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관광 축소는 쇼, 말려들면 안돼”

『현장 일꾼들과 상담을 하고 나니 점심시간인데, “귀한 손님이 오셔서 오늘 점심은 특식을 준비했습니다”라고 한다. 나온 음식은 강냉이 가루에 밀가루를 섞어 만든 빵과, 강냉이죽에 가리비와 섭조개를 잘게 썰어 넣어 맛이 별미다. 10여 명이 둘러앉아 행복한 분위기에서 먹었지만, 생활이 비참함을 실감할 수 있었다』 -저서 『아, 평양아∙∙∙』中에서

재미 교포 김찬구 선생은 89년 북한 방문을 계기로 대북 사업에 뛰어든다. 지난 16년간 북한 땅을 정신없이 드나들며 사업에 전념했다. 처음에는 장기적 목적의 투자였지만, 이후에는 이 나라를 제대로 한번 살려야겠다는 의욕이 앞섰다.

순수한 시장경제 논리로 본다면 그는 ‘빵점짜리’ 사업가다. 그러나 북한 주민의 내일, 민족의 미래를 위해 뭔가 변화를 도모해야 한다는 생각에 실패를 무릅쓰고 대북사업에 전력했다.

골뱅이 통발어업, 원산수산대-부산 수산대 자매결연 시도, 선박수리 공작소, 가리비 양식 개발사업, 수출품 농구화 갑피 임가공 사업, 봉제 완구공장, ㈜엘칸토 평양 진출에 이르기까지 7전 8기의 정신으로 도전했다. 그러다보니 16년의 세월이 금세 지나가버렸다. 그러나 북한은 계약 불이행, 비용 추가 요구, 정치적 개입 등 여전히 과거의 관행과 무책임을 반복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이러한 북한의 관행을 바로 잡으려는 노력보다는 북한 눈치보기에 급급하다. 북한은 남한을 맘대로 해도 되는 상대로 행동하고 있다. 최근 금강산 관광객 축소가 대표적인 사례다. 대북사업 베테랑 김찬구선생이 16년간 겪은 북한에 대해서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선생께서는 재미교포로서 지난 1989년부터 16년 동안 대북사업의 살아있는 선구자다. 최초 척박한 환경에서 대북 투자를 결정하고 사업에 뛰어든 배경은 무엇인가?

동구권 공산주의 국가들의 몰락을 보면서 북한도 그 영향이 언젠가는 미칠 것이라고 생각했다. 1989년 북한 관광의 기회를 갖게 된 것이 사업을 추진하게 된 동기다.

-선생의 저서 『아, 평양아…』(2005년, 비봉출판사)에는 1989년 당시 시장경제 경험이 전무 하고 관료주의가 횡행하던 북한의 현실이 생생하게 기록돼있다. 책을 읽는 독자들이 ‘어떻게 이런 환경에서 계속되는 실패를 무릅쓸 수 있었을까’하는 의문이 들 것 같다. 필자가 엄청난 재산가여서 자선사업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웃음)

순수한 자본주의식 경제원리인 초기 투자로 타진을 하면서 관망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러던 것이 민족주의적인 감정으로 어느 순간 바뀌면서 사업을 뛰어 넘어 국가(북한)와 민족을 걱정하게 된 나를 발견하게 됐다. 지금 내가 하지 않으면 안된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이 바로 이것이다. 내가 해야 할 일을 사업적 차원을 뛰어 넘어 민족적 차원에서의 독립운동 정신으로 하게 됐다.

-선생은 남한이 대북사업을 본격화하기 전 97년까지 개인 사업을 진행했고, 이후에는 엘칸토 북한 책임자로 일해 왔다. 이후에 개인적으로 추진한 사업은 없었는가?

엘칸토를 진출시키면서 가능성 여부를 새롭게 발견하게 돼 평양에 농산물 가공공장을 시작하게 됐다.

