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서 다시 만난 방랑시인 김삿갓

’평생 금강산 위해 시를 아껴왔지만/금강산에 이르고 보니 감히 시를 지을 수가 없소.’(김삿갓.답승금강산시 中)
방랑시인 김삿갓(김병연.1807~1863)의 작품들이 8일 그의 탄생 200주년을 기념한 ’김삿갓 문학의 밤’이 열린 금강산에서 되살아났다.

6.15민족문학인협회가 주최하고 통일부와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 현대아산이 공동 후원한 이날 행사는 외금강호텔 회의장에 조촐하게 마련됐지만 김삿갓의 삶과 문학을 되짚으려는 시(詩)정신은 뜨거웠다.

고 은 시인은 이날 특별강연에서 “금강산에는 자기 삶을 의미있게 만드는 어떤 힘, 신령스런 기운이 있다”며 김삿갓과 금강산의 인연에 대해 이야기했다.

김삿갓은 세도가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그가 다섯살 때 ’홍경래의 난’이 일어나고 선천 방어사였던 조부 김익순이 이에 투항하면서 하루 아침에 ’역적의 자손’이 됐던 비운의 인물.

후에 조정의 사면이 있었고 이후 글공부에도 힘썼지만 그는 결국 인생의 대부분을 은둔과 방랑의 길을 걸었다.

날카로운 풍자와 해학으로 기성 사회에 저항했던 김삿갓은 금강산을 소재로 많은 작품을 남겼고, 그만큼 금강산을 사랑했기에 남녘의 문학인들이 이곳에서 200주년 행사를 연 것이다.

고 은 시인은 “김삿갓은 금강산에 들어오기 전에는 얼치기, 건달이었지만 금강산에 들어오면서부터 세상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면서 “그는 이후 차츰 양반문학을 해체해 나갔다”고 말했다.

그는 또 “김삿갓은 당시 시(詩)의 상투적인 의미를 깨버렸다는 점에서 위대하다”며 “내가 (방랑생활을) 해봐서 알지만.. 인생의 중요한 시기를 나그네의 길에 다 바치는 지극히 어려운 일을 김삿갓은 했다. 김삿갓은 그렇게 처절한 삶, 시 정신을 지닌 사람이었다”라고 강조했다.

고 은 시인은 그러면서 진경산수화, 추사체 등의 연원이 된 금강산을 “나를 찾는 곳, 중국의 미학에 짓눌렸던 자신의 미학을 해방시키고 확립하기 시작한 곳”으로 표현한 뒤 김삿갓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쓴 ’난고평생시(蘭皐平生詩)’를 낭송했다. 난고(蘭皐)는 김삿갓의 호 가운데 하나.

’새도 둥지가 있고 짐승도 굴이 있건만/내 평생을 돌아보니 너무나 가슴 아파라/짚신에 대지팡이로 천릿길 다니며/물처럼 구름처럼 사방을 내 집으로 여겼지..돌아갈래도 어렵지만 그만둘래도 어려워/중도에 서서 며칠 동안 방황하네.’

이날 문학의 밤에서는 안현미, 이영주, 윤석정, 지명진, 조인호 등 젊은 시인들이 참여해 김삿갓의 대표적인 시 작품을 읽어 나갔다.

’푸른 길 따라서 구름 속 들어가니/누각이 시인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네..스님은 내가 봄잠 즐기는 것도 알지 못하고/무심하게 낮종을 치고 있구나.“(김삿갓.입금강 中)

행사장에서는 남북 화해의 상징 공간인 금강산에서 열린 기념행사를 계기로 민중문학의 한 뿌리로 평가받는 김삿갓의 문학세계를 재평가해야 한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행사에 준비한 한 관계자는 ”김삿갓은 이전 ’김삿갓 북한 방랑기’라는 라디오 프로그램 등을 통해 체제 선전의 수단으로 활용됐고 그만큼 그의 작품세계가 왜곡됐다“면서 ”이데올로기의 희생양이었던 김삿갓을 올바로 재평가할 때“라고 말했다./연합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