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상봉 무엇을 남겼나

25일 끝난 제13차 이산가족 상봉행사는 언론의 보도 표현 문제를 놓고 야기된 마찰이 사죄요구와 유감표명으로 이어지고, 다시 출경요구와 출경거부가 맞서면서 남북 모두에게 상처를 남겼다.

이번 행사는 우여곡절 끝에 일정을 모두 마치기는 했지만 거듭된 파행으로 남북이 처한 상황과 남북관계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줬다는 평가를 낳고 있다.

특히 우리측이 서면으로 유감의 뜻을 전한 사실이 북측의 공개로 확인된 것은 또다른 논란을 낳을 가능성을 안고 있어 보인다.

파행은 상봉 첫 날인 20일 북측이 우리측 방송사의 보도내용에 들어간 ‘납북’이라는 표현을 문제삼아 송출을 막으면서 시작됐다.

이에 대해 그 날 밤 우리측 당국자는 북측에 항의했다.

그러나 다음 날인 21일 북측은 오히려 한발짝 더 나아가 우리측 상봉단장과 기자의 서면 사죄를 각각 요구했다. 이런 요구는 송출 방해 행위에 대한 일부 사실관계가 우리측 언론에 보도됨으로써 북측이 자극을 받았기 때문에 나온 것으로 해석됐다.

문제는 북측이 같은 날 오전 이산가족 개별상봉을 거부하면서 남측의 사과를 개별상봉의 전제조건처럼 만들어 버린 것이다. 이 때문에 이산가족의 아픔을 달래주려는 상봉행사의 근본 목적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정부로서는 오히려 사과를 받아야 할 마당에 사과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사과하지 않으면 이산가족의 한을 더 깊게 만드는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이날 ‘유감’이라는 모호한 표현을 택했다. 고육지책이었던 셈이다.

‘유감’이라는 표현은 전후 맥락에 따라 뜻이 달라질 수 있지만 북측은 우리측 상봉단장 명의의 유감표명 문건을 사과로 받아들였고 행사는 재개됐다.

물론 이를 놓고 조선중앙통신은 23일 “우리는 남측단장이 서면으로 잘못을 인정하고 유감을 표시한 점에 유의해 2진 상봉도 그대로 진행하기로 했다”고 보도했지만 우리 정부는 “잘못을 인정한게 아니라 유감을 표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리측은 그러나 언론의 자유에 대한 사항인 만큼 절대로 건드릴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해 ’기자들의 사과’ 요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북측이 행사를 재개하면서도 ‘납북’ 표현과 관련된 기자의 취재를 제한하고 금강산에서 떠날 것을 요구한 것도 이 때문으로 보인다.

우리측과 기자단은 22일 오전 작별상봉 때 취재를 강행했지만 북측은 해당 기자의 출경을 상봉단 1진의 귀환 일정과 사실상 연계하면서 고령의 상봉자들은 10시간 동안 금강산에서 발이 묶이는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북측은 이 과정에서 “30분 만에 떠나지 않으면 공화국법대로 처리하겠다”며 엄포를 놓기도 했지만 우리측은 상봉단이 하룻밤 더 머무는 한이 있더라도 특정기자의선별 철수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버텼다.

결국 우리측은 같은 날 오후 8시께 “금일 출국 예정인 인원은 전원 다 내보내겠다”는 북측의 답을 받고 오후 11시를 넘겨서야 금강산을 벗어날 수 있었다.

이를 놓고 정부는 우리 입장이 어느 정도 관철돼 접점을 찾은 것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다음 날인 23일 공동취재단이 전원 철수를 결정하자 북측은 이날 밤 조성중앙통신을 통해 우리측의 유감 표명 사실을 공개하고 우리측에 책임을 떠넘겼다.

분단의 상처를 조금이나마 치유하기 위한 지극히 인도주의적인 이산가족 상봉에서 대결시대가 낳은 ‘납북’이라는 표현 때문에 ‘대치’가 재현됐다는 점에서 이번 행사는 남북관계에서 넘어야할 산이 남아있음을 그대로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번 행사를 통해 앞으로는 이런 상황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이산가족 상봉행사 만큼은 체제의 체면을 내세우기 보다는 인도주의에 충실해야 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정부 당국자는 이번 상황과 관련, “남북관계에서는 완전한 승자도 패자도 없다”고 평가하고 “이번 일이 남북관계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