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탄압 앞장선 김일성도 수술 앞두고는…

김일성, 김정일이 기독교 집안의 후손들이라는 점은 이곳 남한에 와서야 알게 됐다. 또한 그들의 선대가 기독교를 접했음에도 왜 종교가 전파되는 것을 두려워하는지도 알게 됐다고 탈북자들은 말한다. 


북한 평양사범대 교수로 38년간 재직하다 지난 92년 망명한 김현식(73) 미국 예일대 초빙교수는 김정일의 조부모인 김형직과 강반석이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고 말한 바 있다. 


철저한 수령우상화와 외국의 통신과 소식들이 일체 단절된 상태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북한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짐작도 하지 못한다. 


“북한에서 살 땐 몰랐는데 한국에 와 알고 보니 김일성의 일가가 독실한 기독교 가정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됐어요.” 탈북자 현미경(47. 여)씨가 하는 말이다.


현 씨는 실제 교회 장로였다는 주장까지 제기된 김일성의 어머니 강반석(1892∼1932년)에 대해 북한 당국이 “혁명의 위대한 수령을 낳아 키우시고 조선의 어머니, 불요불굴의 공산주의 혁명투사, 독립운동단체인 반일부녀회조직결성을 하여 조선의 여성해방운동을 한 투사라고 교양하고 선전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실지로 많은 탈북자들이 김일성의 부친 김형직(1894~1926)에 대해서도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도탄에 빠진 나라와 인민의 운명을 건지려고 ‘민족주의운동으로부터 공산주의운동의 방향전환의 위대한 선구자’로 혁명투쟁에 한생을 바친 애국자로만 알고 있다.


김일성은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서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며 권사인 부모(김형직, 강반석)가 교회에 다닌 것을 “휴식하러 다녔다”고 왜곡하고 있다. 


강반석의 반석이라는 이름이 예수님의 12제자중의 한사람인 베드로를 본 딴 이름이며 김일성의 외삼촌은 목사로, 아버지 김형직이 독실한 신자이며 숭실학교가 기독교학교라는 것도 북한에서는 전혀 모른다. 다만 김형직이 숭실 학교에 다녔다는 정도로 알고 있다.


중국에서 살다가 2007년 북송 당했던 탈북자 이현숙(48.여)씨는 “북송되어 보위부 심문을 받을 때 첫 질문이 ‘교회에 갔었는가?’이다”며 “북한이 왜 종교를 강하게 통제하는가 하는 것을 그 때는 몰랐는데 한국에 와보니 자기의 우상화를 위해 부모의 지난 과거사까지 사기 친 김일성이 가련하게 생각된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종교를 철저히 차단해온 김일성도 수술을 받기 전에 의사와 함께 기도했다는 일화도 전해지고 있다. 


조선전쟁이 나기 전 북한 김일성종합대학 의과대학장을 했던 장기려 박사가 김일성의 목뒤에 있는 혹을 수술한 적이 있다고 한다. 수술 전 박사가 기도를 권하자 김일성이 “기도를 해 주십시오”라고 말해 그 자리에서 함께 기도를 했다는 것이다. 


북한 보위부출신 이종혁(남.41)씨는 “종교가 북한에 전파되면 김일성을 신으로 섬겨왔던 주민들의 사상정신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며 “아마도 그 점을 두려워 김정일 독재자가 주민들과 외부의 종교 활동을 장악 통제한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북한 평양에 세워진 가짠 교회가 아닌 평양 곳곳에 숨어 있는 지하 교회가 밖으로 나오는 날 진정한 종교해방이 이뤄질 것이다. 그 날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