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조’ 선발 北예술대…근데 왜 갈까?

▲ 만수대예술단 공연조(기쁨조) 캉캉춤 공연 ⓒ데일리NK

북한 젊은이들은 예술대학을 좋아한다. 고교를 졸업하는 학생들도 예술대학 진학을 바라는 사람이 많다.

지난 5월 11일자 노동신문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동지께서 새로 건설된 평양음학 대학을 현지지도 하시였다”는 기사를 1면 톱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원래 평양음악대학의 전신은 평양음악무용대학이었다. 평양음악대학을 비롯하여 각 도마다 세워진 예술대학은 예술인들을 육성하는 대학으로 신망이 높다. 남한에서는 김정일을 영화광이라고 한다. 일리 있는 말이다. 1960년대 후반 김정일이 문화예술 분야를 관장하면서 영화에 관심을 보여 왔다. 이때부터 북한주민들도 자식들을 예술인으로 키워보려는 소망을 가지기 시작했다.

북한주민들이 자녀를 예술인으로 키워보려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가문의 명예를 얻어보려는 의도 때문이다. 김정일의 개인 사생활 일체를 지원하는 ‘중앙당 5과’에서는 예술대학 학생들 중 얼굴이 예쁜 학생들을 많이 뽑아간다. 그렇다면 김정일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진다. 김정일과 ‘기념사진'(김일성, 김정일과 함께 찍은 사진만 ‘기념사진’으로 부른다)을 찍을 수 있는 영광도 쉽게 얻을 수 있다.

남한 사람들은 김정일과 기념사진을 찍으면 “그게 무슨 큰 영광이나 되느냐? 그때뿐이지”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김정일 개인 우상화의 나라인 북한은 다르다. 김정일을 만나거나 기념사진을 찍으면 장래에 결정적 영향을 준다. ‘접견자’라는 기록이 이력서에 계속 붙어 다니기 때문이다. 또 김정일은 접견자를 우대하라고 항상 지시하기 때문이다.

육체노동 피하기 위한 목적도

또 하나의 이유는 예술대학을 나오면 힘든 일을 하지 않고 벌어먹고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노동현장은 대부분 육체적인 힘을 요구하는 것이 많다. 북한은 1966년 이후 중공업을 우선적으로 발전시키는 정책을 실시했다. 생산된 중기계들도 뚝심을 필요로 하는 것이 거의 전부였다.

중기계가 주민들의 힘겨운 육체노동을 덜어주기 위한 기계수단이 아니라, 반드시 사람의 힘든 육체노동이 가해져야만 작동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

단적인 예로 남한에서 생산한 굴삭기는 사람의 노동이 많이 없지만, 북한의 굴삭기는 사람의 육체노동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또 중공업은 탱크와 대포 등 국방공업을 위한 생산에 치우쳐 있었다. 그러다 보니 모든 일 자체가 고된 육체 노동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좀 쉽게 벌어먹고 살자면 예술계로 진출하는 것이 나았다. 예술계에 진출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기업소들에서 자체로 운영하는 ‘예술기동선전대’에 들어가기만 해도 힘든 일은 피할 수 있었다. 그래서 북한사람들은 예술인들이나 예술기동선전대를 ‘날라리’ ‘노랭이'(일하기 싫어 뺀질거린다는 뜻)라고 부른다.

북 주민도 점차 김정일 사생활 알아

그러나 최근 북한주민들은 중앙당 5과 대상자들이 김정일의 ‘기쁨조’, 당 간부들의 노리개가 된다는 인식이 섞여 혼란을 받고 있다. 또 당장 먹고사는 문제에 급급하다 보니 예술에 관심도 없다. 다만 김정일과 그 추종자들만 좋아할 뿐이다.

결론적으로 북한주민들은 별로 달갑지 않은데 김정일이 음악예술에 관심을 갖다보니 그 모습을 맹동적으로 따라가는 것이다.

김정일이 예술을 육성하는 본질을 잘 알고 있는 탈북자들은 김정일이 평양음악대학을 현지지도 했다는 보도를 접하면서 좀 거북한 생각을 했을지 모른다. 또 하나의 ‘기쁨조 양성기지’를 현지지도 했구나 정도로 생각했을 수 있다.

‘기쁨조’는 1995년에 입국한 북한 무용수 출신 신영희씨가 자신의 경험을 솔직히 고백하여 그 실상이 남한에 알려지게 되었다. 신씨는 ‘진달래꽃 필 때까지’라는 책에서 체험을 바탕으로 베일에 가려졌던 예술인 선발과 기쁨조 선발과정, 구성원, 역할 등을 폭로했다. 당시 KBS가 드라마로 만들자 김정일과 그 추종자들은 KBS 방송국을 폭파하겠다고까지 위협했다. 김정일은 자신의 난잡한 사생활이 북한 주민에게 알려지는 것을 가장 경계한다.

이번에 노동신문이 평양음악대학 현지지도를 톱기사로 낸 것을 보면 노동신문은 아직도 외부 사람들이 김정일의 추태를 잘 모를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남한을 비롯한 외부세계는 물론 이제 북한주민들도 ‘기쁨조’를 알고 있다. 김정일이 여배우 성혜림을 가로채 동거했다는 사실도 북한주민들이 이제 알고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은 다 아는 것을 자신만이 모를 때, 독재의 종말이 가까워졌다는 의미다.

이주일 기자 (평남출신, 2000년 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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