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요원’과 北 인구조사

▶북한 주민들의 주민등록 문건은 한국의 경찰청에 해당하는 인민보안성에서 관리한다. 지역 인민보안서에 출생 신고를 하면 주민등록 문건을 만들고 출생증을 교부해주는데, 출생증은 성인이 되어 공민증을 받기 전까지 북한 공민임을 증명한다. 사망신고 역시 인민보안서 관할이다.



북한에서 주민등록 문건은 가장 기본적인 국가 기밀 사항으로 분류된다. 인민보안서 주민등록 담당 일꾼을 ‘기요원’이라고 하는데 기요(機要)란 ‘중요한 기밀’을 뜻하는 말이다.



북한 주민의 주민등록 문건이 ‘중요한 기밀’로 취집되는 이유는 이름, 출생날짜, 성(性), 민족, 주소 등 기본적인 개인정보 뿐만 아니라 ‘출신성분’과 ‘사회성분’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출신성분에는 본인의 출생 당시 부모의 직업과 사회적 지위, 가족 관계 등이 기록되며, 사회성분에는 중학교 졸업 후 본인의 사회경력이 빠짐없이 수록된다.



북한 당국이 주민들을 크게 핵심계층, 동요계층, 적대계층으로 분류하고, 이것을 다시 51개 세부 부류로 나누어 관리하는 통제 정책을 60년간 유지할 수 있었던 행정적 근거가 바로 주민등록 문건에 있다.



부모의 ‘사회성분’이 자식의 ‘출신성분’으로 복사되는 상황이라 북한 사회는 말 그대로 계급이 대물림되는 전근대성을 갖는다.



▶인민보안서에 쌓여 있는 주민등록 문건만 종합해보면 북한 전체 인구와 관련된 각종 통계를 손쉽게 산출할 수 있다.



북한 행정력이 아직 전산화 되지 않아 여전히 수기(手記)에 의존하고 있다고는 하나, 5년마다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가 치뤄지고 있고 매년 봄철 초모사업(징병사업)이 차질 없이 진행되는 점을 볼 때 전체 주민들에 대한 북한 당국의 행정력은 여전히 공고하다.



국가안전보위부와 같은 통치기구가 ‘연좌제’를 걸어 주민들에 대한 수사 및 체포를 자유자재로 실행하고 있는 점도 이를 방증한다.



주민등록 문건을 똑 같이 한부 더 작성해 노동당이 따로 보관한다는 설(說)도 있다.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노동당이 관리하는 주민등록 문건은 자강도에 따로 보관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에서는 간혹 중간간부들이 출세를 위해 주민등록 문건의 경력을 몰래 고치며 승승장구해도 군당 비서급 이상의 고급 간부로 승진할 때는 결국 출신성분이 모두 다 들통난다는 말이 있다.



북한 주민들은 인민보안서의 주민등록 문건은 돈과 권력을 이용해 얼마든지 고칠 수 있지만 노동당이 관리하고 있는 주민등록 문건은 아무리 높은 자리에 있는 간부들도 함부로 고칠 수 없다는 설명이다.



▶이런 북한의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유인인구기금(UNFPA)은 지난해 북한에 직접 들어가 인구주택 센서스를 벌였다. 북한은 과거에도(1994년 1월 3일~15일) UNFPA의 도움을 받아 인구 총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는데 당시 인구를 2,121만명이라고 발표했다. 


흥미로운 것은 UNFPA의 인구조사를 한 북한 당국의 속내다. 우리 정부는 남북협력기금에서 400만달러를 지출해 UNFPA의 북한 인구조사 사업를 지원했다.



지난해 10월 1일부터 15일까지 12명의 UNFPA 관계자들이 북한 당국이 선발한 3만5천200명의 현장 조사요원, 7천500명의 지도요원과 함께 북한 인구와 주택에 관련된 정보를 취압했다고 한다.



현장 조사원들은 각 세대를 직접 방문해 조사를 벌였다는데, 시군 단위 집계과정을 거쳐 각 도(道) 차원에서 컴퓨터 통계를 낸 뒤 이를 다시 중앙에서 합산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각종 거시통계를 철저히 비밀에 붙이고 있는 북한 당국이 UNFPA에 어떻게 협조했을지 그 결과가 주목된다. 일단 UNFPA는 이 조사결과 북한 인구는 2405만명으로 추정된다는 가통계를 밝혔다. 확정 통계는 내년 말이나 발표된다고 한다.



최근 UNFPA가 한국 인구보건복지협회와 공동발간한 ‘2009 세계 인구현황보고서’에는 북한의 인구가 2390만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는 지난해 UNFPA의 북한 인구센서스 통계가 아니다. 북한 조선중앙연감이 발표한 2,361만명(2008년 기준) 통계에서 인구 증가율만 계산한 단순 추정치로 보인다.


조선중앙연감은 북한에 대량아사의 먹구름이 몰아쳤던 1996년부터 2000년까지도 해마다 20만명 이상씩 인구가 증가한 것으로 발표했다. 고난의 행군 시절 최대 200만명 이상이 아사했을 것이라는 탈북자들과 북한인권 NGO들의 추정과는 정반대 주장인 셈이다. 


더구나 만성 빈곤으로 인한 저출산 현상이 북한 당국 스스로 ‘사회적 문제’로 제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2000년대 이후 꾸준한 인구증가를 보이고 있다는 점은 ‘직관상’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북한 관련 지표를 조사하는 일은 ‘진실게임’으로 흐르는 경우가 많다. ‘투명성’이라면 몸사레를 치는 북한 정권의 속성상 언제든지 허수(虛數)의 함정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논리적 직관이 북한을 이해하는데 훨씬 더 유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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