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관광객 ‘금지된 노래’는 총71곡

‘단장의 미아리 고개’ ‘전선야곡’ ‘전우여 잘 가라’ ‘꿈에 본 대동강’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 이들 노래의 공통점은?

답은 ‘금강산에서 부를 수 없는 노래’이다.

98년 ‘현대’가 금강산 관광을 추진할 때, 북측에서 관광버스 및 유람선, 호텔의 노래방 반주기에서 삭제하라고 제시한 노래들이다. 남한의 군가(軍歌), 애국가, 국가경축일 노래, 그리고 위와 같이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하였거나 분단의 아픔을 다루고 있는 노래는 금강산의 금지곡이 되었다. 총 71곡이다.

그런데 가곡 ‘그리운 금강산’도 금지곡이라고 하면 “어, 그래?”하면서 고개를 갸웃할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목련화’ ‘보리밭’ ‘선구자’와 함께 국민가곡으로 꼽히는 ‘그리운 금강산’을 정작 그 노래가 시원스레 터져나올 법한 금강산에서는 마음껏 부를 수 없다. 작곡자 최영섭 선생도 지난 2000년 금강산을 방문하였을 때 콧노래로 흥얼거려야만 했다.

72년 적십자회담서 ‘그리운 금강산’ 가사 ‘대수술’

가곡 ‘그리운 금강산’은 1961년에 처음 만들어졌다. 한국전쟁 11주년을 맞아 KBS에서 칸타타 ‘아름다운 내 강산’을 공연하였을 때 수록된 9곡 가운데 하나다.

당시 노랫말은 ‘누구의 주재런가~’로 시작했다. 그런데 지금은 ‘누구의 주제런가~’로 불린다. 누구 주재(主宰)하여 만들었는가’라고 금강산을 빚어낸 조물주의 위대함을 표현한 가사였는데 악보를 출판할 때 ‘주제런가’로 잘못 표기하는 바람에 그렇게 굳어졌다.

이것은 인쇄인의 실수로 인한 의도하지 않은 개사(?)이지만, 1972년 남북적십자회담을 할 때, 북측 대표단 앞에서 부르기 위해 ‘그리운 금강산’은 ‘대수술’을 받게 된다.

먼저 지금은 ‘수수만년 아름다운 산 못 가본 지 몇 해’라고 불리는 가사에서 ‘못 가본 지’는 원래 ‘더럽힌 지’였는데 오늘처럼 바뀌었다. 2절 가사의 첫 소절인 ‘비로봉 그 봉우리 예대로 인가’는 원래 ‘비로봉 그 봉우리 짓밟힌 자리’였고, ‘우리 맺힌 슬픔 다 풀릴 때까지’는 ‘우리 맺힌 원한 다 풀릴 때까지’였다.

그리운 금강산의 작사자는 이록 한상억(92년 작곡) 선생이다. 작곡자의 요청에 따라 이록 선생이 가사를 고쳐주었다고 한다. 단 몇 군데 고친 것에 불과하지만 노래의 전반적인 의미가 상당히 달라졌다.

‘자유만민’에 북 정권 알레르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운 금강산’은 금강산의 금지곡이 되었다. 왜 일까? 아마 ‘자유만민’과 ‘오늘에야 찾을 날 왔나’라는 표현 때문일 것이다. ‘자유’는 북한 정권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일 만큼 싫어하는 단어이고, ‘찾을 날’은 ‘찾아 올 날’이 아니라 ‘금강산을 되찾을 날’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금지곡을 18일밤 금강산 옥류관에서 열린 금강산관광 7주년 축하연에서 열린우리당 배기선 의원의 부인이 용감하게(?) 불렀다. 노래를 부르기 전에 북한 아태평화위 부위원장 이종혁에게 “불러도 되느냐”고 묻기까지 했다는데, 이종혁은 대답이 없었다. 자신이 결정할 수 없는 문제이니 그랬을 것이다.

혹시 이번 기회에 ‘그리운 금강산’이 금강산에서 해금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자유만민을 북한이 좋아하는 ‘우리민족’으로 바꾸고, ‘오늘에야 찾을 날 왔나’는 ‘오늘에야 오를 날 왔나’ 정도로 바꿔주면 당장 해금이 될 것이다. 가사를 바꾸지 않더라도 ‘장군님의 특별한 배려’로 남조선 인민들이 금강산 노래방에서 ‘그리운 금강산’을 부르게 되었다고 선전하기에는 안성맞춤일 것이다.

곽대중 기자 big@daily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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