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당비서 있는 한 北경제 회생불능

북한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대안의 사업체계’라는 말을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여기서 대안이란 어떤 안(案)을 대신하는 대안(代案)이 아니라, 평안남도 대안(大安)군에서 따온 명칭이다.

1961년 12월 김일성은 당시 남포시 대안구역에 위치하고 있던 ‘대안전기공장’을 방문하여 새로운 사업체계를 지시하였다. 이때 당 비서를 각 공장에 유급(생산노동활동은 하지 않고 지도감독만 하는 자리)으로 배치하고 행정에 참여하도록 만들어 놓았다. 대안의 사업체계 이전에 공장과 기업소의 운영은 지배인이 담당하였다. 이른바 ‘지배인 유일관리제’였다. 그러나 김일성이 ‘대안의 사업체계’를 내놓은 다음 ‘지배인 유일관리제’를 폐지하고 당 비서의 지도를 받는 체계로 바뀌었다.

‘대안'(代案) 되지 못한 ‘대안의 사업체계’

이것은 당권을 경제 분야에까지 확대하여 조선노동당이 국가체계를 독점한 ‘구조조정’이었다. 이때부터 김일성이 지시하면 전국의 공장과 기업소는 전혀 의견을 제시하지 못하고 일제히 받아먹기만 하는 수직적 경제관리체계가 세워졌다.

김일성은 1963년 신년사부터 사망 전인 1993년의 신년사에 이르기까지 매년 “모든 지도일꾼들은 우리 당이 창조한 청산리정신, 청산리방법과 대안의 사업체계의 요구대로 정치사업을 확고히 앞세워…” 라는 식으로 대안의 사업체계를 강조했다.

그러나 ‘대안의 사업체계’는 경제 문외한(門外漢)인 당 비서들이 공장 기업소의 운영을 이래라 저래라 하게 만들고 비리의 온상으로 자라게 만듦으로써 북한 경제를 완전히 말아먹은 주요 원인이 되었다.

▲ 기업소의 모든 물자와 운송수단들은 당비서가 독점하고 있다

북한에서 ‘지배인’이라는 직위는 남한에서 사장(社長)과 같다고 보면 된다. 대안의 사업체계의 표면적인 취지는 지배인 한 사람에게 실권을 주면 관료주의와 독단주의를 일삼게 되니 당 비서, 지배인, 기사장, 이렇게 세 사람이 공동으로 협의하여 공장과 기업소를 운영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고양이를 내쫓으려다 맹수를 불러들인 결과가 되었다.

‘대안의 사업체계’ 이후 큰 규모의 공장당위원회에는 경제적인 이익과는 관계없는 수십, 수백 명의 당 일꾼들이 배치되었다. 원래는 당 비서, 지배인, 기사장 등이 참석하는 당위원회에서 기업 운영과 관련한 집체적인 결정을 하도록 되어 있으나, 당 비서에게 모든 인사권한이 있기 때문에 자기 말을 듣지 않으면 지배인이나 기사장 할 것 없이 당성(黨性)이 없다고 비판하고 제거해버린다.

“앞으로 북한과 거래 않겠다”는 중국 기업인

사실 당 비서들은 정치나 공부했지 기술이나 행정업무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공장 업무에 대한 보고가 들어오면 자기 입맛에 맞으면 허락하고 맞지 않으면 반대한다. 그러면 경제활동에서 차질이 생기고 결국에는 망하게 된다. 이때 지배인은 실패의 책임을 지지만 당 비서들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

몇 년 전 ‘신의주화장품공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신의주화장품공장은 일제시기에 지은 공장으로 역사는 길지만 아직까지 재래식 설비와 구조를 갖고 있는 낙후한 공장이다. 다른 나라의 합작제의를 여러 번 받았지만 북한의 투자협정이 불투명하다는 이유로 모두 그만두었다. 그러던 어느 날, 중국에서 알려진 기업가로부터 합작제휴가 들어왔다고 한다.

쌍방 간 투자내역에 대한 체결을 끝내고 그 중국인 기업가는 합작 요구조건을 언제까지 집행해달라고 부탁하고 중국으로 떠났다. 얼마 후 다시 북한으로 가보니 그때 체결했던 지배인 당사자가 없어지고 다른 지배인이 나타났다. 그 중국인은 이상하여 “그때 나와 체결했던 지배인은 어디 갔는가?” 하고 물었다고 한다. 그러자 새로 등장한 지배인은 “그 사람은 승진되어 다른 데로 갔다”고 대답했다.

