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측 6자회담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은 지난 18일 개막 기조연설에서 모든 요구사항을 정리한 ‘최대치 목록’을 던진 것을 빼놓고는 이번 회담 내내 거의 정해진 발언만 되풀이 한 것으로 알려져 회담 전망과 관련,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회담에 참석하고 있는 한 당국자가 “북한은 이번 회담에서 (기조연설을 제외하고)’BDA 동결 해제 없이는 어떤 논의도 안된다’는 입장을 되풀이 하는 외에는 어떤 구체적 요구도 하지 않았고 유엔제재를 해제하라는 말도 없었다”고 전했을 정도로 북한은 금융제재 해제에 집착하는 모습이었다.
또 다른 당국자는 “북한은 미국측의 제안에 대해서도 어떤 코멘트도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특히 김 부상은 최대한 말은 아낀 채 BDA(방코델타아시아) 실무회의 대표단이 미국측과 진행한 협상 결과만 점검한 것이 이번 회담에서 한 일의 거의 대부분이라고 할 만큼 적극적인 역할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크리스토퍼 힐 미국 수석대표가 회담이 시작되기 전 “김 부상이 협상 재량권을 많이 갖고 왔으면 한다”는 희망을 밝혔지만 김 부상의 이런 모습은 실제로 힐을 실망시키고 있는 것은 물론 그가 재량권을 위임받지 못하고 회담에 나온 것이 아니냐는 관측까지 낳고 있다.
북한측의 이런 태도는 북한이 이번 회담에서 애초 타결은 기대하지 않고 그저 ‘미국의 진심이나 한번 확인해보자’는 태도를 가지고 협상에 임했다는 풀이도 가능케 하지만 한편에서는 북한 외무성의 입지가 예전에 비해 약해져 협상을 주도할 권한이 없다는 방증이 아니겠느냐는 분석도 낳고 있다.
우리측 협상단이 ‘북한과 미국의 이견이 좁혀졌다’고 판단하고 있는 근거도 김 부상이 회담 과정에서 어떤 협상 카드를 내놔서가 아니라 북한측이 BDA 해제로 이슈를 좁혔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또 북한측은 군축이나 유엔제재 해제 등 기조연설에서 밝힌 다른 요구사항에 대해서도 회담 과정에서는 별반 언급 하지않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물론 이런 침묵이 회담 진행에 전혀 무용한 것만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군축이나 유엔제제 해제 등 중국과 러시아 등이 불편해할 수 있는 요구사항을 부각시키지 않음으로써 적어도 회담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침묵의 배경에 대한 분석은 엇갈리고 있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미국에 대해 할 말이 많은 듯 줄기차게 양자접촉을 요구해왔던 평소 태도와는 뚜렷한 대조를 이루고 있는 점이다. 특히 북한은 이번 회담 개막을 전후해 미국과 양자회동을 2차례나 사실상 거부하기도 했다.
북한이 미국의 양자접촉 제안을 거절했던 것처럼 치밀한 회담 전략의 일환으로 풀이하면서 끝까지 회담을 지켜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다른 당사국들이 20일 회담 진행 상황을 평가하면서 하루 더 회기를 연기하자고 동의한 것도 북한이 어떤 협상 카드를 갖고 왔는지 확인해봐야 한다는 의견이 지지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13개월만에 어렵사리 성사된 6자회담을 통해 북한의 의중을 더 확인해보고 싶은 미국의 의지와 어떻게든 북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한국과 중국의 이해관계 등이 맞아 떨어진 결과인 셈이다.
김 부상의 역할은 이날 오후 3시5분(현지시간)부터 시작된 제3차 북미 양자회동이 끝나면 어느 정도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