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복 `공식 수사’ 아닌 `내사 돌입’ 배경

검찰이 21일 김만복 국가정보원장의 방북 대화록 유출 사건에 대해 사실상 수사에 들어가면서 `수사를 시작한다’고 하지 않고 `내사에 착수한다’고 발표한 것은 최고 국가정보기관의 현직 수장을 수사하는데 대한 검찰의 고민 또는 배려가 깔려있다.

국가정보기관의 현직 최고 책임자가 수사 대상이 된 사상 초유의 사태를 맞아 그 기관의 권위 추락이나 명예 실추, 직원들의 사기 저하 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검찰은 김 원장이 대선 전날 방북해 자신과 김양건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이 나눈 대화와 방북 경위 등이 담긴 문건을 본인이 언론사 등에 유출했다고 지난 15일 밝히고 사의를 밝힌 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등이 “검찰이 인지수사할 것”이라며 사실상 수사 개시를 압박했음에도 불구하고 일주일간 결정을 미뤄왔다.

더욱이 청와대가 김 원장의 사표를 즉각 수리하지 않고, 검찰도 수사 착수 여부를 명확히 밝히지 않은 채 “계속 법리 검토 및 판례 연구 중”이라는 언급만 되풀이하자 `인수위의 수사 압력’과 `청와대의 사표 수리 유보’ 사이에서 “검찰이 눈치만 보면서 좌고우면한다”는 비판까지도 나왔다.

검찰이 21일 내사 돌입을 선언하면서 우리 사전에도 없는 “일단 그렇게 보인다”는 뜻의 일본식 법적 용어인 `일응(一應)’이라는 단어를 쓴 것도 여전히 신중에 신중을 기해 이 문제에 접근하고 있음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검찰은 발표문에서 “문건의 내용과 현재까지 확인된 유출 경위를 토대로 검토한 결과, 문건의 내용이 `일응’ 형법 제127조에 규정된 `공무상 비밀 누설'(공무원이거나 공무원이었던 사람이 법령에 의한 직무상 비밀을 누설한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혹은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함)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법령에 의한 비밀’ 외에도 국가안보 등의 사유로 외부에 유출되지 않아야 할 상당한 이유가 있으면 통상 비밀로 인정되는데, 김 원장이 언론사 등에 유출한 문건을 살펴봤더니 명시되지 않았지만 `실질비성'(실질적인 비밀성)을 갖춘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통상 이 정도 혐의점이 발견되면 해당자를 직접 소환 또는 서면조사하는 등의 `공식 수사’를 통해 혐의 여부를 판단한 뒤 비밀성이나 가벌성이 없으면 `무혐의’ 또는 `불기소’ 처분하고 그렇지 않으면 기소 처분하는 것이 검찰 수사의 관례이다.

그럼에도 검찰이 “내사에 착수해 (김 원장 본인을 일단 제외한) 관련자들을 상대로 문건 작성 경위나 외부 유출 동기ㆍ의도, 언론보도 과정 등을 확인하고 이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범죄 성립 여부를 판단하겠다”고 한 것도 김 원장이 `현직’이 아닌 `전직’이 될 때까지 일단 `주변 두드리기’를 통해 시간을 벌겠다는 의도를 깔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검찰 고위 관계자도 “해당 문건이 국가기밀 요건을 어느 정도 갖췄다고 판단돼 내사에 착수하는 것이며 작성 경위와 배경 등 주변 조사부터 하다보면 `처벌의 대상이 되는 비밀’로 분류해야 하는지, 김 원장을 직접 조사할 필요성이 있는지,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는지 등이 확실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모든 게 확실해진 다음 최후 단계로 김 원장 소환 여부를 검토하겠다는 뜻이다.

이와 관련, 이 관계자는 “검찰은 사건에 따라 바람처럼 재빠르게 움직여야 할 때가 있고, 태산처럼 무겁게 움직여야 할 사건이 있는데 이번은 국가정보기관의 권위ㆍ명예ㆍ사기를 고려하면 태산처럼 운신해야 하는 경우”라고 설명했다.

현직 정보기관의 최고 책임자가 처음으로 수사 대상에 오르기는 했지만 `국가적인 체신’을 감안하면 즉각 검찰에 소환되지는 않을 것임을 시사하는 대목으로 풀이된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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