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은 北억류 국군포로 외면하고 돌아갔다”

▲ 25일 6·25전쟁 국군포로 송환 촉구를 위한 민간청문회가 열렸다 ⓒ데일리NK

“경상도에서 온 박진수는 ‘이놈들아 쥐구멍에도 해뜰 날이 있다’는 말을 해 어디론가 끌려가 종적이 끊겼다. 다음 해 10월 강금수는 낙서를 했다는 이유로 총살당했다.”(귀환 국군포로 이원우 씨)

“김대중 대통령이 북한에 왔을 때 (한국으로)돌아갈 수도 있다는 생각에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결국 억류돼 있는 국민, 자신의 부하를 놓고 가버렸다”(귀환 국군포로 유철수 씨)

6·25전쟁 중 북한으로 끌려갔다 50여년 만에 탈북, 귀환한 국군포로들의 증언이다.

6·25전쟁 57주년을 맞은 25일 피랍·탈북인권연대(대표 도희윤)와 뉴라이트전국연합(공동대표 제성호)이 공동으로 ‘국군포로 송환 총구를 위한 민간청문회’를 열었다.

청문회에는 귀환 국군포로와 탈북한 국군포로 2세가 증언자로 참석했다.

이날 증언한 이원우(76·2004년 탈북) 씨는 1949년 군에 자원입대한 후 전쟁이 발발, 동두천 일대에서 첫 전투를 시작했다. 그는 1951년 1·4후퇴 후 중공군 인해전술에 휘말려 포로로 붙잡히기까지 과정을 빠짐없이 기억해냈다.

이 씨는 “포로가 돼 북으로 끌려간지 51년만에 북한을 탈출했다. 그리고 나의 조국에 돌아왔다”며 울먹였다. 이 씨는 한국에 돌아온지 3년이 훌쩍 지났지만 반세기 동안의 ‘북한 억류생활’이 전혀 잊혀지지 않은 듯 괴로워 했다.

그는 “1956년 11월 함경북도당 부위원장이 실시한 ‘국군포로의 과거 죄목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강연사업에서 ‘이놈들이 우리 애국자들을 학살한 미국놈들과 이승만의 앞잡이들’이라고 고함쳤다”고 회상했다.

그렇게 집단생활을 하다 1957년 경 ‘사회진출’이라는 명목하에 다른 북한 주민들과 비슷한 삶을 살 수 있었지만, 학대와 차별은 형언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고 말했다. ‘국군포로’라는 꼬리표는 그 자식들에게까지 그대로 물려졌다.

국군포로였던 이규만(북에서 사망) 씨의 딸 이연순 국군포로 가족모임 대표는 14세 때 가창대회에서 노래를 안 불렀다는 이유로 사상투쟁을 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이 대표는 “언짢은 일이 있어 노래를 부르지 않았는데 ‘아버지에게 무슨 말을 들었기에 노래를 안 불렀느냐’는 의심을 받고 1주일간 비판서를 써야했다”며 “국군포로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북한당국은 물론 주위사람들에게조차 외면 받았다”고 말했다.

국군포로였던 이종태(북에서 사망) 씨는 식량을 구해오다 강도를 만나 살해됐지만 북한당국은 사건에 대한 조사도 하지 않았다. 아들 이광수(2005년 탈북) 씨가 사건을 신고했지만 ‘아버지의 경력을 보라’는 말만 들어야 했다고 한다.

귀환 국군포로들의 북한에 남겨진 가족들은 수용소에 수감돼 있거나 수감중 사망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참석자들은 증언했다.

이연순 대표는 2004년 중국을 통해 아버지의 유해를 모셔왔다는 이유로 어머니와 남동생을 잃었다. 이 대표는 이들이 북한의 감옥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말했다.

이원우 씨는 외손녀와 외손자 4명을 빼고 5명의 가족들이 모두 수감돼 있다고 말했다. 북한에 있을 때 직접 데리고 산 가족들 모두가 수용소에 끌려갔다는 것이다.

이 씨는 “나는 남한에서 자원입대를 한데다가 사범학교를 다녀 북한 당국이 나를 고용간첩이라고 몰아 몹시 고달픈 생활을 했었다”면서 가족들 역시 무사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증언한 귀환 국군포로 유철수(76·2000 탈북) 씨는 국군포로 송환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정부를 강하게 성토했다.

유 씨는 “김대중 대통령이 북한에 왔을 때 (한국으로)돌아갈 수도 있다는 생각에 눈물을 흘렸다”면서 “하지만 결국 억류돼 있는 국민, 자신의 부하를 놓고 가버렸다”고 말했다. 그는 “그 이후 정부에 대한 기대를 접고 1달 10일만에 북한을 탈출했다”고 말했다.

청문회에 참가한 귀환 국군포로 및 가족들은 이날 성명을 내고 “정부가 국군포로 및 그 가족들의 송환에 즉각 나서야 한다”고 호소했다.

성명은 “국군포로 송환과 관련한 진전된 합의문하나 도출하지 못하는 한심한 실정”이라며 “정부는 원칙도 명분도 없는 대북퍼주기에 앞서, 자국민 보호에 입각한 국가적 책무를 이행하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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