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적 상호주의-일방적 시혜주의…둘다 넘어야 된다

정형근 의원의 신대북정책이 나오자, 상호주의를 포기한 것이라는 보수 진영의 비판이 높게 일었다. 이에 정형근 의원은 결코 상호주의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고 강변하고 있다.

또 노무현 대통령은 7월 19일 제13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출범식에서 남북 관계에서 상호주의는 바람직하지 않다며 한나라당은 과거 상호주의를 주창해 온 것에 대해 일단 사과부터 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기도 했다.

이처럼 상호주의 문제는 여, 야 가릴 것 없이 대북정책 코드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주요한 잣대가 되고 있다. 과연 상호주의의 정확한 의미는 무엇인가? 그리고 상호주의를 비판한 노무현 대통령은 대북관계에서 어떤 원칙을 견지하고 있는가? 원칙이 있다면 그 원칙은 바람직한 것인가?

햇볕정책은 일방적 시혜주의

먼저 노무현 정부가 견지하고 있는 햇볕 정책 또는 평화번영 정책은 시혜주의 또는 시혜적 상호주의(Diffuse Reciprocity)에 기반하고 있다. 시혜주의란 일단 주고 나서 때가 되면 장기적으로 언젠가는 받을 수 있다는 논리에 기반하고 있다. 즉 일단 계속 퍼주면 북한도 장기적으로는 안심하고 개혁, 개방에 나설 것이기 때문에 결국은 퍼준 것 만큼 나중에 돌려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국제관계에서 이런 시혜주의가 통할 수 있으려면 서로 간에 충분한 신뢰 관계가 형성되어 있어야 한다. 미국의 국제 정치학자 로버트 케오헨은 1986년 자신의 저서 “국제관계에서 상호성(Reciprocity in International Relations)에서 상호 신뢰가 있을 때에 장기적인 상호성이 가능하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In a system of diffuse reciprocity, states … can act in the confidence that their cooperative actions will be repaid in the long run.)

이는 비단 국제관계뿐만이 아니라 사람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서로 신뢰할 수 있는 관계일때만 담보나, 만기 없이 빌려줘도 궁극적으로 받을 가능성이 있지, 서로 믿지 못하는 사이에서 막 빌려주는 사람은 상대방의 도덕적 해이만 조장할 뿐이다. 따라서 햇볕정책의 시혜적 상호주의는 퍼주기, 북한 정권의 도덕적 해이 조장이라고 비판받는 것이 당연하다.

모든 분야 상호주의 적용은 안돼

이에 반해 보수 진영은 정연하게 정리되어 있지는 않지만 일대일 기계적 상호주의(tit for tat reciprocity)를 주장하고 있는 듯하다. 김정일 정권에게 일방적 시혜주의가 타당하지 않다고 해서 기계적 상호주의가 적절한 것은 아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 둘 다 남북 관계를 풀어나가는 데 적확한 원칙은 아니다.

원래 일대일 상호주의는 국제 경제 관계나 군축 문제에서 적용되어 왔다. 가령 무역 관계에서 내가 관세율을 10% 낮추면 너도 10% 낮추어여 한다든가, 상대국에서 비자 면제를 해주면 우리도 해준다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물론 협상하는 두 나라 상황이 100% 똑같을 수는 없기 때문에 100% 등가, 또는 완전 대칭의 원칙이 적용되지 못할 수도 있다. 군축에서도 꼭 1대1 등가성, 대칭성이 적용될 수는 없다.

그런데 보수 진영은 일대일 상호주의가 필요한 분야뿐만 아니라 남북 관계 모든 현안에서 일대일 상호주의를 적용하고자 한다. 가령 식량, 비료 등 인도주의 지원 문제에 있어서도 북한이 납북자나 국군 포로를 보내주는 대가로 쌀과 비료를 보내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인도주의 지원은 그 지원이 제대로 되고 있으면 즉 분배 투명성이 보장되면 시행하는 것이지, 다른 부대 조건이 붙는다면 그것은 인도주의가 아니다. 따라서 이런 입장은 인도주의 지원 문제를 정치 협상화한다고 비판받을 수 밖에 없다.

인도적 지원은 분배 투명성이 원칙

국군포로 문제는 과거 남한의 장기수 문제와 연동시켰어야 했다. 그리고 납북자 문제는 그 자체가 북한의 범죄이기 때문에 북한의 사과와 결단을 촉구해야 한다. 물론 북한이 납북자 문제 해결에 성의를 보이면 어느 정도의 경제적 인센티브를 고려할 수는 있을 것이다.

경협도 마찬가지이다. 민간 기업의 경우 시장 원리에 따라 돈이 될 것 같으면 북한과 경제 거래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안하면 된다. 여기에 상호주의 같은 것을 적용할 이유가 전혀 없다.

가령 북한이 핵 실험을 했을 때 보수 진영은 한국 정부가 금강산 관광 사업을 중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한국 정부가 금강산 관광 사업에 보조금을 주고 있다면 이를 중단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엄연히 민간 기업이 진행하고 있는 사업 자체를 강제로 중단시키는 것은 전쟁이 터지기 일보 직전의 상황이 아닌 한 가능한 자제하는 것이 좋다. 그것이 자유민주주의 사회의 기본 운영 원리이다. 그래도 금강산 관광 사업이 마음에 안들 수 있다. 그러면 금강산 관광을 하지 말자는 시민 운동을 전개하면 될 일이다.

정부 경협은 핵, 인권 등 조건 걸어야

하지만 상호주의를 엄격하게 지켜야 할 분야도 물론 있다. 군축이나 비핵화 문제에서는 물론 상호주의를 엄격히 적용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비인도적 경제 지원 영역에서 정부가 정책성으로 진행하는 사업들은 상호주의 원칙을 적용하는 것이 좋다. 가령 개성공단 사업처럼 정부의 정책성 지원이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분야에서는 핵, 미사일 발사 등 북한이 경협을 원할하게 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주지 않을 때 상응하게 정책 지원을 축소하거나 취소할 수 있다.

정리하자면 남북관계에서 상호주의를 적용해야 분야와 그렇지 않은 분야을 가려서 봐야 한다. 인도적 차원의 대북지원은 인도주의 지원 원칙, 즉 분배 투명성이 보장되면 지원하고 그렇지 않으면 인도주의에 어긋나기 때문에 지원하지 않으면 된다.

인적 교류에 있어서도 상호주의를 적용할 필요가 없다. 북한은 인적 교류, 특히 북한 주민의 남한 방문에 대해서는 아주 예민하게 반응한다. 남한의 정보와 소식이 북한으로 파급되어 정권 불안정 요인이 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북한 주민의 남한 방문이 가능하다면 북한 정부에 물질적 지원을 하고서라도 독려하는 것이 좋다.

남북경협에서 상호주의는 민간과 정부를 나누어서 봐야 한다. 민간 경협은 기업 이윤 논리와 정경분리 원칙에 따라서 하면 된다. 단 정부 차원의 경협은 경협에 우호적 여건을 조성한다는 차원에서 핵, 인권 문제를 조건으로 내걸 수 있다.

그리고 핵, 군축 문제에 있어서는 엄격한 상호주의를 적용해야 한다. 당연히 한국에 핵이 없으니 비핵화 원칙에 따라 북한도 핵을 포기해야 하고 재래식 군축의 경우에도 남북 상호주의가 지켜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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