-선생의 대북 사업 과정에서 북한 관계자들이 보인 모습은 약속 불이행과 무책임, 눈앞에 이익에만 몰두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이러한 관행의 근본적인 배경은 무엇인가?

북한은 자본주의 사업정신을 전혀 몰랐고 또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북한이 자본주의 정신을 받아들이기에는 시기상조였지 않았나 반성도 한다. 이후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아주 조금씩 느끼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변화를 거부하고 있다. 오히려 외부의 바람을 차단해야 된다는 당의 생각이 사회주의 관행을 그대로 고집하게 만들었다.

-대북사업 초창기(90년대 초반)와 현재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은 다를 것으로 보인다. 그 당시와 현재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비교해 달라.

북한의 현실을 잘 봐야 한다. 체제 수호에 별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남한의 사업 계획을 현실에 맞게 수용해야 한다. 그러나 잘살아 보겠다는 생각보다도 체제붕괴에 더 신경을 쓰고 있다. 여전히 거부반응을 나타내고 있다. 개성공단 초창기부터 그런 행동에 대해 남측 인사들이 몇 년을 겪어왔다.

남한 자본을 받아들이려고 하지만 자기네들 식에 맞추려니 시간을 많이 낭비했다. 국제경쟁력을 기를 수 있도록 사업계획을 착실히 분석하고 이에 맞는 거래가 이뤄져야 한다. 남한기준을 자기네 수준으로 합리화 시키려고 억지를 쓴다. 개성공단, 금강산 계약내용도 마찬가지다.

금강산관광 계약내용은 하루 속히 재계약해야 한다. 시장경제 원리에 따라 이윤을 일정한 비율로 나누어야 한다. 나는 정몽헌 회장의 자살이 이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다.

개성공단은 남-북이 할 수 있는 사업의 마지막 보루다. 여기에서 실패하면 남과 북은 또 하나의 분단이 생길 것이다. 우선 임금이 싸고 솜씨 좋다고 너무 떠벌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북한측이 다 내려다보고 있다. 남한임금의 약 20분의 1이라는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다. 여기에 대비해야 한다.

-농산물 가공공장을 운영하면서 “북한에서 물건을 만들어 수입하면 손해본다는 것을, 언제까지는 손해를 보더라도 그 후부터는 이익을 볼 수 있다는 기약이나 보장도 없는 것이 북한에서의 사업”이라고 말했다. 여전히 북한의 경협실태가 그런지 궁금하다.

여전히 그렇다.

-개성공단 완공과 대북관광 사업 확대, 남북경협 확대조치 합의 등으로 대북사업이 양적으로 커질 것으로 보인다. 남북경협의 미래를 진단한다면.

어떤 협정과 계약이라도 서로에게 믿음이 필요하다. 계약이 사실상 중요한 법인데도 북한은 필요에 따라 중요시하지 않는다. 개성공단은 두고 봐야겠지만, 성공하려면 남한이 너무 서둘지 말고 당당하게 대응해야 한다. 내 자본으로 사업을 하는데도 마치 북한에 신세지는 듯한 태도를 보이니까 북한이 얕잡아 본다. 마치 자기네들 편리한대로 해도 되는 상대로 취급하고 있다.

한국정부의 자존심은 이미 땅에 떨어진 지 오래다. 북한 당국에 무시당한 채 사업을 하고 있다. 언제 어디에서부터 부작용이 생길지 예측할 수 없다. 아마 임금에서부터 부작용이 발생할 것이다. 사업정신을 좀더 냉정히 교육시키고 말 듣지 않으면 너희들이 손해본다는 실례(實例)를 보여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한 정부의 굳건한 버팀목 역할이 요구된다. 하지만 남북관계가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말았다. 안타깝다. 개성공단을 하루속히 완전 개방하여 그야말로 Free-Zone이 돼야 한다. 정부가 좀 더 정정당당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북한은 현대아산 김윤규 부회장 사퇴를 두고 금강산 관광객을 절반으로 축소한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해버렸다. 당사자인 현대아산뿐 아니라 정부와 일반 시민들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이러한 조치가 나온 배경과 북한이 의도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그 동안 현대아산이 북한에 알게 모르게 많은 것을 기부했다. 지나치도록 했다. 관광객 축소 방침은 쇼에 불과하다. 북한이 대인관계에 있어 마치 의리를 중요시 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한 것이다. 여기에 말려들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속 다르고 겉 다르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지 않는가?

