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숙, 힐에 `가지않은 길’牌 선물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북핵 6자회담 우리측 수석대표인 김 숙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15일 6자회담을 떠나는 미국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에게 준 패(牌)에 적힌 싯구다.

이는 미국의 유명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않은 길’의 맨 마지막 구절로, “아무도 가지못했던 북핵문제의 진전을 위해 노력한 힐 차관보의 공을 치하하기 위해 마련한 선물”이라고 외교통상부 당국자가 전했다.

힐 차관보는 이날 외교부 청사에서 김 숙 본부장과 회동한 뒤 기자들과 만나 “아주 아름다운 패”라며 “정말 고맙다”고 뜻밖의 선물에 기뻐했다.

두 사람의 이날 회동은 닷새 앞으로 다가온 한.미 외교장관회담에 대한 사전 조율과 함께 ‘석별의 정’을 나누는 자리이기도 했다.

한 당국자는 “힐 차관보가 다음 자리로 주이라크 미국대사로 나갈 것으로 보임에 따라 장도를 빌고 축하하는 자리이기도 했다”고 전했다.

특히 주이라크대사관은 미국의 해외공관중에서 가장 규모가 커 힐 차관보로서는 ‘영전’한 것이라는게 외교가의 대체적인 해석이어서인지 힐 차관보의 얼굴에서도 ‘떠나는 아쉬움’보다는 ‘다가올 도전’에 대한 기대가 느껴질 정도로 생동감이 넘쳤다.

힐 차관보는 “지난 4년은 매우 흥미로운 시간이었다”면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이루지 못하고 떠나 아쉽다”고 말했었다.
2005년 3월 주한 미 대사에서 6자회담 수석대표로 발탁된 힐 차관보는 끈질기고도 유연한 협상태도로 북핵협상을 진전시켜왔다.

2005년 9월 한반도비핵화의 설계도로 평가되는 ‘9.19공동성명’을 이끌어냈고 2007년에는 북핵문제의 발목을 잡아오던 ’BDA(방코델타아시아) 사태’를 해결하기도 했다.

비핵화 1, 2단계를 규정한 2.13합의, 10.3합의 등은 ‘일부에서 불완전한 합의’라는 지적이 없지 않지만 적어도 북핵문제를 아무도 가보지 못한 ‘불능화’의 단계로 이끈 것이라는 점에서 그 공로는 무시할 수 없다.

힐 차관보는 미국내 강경파와 일본 등으로부터 ‘김정힐’(김정일과 힐의 합성어)이라는 비아냥거림을 들을 정도로 한편에서는 ‘너무 북한의 입장을 생각한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특히 지난 10월 1∼3일 평양협의에서 시료채취를 포함한 과학적 검증방법에 합의했다며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했지만 작년 12월 회담에서 검증의정서 합의에 실패함에 따라 ‘북한의 의도를 잘못 읽었다’는 비판도 나왔었다.

한편 관심을 끌고 있는 미국의 후임 6자회담 수석대표와 관련, 외교 소식통은 “미국의 발표를 지켜봐야겠지만 대북특사로 거론되는 스티븐 보즈워스 전 주한 미국대사가 6자회담 수석대표까지 같이 맡을 가능성이 큰 것 같다”고 말했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