좀 어리둥절했지만 중국인은 그 새로운 지배인과 처음부터 다시 계약하고 이번에는 특별히 잘 해놓을 것을 약속 받았다. 그런데 중국으로 다시 들어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새로운 지배인이 전화를 걸어왔는데, 이전 지배인은 승진되어 갔다는 것이다.

화가 난 중국인이 “당신들 사람을 갖고 놀리는가? 모두 사기꾼들 아닌가?”라고 화를 내며 “당신네 나라와는 안 되겠다”면서 다시는 북한과 거래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사실은 그동안 지배인들은 승진된 것이 아니라 합작과정에서 나타난 일부 실수를 당 비서가 도당(道黨)에 보고해 지배인을 두 번씩이나 갈아치웠던 것이다. 따라서 북한과 계약을 할 때는 당 비서를 꼭 끼고 해야지 지배인이 행정책임자라고 그와의 계약만을 믿다가는 큰 낭패를 본다.

‘부정비리의 왕초’ 당 비서

행정업무에 대해 지배인은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소신 있는 지배인들은 자기 목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그런데 지배인이 자기 주장을 분명히 하면 당 비서는 자기 기득권이 약해질까봐 사업작풍을 문제 삼거나 사소한 실수를 트집잡아 압력을 가한다. 그러다 자기에게 조금이라도 방해가 된다고 싶으면 상급당에 보고해 제거해 버린다. 결국 경제관리에 대한 당의 참견은 경제활동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방해하는 것이다.

이러니 당 비서는 온갖 부정비리의 온상이 된다. 권력이 막강하다 보니 그 주위에는 아첨꾼들이 몰려든다. 물욕에 눈이 먼 당 비서는 아첨꾼들이 가져다 바치는 뇌물을 먹고 공사(公私)를 가리지 않으며 원칙을 지키지 않는다. 자기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매관매직도 일삼는다.

▲ 가동이 멈춰버린 북한의 한 기업소

함경북도 청진시가 고향인 탈북자 강연희(가명, 43세, 인천 거주) 씨의 아버지는 청진식료공장 지배인이었다. 평소에 고지식한 성격의 아버지는 원칙대로 공장을 운영했고 돈을 착복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식량난이 닥쳐 공장 운영이 멈추게 될 위기에 처했을 때, 기업관리를 책임진 강씨의 아버지는 다른 지방으로 다니면서 자재를 구입해 생산실적을 유지하려 애썼다고 한다. 그렇게 제대로 식사도 못하고 다니면서 생산실적을 올렸건만, 당 비서라는 사람은 공장물건을 시장에 빼내 야매(암매매)로 팔아 돈을 많이 벌었다. 한쪽에서는 자재를 구입하러 전국을 돌아다니고, 다른 한쪽은 물건을 빼내 팔아버리는 통에 공장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당 비서는 공장에서 예쁜 처녀들을 골라 관리원, 해설원을 시키고 치정(癡情)관계를 맺다가는 입당시켰다. 언젠가 아버지가 이런 부도덕한 행위에 대해 회의에서 비판했는데, 당 비서가 이에 앙심을 품고 아버지가 자재구입에서 원칙을 지키지 않는다고 도당에 제기해 해임시켜 버렸다.

“1990년 중반에 북한이 얼마나 어려웠습니까. 미공급 때 돈 한푼 없이 지배인을 그만둔 아버지는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노력하다가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지금도 강연희 씨는 그 당 비서의 이름만 떠올려도 이가 갈린다며 “당으로 유지되어 왔던 북한은 결국 당으로 인해 망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죄는 도깨비가 짓고, 벼락은 고목이 맞는다

지배인은 죽도록 일만하고 일이 잘못되면 혼자 책임진다. 당 비서는 명령과 지시만 내릴 뿐 그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지지 않는다. 참다 못한 지배인들이 군당(郡黨) 책임비서에게 공장 초급당 비서의 문제점을 보고하면 책임비서는 이 문제를 초급당 비서에게 알려준다. ‘가재는 게 편’인 것이다. 당 비서는 ‘네가 감히 날 잡아 먹으려고 해?’라고 앙심을 품고 무슨 꼬투리를 잡아서라도 지배인을 해임시켜 버린다.

지금도 북한에서는 이런 비리와 부패가 계속 되고 있다. 북한 영화 중에는 당 일꾼을 비판하는 영화가 지금껏 나온 적이 없다. 김정일이 만들지 못하도록 지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리가 가장 많은 것도 당 비서고, 부도덕한 행위를 많이 일삼는 것도 당 비서이다. 이 문제의 해결 없이 개혁과 개방이란 요원할 것이다.

한영진 기자(평양출신, 2002년 입국) hyj@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