-일부에서 주장하는 북한 핵 문제와 인권문제를 대북 지원 및 경협과 연계시키는 것에 대해서 선생의 생각은 어떤가?

아직은 그것들을 따지고 이슈화 할 시기가 아니라고 본다. 아직은 북한인민들에게는 먹는 것이 중요한 문제다. 모든 것을 연계시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남북 협력기금을 민족공용자본처럼 여기는 분위기다. 자금 사용이 적절하다고 보는가?

북한측은 이 자본을 자기네들이 마음먹기에 따라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처음 기금의 사용목적과 자본주의 논리와는 전혀 관계없이 사용하고 있는 돈이 돼 버렸다. 처음 경협자금의 성격은 어디가고 없다.

북한의 말을 잘 듣는 DJ정부 때부터 지금의 정부까지 남과 북의 거래 및 모든 협상의 내용을 들여다보기 바란다. 그때 정부가 대 국민 설득용으로 걸핏하면 ‘통일비용’을 내밀었다. 비용만큼의 효과를 얻었는지 잘 살펴보라. 셈도 제대로 못하는 중구난방의 모습들을 우리들은 많이 봐 왔지 않는가.

사실상 대북 경협이란 것은 개성공단인데-평양사업은 다 죽었다-투자액의 20%까지 손실 보장을 나라가 약속하고 개성공단이 문을 열었다. 지금의 정부는 빚을 내서라도 경협 권장을 하려는 바보같은 생각들만 하고 있으니 나라가 요 모양으로 돼 가고 있지 않는가? 한계가 벌써 여러 번 왔다 갔다 한 것으로 나는 판단하고 있다.

-간단하면서도 궁금한 질문이다. 대북 사업이 북한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보는가? 가능하다면 이유를 말해달라. 한계가 있다면 그 한계는 무엇인가.

대북사업이 북한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단, 서로의 조건이 순조로운 상태에서 사업이 무난할 때 변화는 현실로 다가올 수 있다. 인민들이 배가 부르면 정부의 말을 잘 안 듣게 돼있다. 배가 부르면 노동당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를 것이다.

-한국사회에 거세게 일고 있는 반미 운동과 민족공조 흐름에 대해 어떻게 보는가.

현실 파악을 못하고 있는 부류들에 대한 책임을 선배들이 져야 한다. 목숨을 걸고라도. 돌이켜보라! 전쟁 후 우리는 누구의 지원과 보호 아래서 여기까지 왔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정신차려야 한다. 친미에 빠지라는 뜻이 아니다.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현실 파악을 잘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민족공조, 참 좋은 문구다. 그러나 남과 북은 절대로 하나라는 식의 민족공조는 어렵다. 역사적으로 그랬고, 동족이면서 남처럼 살아왔다. 외형은 하나인 동족인데 속은 여러 개의 얼굴을 가진 속셈을 각자 가지고 있다.

김찬구 선생은 진주사범, 부산 수산대를 졸업하고 원양어선 선장으로 일했다. 76년 미국으로 이민, 재미교포 선장 1호가 됐다. 89년 북한방문을 계기로 대북 투자를 결심, 16년간 대북사업에 종사해왔다. 1997년 (주)엘칸토 북한 진출 이후 대북 사업 일선에서 물러나 경남대 북한대학원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지금은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연구위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인터뷰/ 정리 신주현 기자 shin@daily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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