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2년여 만에 남북의 당국자들이 한 자리에서 마주 앉았다.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와 관련해 우리측 조명균 통일부 장관과 북측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을 수석대표로 하는 고위급회담이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린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 남북은 판문점 연락채널을 통해 수시로 문서를 주고 받으며 추가적인 실무접촉과 회담을 이어나갔다. 이러한 실무합의를 바탕으로 지난 21일에는 현송월 삼지연 관현악단 단장이 이끄는 북한 예술단 사전점검단이 1박 2일 일정으로 방남하기도 했다.
23일, 고위급회담을 기점으로 꽁꽁 얼어붙었던 남북관계가 새로운 국면을 맞은 지 꼭 2주째다. 북한과의 통신이 재개됐고, 대화 또한 잦아졌다. 이로써 한반도에는 전에 없던 평화의 분위기가 점차 무르익는 모습이다.
그러나 긴박했던 지난 2주간 남북관계 주무부처인 통일부의 대응에 여러 아쉬움이 남기도 했다. 첫째는 정부가 모처럼 재개된 남북대화의 현장을 취재할 수 있는 환경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다.
지난 몇년간 ‘대화’ 대신 ‘대결’을 해왔던 남북이 다시 한 자리에 마주앉았고, 그 역사의 현장을 취재하는 것은 통일부를 출입하는 기자들에게 가장 의미있는 기회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지난 2주간 통일부 출입기자가 제대로 현장을 담아낼 수 있었던 건 9일 남북 고위급회담이 유일했다.
통일부는 이후 연이어 열린 실무접촉(15일)과 실무회담(17일)에는 ‘관례상 풀(Pool) 취재단이 가지 않는다’며 취재 불가 이유를 설명했다. 설사 그런 관례가 있다 하더라도 길고 긴 혹한기를 지나 서서히 봄을 맞이하는 지금, 국민적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지금에 그 관례를 계속 이어가는 것이 옳은지 의문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풀 기자단의 회담 취재와 관련해서는 대화 상대인 북측과의 협의가 필수적이라는 점은 물론 이해한다. 더욱이 올림픽 개막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급박하게 남북대화가 성사됐기에, 기자단의 취재 부분까지 세밀하게 협의할 시간조차 부족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그러나 북한 조선중앙통신사 기자가 실무회담 대표단으로 회담장에 나오는 이례적 상황에도 ‘관례’를 따르는 것이 합리적일까.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현송월 일행의 방남에도 취재환경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일찍이 통일부 출입기자단은 현송월 일행에 대한 수많은 언론사의 취재경쟁이 예상되는 만큼, 풀 취재단을 구성하는 방안을 정부에 제의했다. 불필요한 취재경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안전 문제 등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그럼에도 정부는 현송월 일행이 방남하는 당일(21일) 아침까지도 이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그 사이 현송월 일행은 경기도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파주 남북출입사무소(CIQ)에 도착했다. 통일부 풀 취재단의 운영은 북측 인사들의 서울역 도착에 임박해서야 최종 확정됐다. 정부가 밍기적거리는 동안 수많은 언론사의 취재진들이 현장으로 나왔고, 결국 현송월 일행이 가는 곳마다 취재진들이 뒤엉키는 난장판이 벌어졌다.
통일부 풀 취재단도 현송월 일행을 따라 붙었지만 국정원 관계자는 “협의된 바 없다. 질문하지 말아라”라며 밀쳐내기 일쑤였다. 통일부와 국정원 간 취재 협조에 대한 협의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북측 예술단 사전점검단의 방남 이틀째는 사정이 조금 나아졌다고는 하나, 이날도 정부기관 관계자들이 풀 취재단의 접근과 취재를 막아서는 일은 어김없이 벌어졌다.
앞서 남북 간 합의를 통해 곧 개막할 평창올림픽에 최소 400여명의 북측 대표단이 내려오기로 결정됐다. ’메인 이벤트’인 평창올림픽에서만큼은 정부의 어설픈 대응으로 난장판이 되는 일이 재현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적어도 풀 취재단이 평창올림픽에 참가하는 북측 대표단의 활동을 취재하는 데 장애가 없도록, 그래서 언론이 국민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도록 할 필요가 있다.
두 번째 아쉬움은 북한이 아무런 배경 설명 없이 일방적으로 일정을 변경하는데도, 한쪽에서는 평화를 외치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여전히 비난을 퍼붓고 있는데도 정부가 이에 제대로 대응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앞서 지난 19일 북한은 북측 예술단 사전점검단을 20일에 보내겠다는 입장을 통지해왔다. 그러나 하루도 지나지 않아 이날 밤 10시께 아무런 설명 없이 돌연 계획을 중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그리고는 이튿날 오전 방남 일정을 하루 미뤄 21일에 점검단을 보내겠다는 통지문을 보내왔다.
명확한 이유 설명도 없이 일방적으로 일정을 중단하겠다는 북한의 행태는 실로 황당함을 자아냈다. 그러나 정부는 북한의 이 같은 ‘갑질’에 단 한 마디의 유감 표명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통일부 고위 당국자는 기자실에 내려와 ‘과도한 추측성 보도와 비판적 보도’를 언급하며 “과거 사례를 보면 북측은 우리 언론 보도에 대해 때때로 불편한 반응을 강하게 보여왔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고위 당국자가 기자실에 내려온다는 공지를 받고, 북한의 일방적 통보에 대한 정부의 입장 표명 내지는 정부가 파악한 북한의 일정 중지 사유에 대한 설명이 있을 것이라 기대(?)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고위 당국자는 “한반도의 평화를 정착해나가야겠다는 마음으로 돌아가서 대승적 차원에서 북 대표단 참가 문제를 보고 언론에서도 협조해주셨으면 하는 당부의 말씀을 드린다”는 애꿎은 말만 남기고 돌아갔다.
특히 정부는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 매체가 여전히 대남 비방을 이어가고 있는데도 이렇다할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실제 북한 매체들은 실무회담과 인사 교류가 이어지는 와중에도 “저들이 대화를 하는 것은 북남관계 개선을 위한 것이 아니라 ‘비핵화’를 위한 것이라는 고약한 나발을 불어댔다”, “북과 남이 민족의 대사를 잘 치르기 위한 대화를 진행하고 있는 때에 남조선 당국이 동족을 해치기 위한 국제적 음모에 가담한 것은 절대로 묵과할 수 없다”라는 등 공세를 폈다.
그러나 통일부 측은 “정부는 남북 간의 상호이해와 존중의 정신 하에서 남북관계 개선을 추진해 나가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본다”는 원론적 수준의 답변과 “북측도 나름대로 갖고 있는 사정과 입장이 있다고 본다”는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평창올림픽을 평화올림픽으로 만들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 통일부도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가 북한에 끌려가고 있다는 느낌은 지우기 힘들다. 정부가 단 한 번도 ‘평창’을 언급하지 않으면서 우리에게 ‘구원의 손길’을 보내주고 있다고 자평하는 북한에 정당한 요구와 합당한 대응조차 할 수 없는 것인지, 아쉬움을 넘어 씁쓸함 마저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