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관광객 박왕자씨 피격 사망사건이 일어난지 18일로 100일째를 맞지만 금강산 관광 재개와 사태 해결 전망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정부는 사건 발생 100일을 하루 앞둔 17일 “빠른 시일 내에 금강산 사건이 해결돼 관광이 재개되길 기대한다”며 북한에 사건의 진상 규명을 위한 대화에 호응할 것을 재차 촉구했다.
특히 정부는 “북한의 자주권을 침해하는 그런 진상조사를 하자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납득하는 수준에서 진상 규명이 돼야 한다는 것”이라며 되도록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듯한 모습을 보여 눈길을 끌었다.
정부는 사건 초기 북한에 ’당국자의 현장조사를 수용하라’는 원칙적 입장을 고수했으나 지난 8월 통일부 고위당국자는 현장조사가 가장 바람직하나 북한이 “협의에 응할 경우 서로 동의할 수 있는 형식이나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며 유연성을 보일 수 있음을 시사했다.
정부가 이처럼 진상규명 방식에 대해 유연한 입장을 보일 수 있음을 잇따라 시사하면서 지속적으로 대화를 촉구하고 있지만 상황은 여의치 않아 보인다.
정부는 북이 현지조사 요구에 응할 때까지 각종 대북 물자 제공과 인도적 지원을 잠정 보류하고 민간단체의 대규모 방북도 일시적으로 중단했으며 이에 북한은 남측의 요구를 단호히 거부하며 8월 금강산 지역에 체류하던 남측 인원을 최소 인원만 남긴 채 철수하도록 하는 등 강경한 자세를 굽히지 않으면서 남북관계는 더욱 얼어붙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1999년 ’민영미씨 억류사건’으로 금강산 관광이 40여일간 중단됐던 이래 가장 오랜기간 관광이 재개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최근 들어 정부가 민간의 대규모 방북을 허용하고 인도적 대북지원에 대한 의지를 밝히는 한편 북한의 테러지원국 해제를 계기로 대북사업 재조정을 검토하는 등 대화재개의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이 마저도 순탄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지난 2일 남북군사실무회담에서 민간의 삐라 살포를 문제삼아 개성관광과 개성공단, 남북 통행 등에 악영향이 있을 수 있음을 경고한 데 이어 16일에는 노동신문 ’논평원의 글’을 통해 남북관계의 전면 차단 가능성을 언급하며 오히려 더욱 각을 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북한이 이 같은 경고를 단계적으로 실행에 옮기면서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 변화를 압박하며 남북관계에 위기를 조성하려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특히 북한은 남북대화 재개를 위해서는 우리 정부가 6.15공동선언과 10.4정상선언 이행 의사를 분명히 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나 우리 정부는 대화 없이 무조건 북한의 요구에 응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어서 금강산 사건 해결을 비롯한 관계 복원을 위한 접점을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런 가운데서도 다음달 18일 금강산 관광 10주년을 계기로 사업이 정상화될 수 있기를 기대하는 분위기도 있다.
김하중 통일부 장관은 지난 6일 국정감사에서 “11월18일이 금강산 관광 10주년이기 때문에 가능하다면 10월 말이나 11월 초에 재개됐으면 하는 기대를 갖고 있다”는 희망을 피력했다.
북한 입장에서도 금강산 사업은 현찰 수익을 보장한다는 점 외에도 고(故) 김일성 주석이 터를 닦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완성한 사업이라는 상징성이 크기 때문에 ‘10주년’이라는 계기는 남북 모두에게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한 노력에 명분을 제공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 안팎에서는 통일부 차관 출신의 조건식 현대아산 사장과 작년 김정일 위원장을 면담했던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우리 당국에 앞서 평양측과 관광 재개 문제를 논의할 수 있길 기대하는 기류가 없지 않다.
그러나 조 사장은 지난 6일 참고인 자격으로 출석한 통일부 국감에서 “최고경영진의 방북을 통해서라도 문제를 풀어보도록 적극 노력하겠다”면서도 “현장에서 일부 (대북) 접촉이 있지만 정식 접촉은 북측의 지침이 있어야 하는데 그 지침이 없는 상태에서 실효적 협의는 못하고 있다”고 한계를 토로했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