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나시나요? 75년 4월30일…월남패망과 대북전략

매년 돌아오는 ‘4월 30일’을 기억하는 사람이 이젠 별로 없는 것 같다. 1975년 4월 30일은 ‘자유 월남’이 패망한 날이다. 내년이면 벌써 35주년이다.

1960~70년대 고교와 대학을 다닌 사람들은 1975년 4월 30일 월맹의 탱크가 사이공의 대통령 관저 독립궁 철문을 부수고 월맹의 깃발을 올리는 외신 TV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베트남을 탈출하려는 외국인들을 태운 헬기가 바람을 일으키고, 조각배에 몸을 실은 보트 피플들이 바다를 떠돌면서 물과 먹을 것을 찾아 다른 나라에 상륙을 구걸하는 모습은 다큐멘터리 영화에도 자주 등장했다.

베트남은 통일 후 낡은 사회주의 경제건설 이론에 따라 집단영농제와 중공업 노선을 추구하다 5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굶어죽거나 영양실조 합병증을 얻었다. 이런 사실은 베트남식 개혁개방(도이모이) 이후 외부에 조금씩 알려졌지만, 중국의 마오쩌둥이 60~70년대 인민공사와 대약진 운동을 하다 3천만 명을 굶겨 죽인 사례와 어쨌거나 비슷한 유형이다.

베트남은 1년에 안남미(安南米) 3모작을 할 수 있는 나라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굶어죽은 이유는 잘못된 계급주의 이론과 사회주의-공산주의 경제건설 이론을 맹신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히 베트남은 중국 문화대혁명과 같은 서로가 서로를 물고 뜯어 죽이는 진저리나는 계급투쟁을 겪지 않았다.

이후 베트남은 1986년부터 도이모이 정책을 채택하여 중국처럼 고속성장을 해왔다. 그리고 지금은 오히려 중국보다 미국과 더 친하게 지내고 있으며 한국과 각종 교역도 크게 늘어나 있다.

지금 국제정세는 34년 전 월남 패망 시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변했다. 하지만 당시 월남의 패망이 우리에게 던져준 충격은 매우 컸다. 강고했던 동서 진영외교의 틀을 깨고 데탕트를 주도한 미국은 1972년부터 중국과 수교회담을 시작했다. 이어서 미국은 베트남을 비롯해서 아시아에서 발을 빼려고 했다.

당시 미-중 수교회담이 남북한에 던져준 파장은 컸다. 1971년 미국은 주한미군 7사단을 철수하고 1976년까지 나머지 지상군도 한국에서 빼버리겠다고 발표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그해 신년사에서 “1971년은 국운을 좌우하는 중대한 시기”라면서 “세계의 모든 나라가 자기 이익을 위해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혹한 생존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비장하게 말했다.

오원철 당시 청와대 제2경제수석은 “원래 정부 신년사는 새해를 맞아 국가 원수가 국민들에게 축복을 기원하는 것인데, 그해 신년사는 정말 살벌했다”고 회고한다. 이 시기 박 대통령은 중공업 위주의 산업개편을 하면서 자주국방 노선을 채택하고 방위산업을 확대했다.

1972년 7월 4일 남북한은 ‘역사적인’ 7.4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남한의 이후락(李厚洛) 중앙정보부장과 북한의 김영주(金英柱) 노동당 조직비서는 서울과 평양에서 동시에 7.4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주 내용은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의 통일 3원칙이었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은 “상대방을 반대하는 무력행사에 의거하지 않고 평화적 방법으로 통일을 실현하여야 한다”는 내용에 더 강조점을 두었다. ‘서로 무력침공을 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했던 것이다.

오원철 수석은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급변하는 주변 정세에 따라 적어도 한쪽 손은 적(敵·김일성 지칭)의 심장에 대고 있어야 적이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알 수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며 “그것은 어쩌면 김일성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박대통령은 더 이상 미국을 전적으로 믿기 어려웠고, 김일성 입장에서도 중국이 ‘철천지 원쑤’인 미국과 수교할 경우 미국의 영향력이 남한을 타고 한반도 북쪽으로 올라올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라는 뜻이다.

이에 따라 불과 몇 달 뒤 박대통령은 ‘10월 유신’을 발표했고, 그해 12월 김일성은 강력한 국가주석제를 도입했다. 박정희 대통령과 김일성은 말하자면 “이젠 미국이든, 중국이든 우리를 지켜주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생존해야 한다”고 각각 판단한 것이다.

1975년 4월 30일 월남이 패망하던 날 박정희 대통령은 수출진흥확대회의를 주재하고 있었다고 한다. 박대통령의 통일노선은 ‘先건설 後통일’이었다. 지금 되돌아 봐도 아주 정확한 판단이었다.

월남 패망이 주는 교훈은 그동안 수도 없이 많이 거론됐기 때문에 더 이상 췌언(贅言)을 달 필요가 없을 것이다. 또 현 정세와 당시 상황이 많이 다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현 시기 북한문제와 관련하여 중요한 교훈을 주는 것이 있다. 그것은 북한문제를 풀어가는 1차 당사자는 어디까지나 우리 자신이며, 또 우리 자신이 철저히 준비한 뒤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바탕으로 일·중·러의 도움을 받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주체는 대한민국이다.

북한문제를 풀어가는 방법을 미국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라는 추측은 착각이다. 미국은 북한을 잘 알고 있지 않다. 오늘날 북한문제의 본질을 미국은 아직도 잘 모르고 있다. 그것은 북한문제의 60년 된 뿌리에 대해 잘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상만 보고 대증(對症) 요법만 해오다 20년이 되도록 북한 핵문제 하나 해결하지 못하고 문제를 점점 더 키워가고 있다. 북한문제는 김정일 정권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이상 해결이 불가능하다.

지금 김정일 정권은 점점 군사 이슈를 확대하고 있다. 자신이 잘못한 줄 모르고 유엔에게 “사죄하라”면서 핵실험과 대륙간탄도탄을 쏘겠다고 했다. 유엔에게 사죄하라는 게 도대체 무슨 태도인지, 아마도 ‘전 지구적 범위에서의 적반하장(賊反荷杖)’은 이 경우가 처음이 아닌가 싶다. 지금 김정일은 군사 이슈를 계속 확대해야 정권생존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점차 더 강력한 수단을 동원할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김정일 정권의 군사 도발을 예의 주시하면서 대북정책에서 민(民)-관(官) 협력의 힘을 더 강화하고, 남한 내부의 여론과 힘을 하나로 모아 나가는 데 집중해야 한다. 34년 전 오늘 월남이 패망한 근본이유는 먼저 자기 자신부터 관리하는 데 실패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교훈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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