계에 대한 평가도 있고 최근에 북한의 단거리미사일 발사 상황도 있었고 정말 다양한 의견들을 개진해 주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이 고위당국자는 “대학 총장님들 같은 경우에는 아주 가감 없이 일반 시민들의 입장에서 그 문제를 바라보는 생각을 그대로 말씀해주시면서도 다들 오피니언 리더들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인도주의 원칙에 공감하면서도 지금 여러 언론에서 제기하는 그런 문제들도 당연히 말씀해주신다”고 부연했다.

실제 현재 대북 식량지원과 관련해서는 ‘분배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특히 북한 사회를 경험한 탈북민들은 북한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이라는 목적과 취지에 맞게 굶주림을 겪는 주민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는지 여부가 핵심적인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2018년 10월경 촬영된 순천 지역의 모습. /사진=데일리NK 내부소식통

이태경 재일북송피해자가족협회 회장은 “북한 주민들이 굶어죽는데 도와주기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라며 “그렇지만 내 경험상 일반 주민들에게는 절대 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북한이 지원을 받고 나서 어떻게 하는지를 알기 때문에 또 속는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에 있을 당시 병원에서 일했다는 이 회장은 “내가 말단 단위에 있었을 때 지원물자가 온 적 있었는데, 실제로는 그게 다 군대로 돌아갔다”면서 “나중에 유니세프에서 검열(모니터링) 할 때에야 영양장애가 있는 아이들을 데려다 놓고 보여주는 식으로 먹였다”고 증언했다.

한 탈북민 단체장 역시 “김대중·노무현 정부 이후에 탈북민 약 300명을 대상으로 지난 10년간 대북지원에 대해 북한 주민들이 피부로 느끼고 있는 상황을 조사한 적 있었는데, 그 때 하나같이 ‘취약계층 지원하고는 아무 상관없다, 전부 군대에 들어갔고 일부는 위에서 시장으로 빼돌려서 돈벌이에 활용했다’고 말했다”며 분배 투명성 문제를 지적했다.

이밖에 또 다른 탈북민 단체장은 “과거 식량지원이 있었을 때 북한 당국이 어떻게 작동했는지, 북한에 정말 식량이 필요한 곳이 어디인지는 거기 살다 온 사람들이 더 잘 알지 않겠나.그런데 우리에게 그런(의견 수렴) 이야기는 하지도 않고 요청도 없다”면서 “정부가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여론몰이를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게 사실”이라며 씁쓸함을 드러냈다.

한편, 정부는 앞으로도 대북 식량지원에 대한 국민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면서 국제기구를 통한 간접지원 또는 대북 직접지원 등 구체적 지원계획을 검토해 나갈 계획이라는 입장을 지속적으로 표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