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피살사건, 李정부 굴복시키려는 의도된 도발”

북한군에 의한 금강산 관광객 고(故) 박왕자 씨의 피격사건에 대한 북측의 해명과 남한 관광객들의 증언이 배치되며 북한이 의도적으로 사건의 진실을 은폐하고 있다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현재까지 나온 관광객들이 증언을 종합해 봤을 때 고 박 씨의 총격 사망 시점과 총격 횟수 등에 대한 북측 주장의 신빙성 여부에 강한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먼저 총격 횟수와 관련, 피격 현장의 유일한 목격자인 대학생 이인복 씨는 14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10초 정도의 간격으로 2발의 총소리와 비명소리를 들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 南 관광객 증언과 北 해명 정면 배치 = 또 다른 관광객 이 모 씨도 15일 “새벽 5시께 남편과 함께 해금강 호텔을 나와 산택을 하던 중 총성 두 발을 들었다”며 “첫 번째 총성이 들린 뒤 비명소리가 났고 10초 가까이 지난 후에 다시 총성이 들렸다”고 밝혔다.

두 사람은 공통적으로 10초 간격의 총성 소리와 여성의 비명소리를 들었다는 증언을 하고 있어 이들의 진술은 상당히 신빙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 이는 ‘공탄(공포탄)까지 쏘면서 거듭 서라고 하였으나 계속 도망쳤기 때문에 사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북측의 사건 경위 설명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북측의 설명대로라면 총 3발의 총격이 이뤄졌어야 했다.

또한 총격 사망 시점에 대해서도 북측의 주장과 남측 관광객들의 주장은 배치되고 있다.

관광객 이 모씨는 14일 언론을 통해 “10일 오전 숙소였던 해금강 호텔에서 나와 해수욕장 쪽으로 산책을 나갔다가 총성을 들었다”며 “총소리는 5시 20분께 들렸던 것으로 생각된다”고 증언했다. 북측은 당초 총격 시점을 4시 50분이라고 밝혔다.

현장 목격자 이인복 씨도 “여성의 피격현장을 2~3분 정도 바라보고 인근 숙소로 돌아왔는데 씻고 가방을 챙긴 뒤 옆 사람에게 물어보니 5시 50분이라고 말해줬다”고 했다. 북측의 주장대로라면 이 씨가 철제펜스에서 현장을 목격하고 숙소에 돌아와 가방을 챙기기까지 1시간가량이나 소요된 셈이다. 철제 펜스에서 이 씨가 숙소까지가 5분 거리였다는 점을 감안할 때 북측의 주장에 더욱 의구심이 제기된다.

이 외에도 정부에서는 50대 중년 여성이 치마를 입은 상태에서 3km 거리를 20분 만에 주파했다는 북측 주장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의문을 공식적으로 제기한 바 있다. 15일 통일부에 따르면 금강산 현장 실측 조사 결과 피해자 숙소인 비치호텔에서 펜스까지 거리가 1080m로 일반인이 보통으로 보행할 때 약 14분 정도가 걸리는 것으로 파악됐다.

그렇다면 숨진 박 씨가 숙소를 나온 시간이 4시 20분이고 북측이 사망했다고 밝힌 시간이 4시 50분인 점을 감안하면 박 씨가 이동거리로 추측되는 총 3.3km 중 숙소에서 펜스까지 거리 약 1.1km를 뺀 2.2km를 6분 만에 이동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50대 중년 여성이 상식적으로 이동할 수 있는 거리가 아니다.

이는 북측의 주장대로 피살된 박 씨가 철제 펜스에서 약 1.1km 떨어진 기생바위 초소까지 접근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결국 박 씨가 기생바위 초소까지 간 것이 아니라 펜스에서 200~300m 떨어진 곳에서 바로 매복해있던 ‘금강산경비대원’들의 총격을 받았을 가능성이 커졌다.

◆ 사건 은폐하며 대남 메시지 = 북한은 왜 사건의 진실을 제대로 밝히지 않고 있는 것일까? 북측은 심지어 남측의 현장방문 조사까지 거부하며 의혹을 더욱 키우고 있다.

고 박왕자 씨의 관광 인솔 조장이었던 현대아산 직원 이형렬 씨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북한군의 대응이 평상시와 달랐다”고 밝히며, 현재 북한측의 대응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관광객에게 문제가 생기면 북측은 일단 붙잡아 놓고 우리 쪽에 연락을 취했다. 이번 일은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총격 사건이 초병의 판단 미숙으로 인해 발생했을 경우 북한이 ‘과잉 대응’ 논란을 방지하기 위해 이 같은 대응을 보이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하지만 초병에 의한 ‘우발적 사고’로 치부하기에는 미심쩍은 부분이 적지 않다.

특히 북한군은 북측의 주장대로 ‘공포탄’을 발사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당시 현장에서 총성을 들었던 관광객 두명이 ‘10초 간격으로 총성 두 발이 울렸다’는 일치된 증언을 내놓고 있다. 이는 결국 우발적 사고나 단순 과잉 대응 문제가 아닌 치밀하게 계획된 의도된 도발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북한의 계획된 만행이 사실이라면 북한은 남한 당국이 요구하는 진상규명 조사단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매우 적다. 진상조사단을 받아들여 사건의 진실이 밝혀질 경우 북측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이는 이명박 정부를 압박하는 강한 ‘메시지’를 전달하면서 사건은 은폐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허문영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15일 ‘데일리엔케이’와의 전화통화에서 “북한 체제의 특성상 초병이 마음대로 총을 쏠 수는 없었을 것”이라며 “우발적 상황이 아니고 의도가 있는 저격”이라고 분석했다.

◆ 이명박 정북 대북정책에 대한 반발 = 허 연구위원은 “금강산 관광은 북한으로서는 다량의 달러를 얻을 수 있는 자금줄인데 일개 초병이 문제를 일으킬 만큼 통제가 허술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명승지개발지도국도 금강산 관광을 통한 달러를 원했다면 사과를 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했을 텐데, 오히려 모든 책임을 남측으로 돌리는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했다. 충분히 의도적 도발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는 북한이 이번 총격 사건을 일으킨 의도에 대해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실망이 이런 식의 반발로 나타난 것”이라며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10·4 선언의 일부라도 추진될 줄 알았던 북한은 새 정부가 ‘한미공조’만 강조하는 모습을 보이니까 이에 대해 반발하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허 연구위원은 “이제 북한은 남한을 배제하고 미국, 중국과 관계를 만들어 가고 있다”며 “미국과 중국으로부터 식량과 비료를 지원받는 상황에서 당분간은 통미봉남(通美封南)을 통한 대남정책을 유지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특히 “북한은 대남사업을 담당하는 통전부 라인을 70%정도 정리해 (북한 내부의) 책임을 물었다”며 “남쪽에 있어서는 총격 사건을 통해 자신의 의도대로 남한 정부의 정책을 조절하기 위한 길들이기 수순을 밟고 있다”고 분석했다.

유호열 고려대 교수는 “매일 발언 하나까지도 다 총화해야 하는 사람들이 우발적으로 그런 일을 일으킨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며 “사전에 행동지침이나 규칙이 구체적으로 세워져 있었다고 이해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